이이언(Mot, Night off)
"나 사실 청승맞은 노래를 좋아해. "
조금 친해지기 시작한 a에게 무슨 맥락 끝에 이런 말을 했더니 사실 자기도 그렇다며 물개박수를 쳤다. a는 내게 노래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한 사람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는 편이라 맘이 설렜지만, 다음 날 만난 a의 얼굴은 어두웠다. "내가 그 노래들을 어제 들어봤는데 말이지… 좀 무서웠어… 음…그러니까 내가 말한 청승은 백지영이 부르는 발라드 같은 거였거든. "
그러니까 그녀의 청승은 ‘호소’에 가까웠고, 나의 것은 ‘독백’이었던 것이니, 하나의 단어를 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했던 것이다. a는 더 이상 곁도 주지 않고 멀리 가버렸다. 잘 지내니.
예전부터 나는 ‘호소하는 노래’를 선호하지 않았는데 노래를 듣다 보면 원하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닌가?라는 마음에 불편해져서였다. 지금 당장 나한테 달려와, 이 노래 들으면 즉시 전화해, 죽을 것 같으니까 텔레파시든 뭐든 내 마음을 알아내 등등. 호소가 아니라 내게는 호통처럼 들려서 움츠러들게 된다. 얼굴은 울고 있지만, 언제든 내게 쌍싸다구를 날릴 준비가 되어 있는 연인 같다고나 할까. 물론 노래방이나, 차트에서는 이런 발라드가 인기 만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이란 역시 체력과 눈치의 필드이니까.
반면 내가 생각하는 청승맞은 노래, 그러니까 ‘독백’은 겉으로는 티가 안 나지만 마음 안에서는 지옥불이 솔솔 타오르는 느낌인데, 쓰고 보니 좀 무섭긴 하다.(a의 안목이란!) 주로 실패한 짝사랑이나, 끝난 사랑을 회고하는 내용으로써 대체적으로 노래 속 주인공은 체력이 약하거나 심각한 결정장애, 플러스 아무도 바라지 않는 배려를 꼼꼼하게 하는. 요약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도 상대방은 주인공의 마음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아무 일도 생겨나지 않는다. 무표정하게 자신의 지옥불이 꺼질까 애를 태우는 독백의 노래. 그것이 나의 청승이다. 예전부터 이런 노래를 들으면 참 기분이 좋았다. 와, 이 노래에 나보다 더 심한 사람 나온다. 이런 걸 악취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교양인들은 비극의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진짜다.
어느 가을, 나는 전문사 1학년 2학기를 지내는 학생이었다. 기숙사에 살았다. 4인 1실이었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는 호사로운 독방에 가까웠고(그녀들은 졸업 작품 때문에, 갓 시작한 연애 때문에 바빴다.) 2층 침대 2개와 4개의 책상, 4개의 캐비닛 그리고 수만가닥의 긴 머리카락과 함께 석양을 감상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있었는데, 꽤 큰 창이 서쪽으로 나 있었고 앞에는 어떤 건물도 없어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주황빛의 매직 아워가 장관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불도 켜지 않은 기숙사방에서 가라앉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괜시리 센치해진다. 그리하여 결국 싸이월드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응?) 파도를 타면서 배경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독백이 시작된다고나 할까.(역시 무섭다. 20대의 나.) 그러다가 누군지 모를 사람의 미니홈피에서 ‘mot’의 ‘날개’를 들었다. 제목은 날개지만, 추락하는 내용이었고 쓸쓸한 멜로디는 음산하게 달콤했다.
노래는 인트로도 없이 바로 시작된다.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날았지.
목소리는 지쳐있다 못해 희미하다. 이미 떨어진 사람의 노래다. 떨어져서 죽어가며 회상하는 노래다.
잠시동안 아름다웠던 날들을. 너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이것은 지금까지의 청승을 뛰어넘는,
저 세상 발라드. 유령의 노래.
해가 질 때까지 노래를 반복하며 듣고 있으니, 어두운 구석에서 누군가 스윽 나타나 중얼거린다.
이이언: 내 이름은 유령이 아니라 ‘이이언’이야. Mot의 리드 보컬이자 프로듀서란다.
구겨진 검정색 셔츠를 바지 밖으로 내어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등을 움츠린 남자. 바지 주머니에서 섬섬옥수 같은 손을 꺼내 머리를 정돈할 때, 그의 머리카락은 석양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눈을 반쯤 가릴 정도의 앞머리와 뿔테 안경, 그리고 다크서클을 통과하여 섬세한 눈이 보인다. 갸름한 턱선과 앙다문 입. 나는 입을 헤 벌리고 중얼거린다.
나: 안녕하세요… 왕자님. 아니 이이언 님. 음악이 정말 훌륭하시고, 살아계셔서 기쁩니다.(이때 주머니 아래로 떨어진 약봉지 발견하며) 이거 떨어뜨리셨네요. 우울증 약인가요? 아님 Adhd? 물 가져다 드릴까요?’
이이언: 아, 그건 그냥 콜라겐이야. 요즘 피부가 좀 까칠해서. 넌 나를 오해하고 있어. 난 유령도 왕자님도 지옥에서 온 독백자도 아니고 우울증도 없단다. 다만 좀 심하게 까다로울 뿐. 그리고 초면에 미안한데 니네 진짜 바닥 청소 좀 해. 이게 기숙사니, 가발공장이니.
그렇다. 내가 이 청승맞은 노래들을 들을 때 하는 것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것도 아니고, 핏빛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주접에 가깝다. 우울과 흐느낌은 노래 속 그들이 해주고 있으니, 나는 그 옆에서 투스텝으로 까분다. 그러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소환해 내고,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는 대화를 나누고. 암튼, 그 해 가을에 나는 ‘Mot'을(기타리스트 지이 님도 계신다.) 만났고 아이팟에 1집을 담아 무한반복으로 들었다.
들을수록 1집의 완성도는 충격적이었다.(한국 대중음악상, 한국 대중음반 100명반, 2000년대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다.) 등굣길에는 ‘cold blood’를(첫 번째 트랙이어서) 작업 중간에 쉴 때는 ‘카페인’과 ‘자랑’과 ‘love song’을, 잠이 들 때는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를 자장가 삼아 들었다. 물론 석양이 지는 독방에서는 ‘날개’를 들었지만. 멜로디와, 연주도 너무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시’ 같았다. 시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입혀서 앞머리가 긴 미남에게 부르라고 하면 못의 1집이 된다.
1년 휴학을 거쳐 나는 2학년이 되었고, 못은 2집을 냈다. 친구가 자기가 다니고 있는 음반사에서 콘서트를 하는데 거기 ‘못’이 온다며 초대를 해 주었다. 오랫동안 좋아했고, 심지어 졸업 시나리오 제목도 ‘날개’였고 주구장창 테마처럼 틀어놓고 글을 썼지만. 나 같은 사람의 이상한 점은 아주 절실히 좋아했던 사람일수록 막상 만나면 고장이 나버린다는 거다.(차라리 정지가 되어서 샷다운 되면 좋을 텐데 고장이 나서 삐걱 거려 더 눈에 띈다.) 그리고 그가 ’ 서울은 흐림’을 부를 때 내 의자가 이이언 쪽으로 ‘트랙 인’(서서히 대상에게로 가까워지는 촬영기법) 되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가 어떤 여고생에게 왜 울고 있냐고, 가수에게 할 말이 있냐고 마이크를 넘기자. 그 여고생은 ‘사랑해요’라고 한마디 했다. 이이언은 미소 지었다. 나는 ‘내가 더’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기숙사를 나왔고, 못의 2집 선감상평을 쓰는 이벤트에 참가해서 티셔츠를 상품으로 받았다. 10년이 훨씬 지난 시간 동안 아껴 입느라, 그저 갖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 티셔츠는 예쁘게 낡았다. 못은 ‘지이’가 탈퇴하고 한동안 활동하지 않았다. 이이언은 솔로 앨범을 냈고 그중 ‘나의 기념일’을 정말 좋아하는데 생일이나 즐거운 날이 있을 때 들으면 흥을 돋우워 줄 것이니 추천합니다. 뻥입니다. 좋아하는 건 맞고. 흥은 안 나거든요. 하지만 저는 생일날마다 듣습니다. 좀 차분해져요. 이제는 생일마다 죽을 날이 가까이 오는군 싶거든요.
한동안 ‘Mot’도 ‘이이언’도 진득하게 듣지 못했다. 생업으로 바빠서. 아이가 예뻐서.
2018년 6월에 ‘이이언’은 ‘언니네 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이능룡’과 함께 ‘나이트 오프’라는 팀을 만든다. ‘나이트 오프’는 외출이 허용된 밤이란 뜻이다. 이 음반에 있는 ‘리뷰’를 듣고 나는 다시 아주 오래 전의 가을, 그 기숙사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무해한 청승과, 달콤한 주접이 가득했던 나의 4인 1실. 나의 25살.
‘리뷰’의 가사는 자신의 사랑을 복기하는 내용이다. 듣고 있으면, 하지 않았던 연애를 하는 느낌이 든다. 타지에서 만난 평생 잊지 못할 연인.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진상을 다 떨어서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연인. 그 연인을 생각하며 듣는다. 언제나,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음악이란 뭘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내 미워하고 그리워하게 한다.
이후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나이트 오프나 못, 혹은 이이언의 cd를 틀어 놓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날이면, 남편이 꼭 이런 말을 한다. 오늘은 우울증 음악이네. 그에게 이이언은 없던 우울증도 생기게 만드는 음울한 곡이다. 남편에게 청승은 ‘토이’다! 나는 반박하지 않는다. 이이언의 노래는 영업한다고, 팔리는 노래가 아니다. 처음부터 이해하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다.(이것이 바로 오기를 부르는 고도의 영업) 그리고 누군가는 이 노래 덕분에 어떤 늪에도 빠지지 않고, 혹은 어떤 연못에서 빠져나왔다고 믿는다. 왜인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Tmi지만 이이언은 한예종 음악원/음악테크놀로지과 전문사에 다녔다. 그전에는 연세대 전파공학과를 다녔고. 이토록 깊고 감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기계음악이라니. 그 당시 나는 이미 전문사를 졸업한 상태였지만, 무척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영상원과 음악원은 동네도 다르고 그러지만. 그래도.
그리고 이이언은 한동안 인스타그램에서 팬들을 위해 라이브 방송을 가끔 하고 그랬는데. 그때 용기를 내어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문을 공개한다.
나: 서초동 한예종 근처에 맛집 있나요.
이이언: 글쎄요. 허수아비 돈가스?
허수아비 돈가스 집에서 돈가스를 먹는 이이언을 상상한다. 학교에 돌아가선 애플 컴퓨터를 앞에 두고 전자 음악을 만들었을 것이다. 학우들과 농담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동생이 하는 전시회도 도와주고, 두 마리의 개와 함께 산책도 한다. 내 상상 속에서 그는 우울하지 않다. 심지어 BTS R.M과 협업을 한 이후로는 인기도 글로벌적이어서 더 이상 은둔고수도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작업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이이언: 음악은 있잖아. 우울함이나 광기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다.
나: 그렇다면 무엇인가요.
이이언: 그것은 바로 노가다란다. 무모한 성실함과 반복. 그리고 약간의 까탈스러움과 용기?
나: 약간 아니잖아요! 후반작업만 몇 년씩 하면서.
이이언: 그러니까 약간 심한 까탈스러움과… 아니 그래도 요즘은 작업 많이 하잖아. 피처링도 많이 하고.
그렇다. 이이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아름답다. 문제는 나다. 허수아비 돈가스 먹고 싶다.
+아시겠지만 이이언님과 저는 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저의 독백입니다.
++ 1문단에서 a에게 추천한 곡은 무엇일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소연...
+++ 허수아비 돈가스 조만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