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io 5. Gradus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이 문장은 우리가 빠진 욕망 지옥의 정곡을 찌릅니다. 우리는 늘 손에 쥐지 못한 것을 탐하느라, 이미 손바닥 위에 놓인 보석들을 으깨버리곤 하니까요.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세속적인 욕망이 꽤 강한 사람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차를 타고, 화려한 곳에서 시간을 보낼 때 느끼는 그 노골적인 우월감을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우월감'이 언제나 '열등감'과 한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내 시선이 오직 '나보다 더 가진 자'만을 향해 있을 때, 제 행복의 기준은 타인에게 저당 잡힌 채 끝없이 흔들립니다.
이 지옥 같은 시소게임을 멈춰 세운 것은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마주한 영상 속 풍경이었습니다.
베이비박스에 남겨지는 아이들, 보육원 시설에서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아이들의 치열한 생존을 보며 저는 서늘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 그 자체가 간절한 꿈인 세상에서, 더 좋은 것를 갖지 못해 괴로워하는 저의 고통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투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내 처지에 안도하라는 얄팍한 위로가 아닙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비교의 방향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늘 위를 보며 '결핍'을 확인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돌리는 순간 비로소 내가 딛고 서 있는 계단의 높이(Gradus)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미 누군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상위의 계단에 서 있었습니다. 더 화려한 욕망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제가 하위의 필수적 욕구들을 견고하게 보장받고 있다는 거대한 행운의 증거였던 셈입니다.
욕망의 지옥에서 탈출하는 법은 시선을 닫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었습니다. 내 결핍만 비추던 좁은 조명을 끄고,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기적 같은 일상들을 광각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뻔한 말 같지만, 건강한 신체가 있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오늘이 있다는 것에 감사의 마침표를 찍어보려 합니다.
물론 저는 아직 욕망의 감옥에서 완전히 걸어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SNS를 보며 남의 삶을 저울질하기도 하며 작아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는 감사를 먼저 해보려고 합니다. 위를 보며 나를 깎아내리는 시선을 잠시 거두어, 내가 선 자리가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였음을 기억할 때 지옥의 불길은 조금씩 잦아듭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미안함 섞인 감사. 이 기묘한 불협화음이 들릴 때마다 저는 비로소 제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