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정당화 - 결과는 과정을 증명하지 않는다

Lectio 4. Amor Fati

by 구름꽃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후회를 합니다. 적당한 후회는 다음 선택을 보완하는 약이 되기도 하지만, 후회가 깊어지면 우리는 다음 삶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저 역시 그 감옥 속에서 긴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사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해 무려 5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불합리함을 견뎠던 건, 이 헌신 끝에 '정교사'라는 보상이 기다릴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무심한 한마디였습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던 혼란 속에서 저는 과거의 저를 사정없이 몰아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때 그 학교를 선택했을까', '결혼이라도 했어야 하나' 한 번 문을 연 후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후회할 거리를 찾아내며 자책하다 보니, 어느덧 소중한 1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누군가 나타나 이렇게 물었다면 어땠을까요?

“당신의 그 고통스러웠던 5년, 그리고 후회로 가득 찬 지난 1년이 앞으로 영원히 똑같이 반복된다 해도, 당신은 그 삶을 사랑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후회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지독한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니요. 너무나 가혹한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니체가 던진 이 질문에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질문은 곧 의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정말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과거에 묶여 현재를 갉아먹는 행위는, 결국 지금의 내가 나를 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요. 삶의 주인공은 오직 ‘나’ 자신이어야 했습니다. ‘무언가가 된 나’가 아니라 말이죠.

저는 직업적인 성취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패자라고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사립학교 시절 타인의 기준에 끌려다녔던 것처럼, 제 삶조차 외부의 시선에 내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비로소 제 삶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 삶을 일구기 시작했고, 다시 임용시험이라는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공부하는 시간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삶의 주체가 ‘나’로 바로 서고 나니, 같은 어둠의 시간속이지만, 누군가 제게 다시 그 질문을 던졌을 때 저는 비로소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 이 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 해도 저는 제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수험 생활이 행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설령 이 도전의 끝에 '합격'이라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도, 나의 선택으로 오늘을 일궈나가는 이 순간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운명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이미 나의 운명을 완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니체의 아모르 파티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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