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와 그림자 - 가면 뒤의 나를 안아주기

Lectio 3. Accipe Te lpsum

by 구름꽃

삶을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나만의 '페르소나'를 만들게 됩니다. 도덕적이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해 보이는, 꽤 그럴듯한 가면이죠. 저 역시 사회생활을 하며 제가 간절히 갖고 싶었던 모습으로 페르소나를 빚어냈습니다.

제가 만든 가면은 ‘쿨하고 관대하며, 타인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낌없이 축하해 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이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가면 뒤의 실제 모습은 그와 많이 달랐습니다.


친구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제 입은 “진심으로 축하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선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를 향한 날 선 질투가 일렁였습니다. 저는 이 본심을 늘 ‘틀린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그 질투를 억누르고 ‘쿨한 나’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는지 모릅니다. ‘왜 나는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할까?’라는 의문은 곧 자기혐오가 되어 저를 괴롭혔습니다. 질투가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라고 인정하기엔, 제가 만든 페르소나가 너무나도 완벽하고 도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경험담이지만, 이런 내면의 전쟁은 저를 끊임없이 갉아먹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이런 사소하지만 날카로운 마음의 가시에 찔려본 분들이 계실 겁니다.


지적 허영심으로 시작된 '인생 책'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 것은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입니다. 고백하건대, 20대의 제가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건 순전히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습니다. “내 인생 책은 데미안이야”라고 말하는 제 모습이 그럴듯해 보였거든요. 실상은 중학교 때 권장 도서로 훑어본 게 전부라 내용조차 가물가물하면서 말이죠.

어느 날,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책의 내용이라도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어 무작정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표지가 가장 예쁜 《데미안》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고, 거기서 운명처럼 이 문장을 다시 만났습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 문장을 가만히 곱씹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만든 페르소나가 바로 나의 ‘알’이었을지도 모른다고요. 알 속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늘 ‘무엇이 옳은가(Should)’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부모님의 기대, 도덕적으로 결점 없는 인격이라는 알 껍질 속에서 우리는 안전함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내 안에서 꿈틀대는 어두운 욕망과 이질적인 생각들은 ‘틀린 것’, ‘이상한 것’, 혹은 ‘아직 철이 덜 든 것’으로 치부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삶의 방향은 늘 타인의 시선과 시스템에 맞춰집니다.


'나만의 오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하지만 나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풍경은 달라집니다. “나에게는 이런 어두운 면도 있고, 이런 독특한 욕망도 있어.”라고 고백하는 찰나, 선택의 기준은 외부에서 내 안의 ‘자기(Self)’로 옮겨옵니다. 융이 말한 '개성화'이자, 헤세가 말한 '알을 깨는 투쟁'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타인이 정해준 정답이 아니라, 나의 빛과 어둠이 모두 동의하는 ‘나만의 오답’을 선택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사실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질투하는 나를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친구처럼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게 삶에 무슨 직접적인 변화를 주나?”라고 말이죠. 저 역시 그 연결고리가 희미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질투하는 나를 질책하는 대신, 그 마음을 가만히 안아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네가 지금 질투가 나는구나. 사실은 너도 친구처럼 멋지게 해내고 싶어서 그렇구나. 그럼 우리, 어떻게 하면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 볼까?”

부정했던 어두운 면들을 내 삶의 일부로 통합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질투를 억누르는 데 쓰던 막대한 에너지가, 나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강력한 동력으로 변한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데 쓰던 힘을 나를 성장시키는 데 쓰기 시작하자 삶의 무게중심이 단단해졌습니다.


가면 뒤의 당신에게


선과 악을 모두 품은 신, 아브락사스에게로 날아간 새는 더 이상 눈치 보며 날지 않습니다. 혹시 당신도 쿨하고 완벽한 가면 뒤에서 홀로 찌질한 마음과 싸우며 괴로워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이제 그 투쟁을 멈추고 가면 뒤의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합니다.

나를 향한 이 작은 따뜻함은 삶이라는 거대한 배의 키를 겨우 1도 정도 바꾸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겨우 1도?'라며 사소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바꾼 1도의 방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각을 만들어내며, 10년 뒤의 우리를 전혀 다른 목적지에 닿게 할 것입니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마침내 자신만의 하늘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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