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과 거절, 둘 다 잘하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부탁할 게 있거든. 조금만 나를 도와주면 내가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막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퇴근 준비 중이던 한 대리는 멈칫했다.
박 과장의 '부탁'이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업무 지시에 가까웠다. '잠깐'이 얼마나 걸릴지, '조금'이 어느 정도인지, '막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게 무슨 기준인지.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근데 거절하기는 또 애매했다. 상급자의 '부탁'이니까.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선배가 매번 조금만 도와달래요 근데 그게 2시간이 기본이에요. 잠깐만 도와주면 된다네요. 근데 그게 3일 걸렸습니다. 이건 뭐 부탁인지 지시인지 모르겠어요. 거절하면 안 되는 분위기이라....."
댓글들:
"조금만이 제일 짜증남 ㅋㅋ 그게 얼만데"
"부탁하는 척 업무 지시하는 사람들 많음. 거절권이 없는 부탁은 부탁이 아니죠."
"저도 이번 주말만 출근해달래요 근데 3주째 출근 중입니다.ㅋㅋ"
리멤버에도 올라왔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OO야. 일 다 끝냈지? 마침 잘 됐다. 나 좀 도와줘." 이렇게 말했어요. 근데 마침 잘 됐다는 표현이 너무 기분 나쁘더라구요. 내가 한가한 게 잘된 일이라고? 내 시간은 대기 시간임?"
5회 "이게 제 일인가요?"에서 거절하는 법을 다뤘다.
"그럼 이제 거절만 하면 되는 거네요?"
아니다.
거절만 잘하는 사람은 고립된다. 아무 부탁도 안 들어주는 사람은 누가 도와주겠는가.
반대로 거절 못 하고 남의 부탁만 들어주면 이용당한다. 내 일은 언제 하나.
부탁도 잘하고, 거절도 잘해야 한다.
1~4회에서 관계 맺기와 협업을 강조했고, 5회에서 거절의 기술을 다뤘다면, 이번 6회는 그 둘의 균형이다.
부탁과 거절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탁을 잘하는 사람이 거절도 잘한다. 왜냐하면 둘 다 '상대를 배려하는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부탁 잘하는 사람 보면 거절도 깔끔함. 반대로 부탁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은 거절도 이상하게 함. 부탁할 때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거절당해도 이해하고 거절할 때도 구체적으로 말함"
"잠깐만 시간 좀 내줘" → 잠깐이 10분인지 2시간인지 알 수 없음
"조금만 도와줘" → 조금이 파일 하나인지 보고서 전체인지 알 수 없음
"별로 어렵지 않아" → 그건 니 기준
이렇게 부탁하면 받는 사람은 불안하다. 뭘 얼마나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선뜻 수락하기 어렵다.
"마침 잘 됐다. 나 좀 도와줘" → 내가 한가한 게 잘된 일이라고?
"이것만 해주면 돼" → 이것'만'? 그거 3일 걸릴 분량인데?
"부담 갖지 말고" → 이미 부담스러운데 부담 갖지 말라니...무슨 ㄱㅅㄹ임?
"넌 이런 거 잘하잖아" → 내가 잘한다고 니 일을 대신해야 하는 건 아닌데?
이런 표현들은 부탁이 아니라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다.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상사가 자네 이런 거 잘하지 않나 하면서 일 떠넘김. 잘한다고 해야 하는 건 아닌데 거절하면 능력 없는 사람 되는 느낌"
부탁해놓고: "다 했어?" "언제 줄 수 있어?" "빨리 좀"
도와줬는데: "수고~" "오케이" "ㅇㅇ"
감사 인사가 없으면 다음에 또 부탁받았을 때 도와주고 싶지 않다.
내가 직장 생활 20년 넘게 하면서 배운 건, 부탁도 실력이라는 거다. ('운'도 실력, '체력'도 실력, '멘탈'도 실력..... ㅋㄹㅋㄹ)
나쁜 부탁: "이거 좀 봐줄래?"
좋은 부탁: "기획안 5페이지 중에서 3페이지 시장 분석 부분만 검토해줄 수 있어? 화요일까지 업체한테 보내야 해서 그런데 말이지. 혹시 월요일 오전까지 피드백 줄 수 있을까?"
차이가 보이는가?
무엇을, 언제까지, 왜 필요한지 명확히 말한다.
구체적이면:
받는 사람이 판단하기 쉽다
거절하기도 쉽다
수락하기도 쉽다
모호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거절하기도 애매하고 수락하기도 애매하다
1) 거절당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부탁한다
"김대리, 혹시 시간 괜찮으면 도와줄 수 있을까?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이 한 문장이 모든 걸 바꾼다.
'거절해도 된다'는 선택권을 주는 순간, 상대는 덜 부담스러워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 오히려 YES를 받기 쉽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부탁하면서 안 되면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사람한테는 웬만하면 도와주게 됨. 거절권 주니까 오히려 수락하게 되더라."
2) 상대를 칭찬하면서 부탁한다
"지난번 회의 때 김대리가 발표한 기획안 정말 좋더라.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 기획안도 한번 봐줄 수 있을까? 김대리가 봐주면 훨씬 더 나아질 것 같아서."
칭찬 한 마디가 YES를 만든다.
왜냐하면: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니까
상대가 필요해서 부탁하는 거니까
아무한테나 부탁하는 게 아니니까
3) 내가 어떻게 도울 건지 말한다
"김대리가 검토해주면 내가 수정 작업은 다 할게. 혹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 있으면 내가 다 준비할게."
부탁하면서 '나도 일한다'는 걸 보여주면, 상대는 일거리가 늘어난다고 느끼지 않는다.
4) 도와주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말한다
"이거 도와주면 내가 저녁 식사 대접할게. 그리고 다음에 김대리가 필요할 때 내가 먼저 도와줄게."
거래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공정하다.
시간을 줬으면 뭔가 받아야 한다. 그게 식사든, 커피든, 다음 도움이든.
수락했을 때: "정말 고마워. 김대리 덕분에 큰 도움 됐어."
거절당했을 때: "생각해봐 줘서 고마워. 다음에 시간될 때 꼭 도와줘."
거절당했다고 삐지는 사람한테는 아무도 도와주고 싶지 않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선배가 부탁했는데 내가 바빠서 거절했음. 근데 선배가 그래 괜찮아 생각해줘서 고마워 라고 함. 그 말 듣고 미안해서 다음엔 무조건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어."
"야, 이거 좀 봐줘. 급한데. 오늘 중으로 가능하지? 넌 이런 거 잘하잖아. 별로 안 어려울 거야."
문제점:
무엇을 봐줘야 하는지 불명확
오늘 중이 언제까지인지 모호
거절권 없음
일방적
"김대리, 지난번 프로젝트 발표 정말 인상 깊었어. 특히 데이터 분석 부분이 명확하더라.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시간 괜찮으면 내 보고서 중에서 시장 분석 부분 한번 봐줄 수 있을까? A4 3장 정도인데, 업체한테 화요일까지 보내야 해서 월요일 오전까지 김대리의 피드백 받을 수 있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혹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 있으면 내가 다 준비할게. 그리고 검토해주면 수정 작업은 내가 다 할게.
도와주면 내가 점심 사고, 다음에 김 대리가 필요할 때 내가 먼저 도와줄게. 혹시 지금 바쁘면 안 해도 괜찮아. 생각해봐 줘서 고마워."
효과:
구체적 (무엇을, 얼마나, 언제까지)
칭찬
내가 할 일 명확
보상 제시
거절권 부여
감사 표현
5회에서 거절의 기술을 다뤘지만, 이번에는 '부탁하는 사람 입장'을 고려한 거절법을 추가한다.
부탁을 듣자마자 "죄송해요, 바빠서요" 하면 상대는 무안하다.
일단 끝까지 듣는다.
왜 부탁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왜 나한테 부탁하는지.
그리고 그 다음에 거절한다.
"말씀 들어보니 이런 상황이시네요. 근데 저도 지금 프로젝트 마감이 목요일이라서 도와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경청했다는 게 느껴지면, 거절당해도 덜 기분 나쁘다.
나쁜 거절: "죄송해요, 바빠서요."
좋은 거절: "죄송해요, 지금 다른 프로젝트 진행 중이라 목요일까지 마감해야 해서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구체적이면:
상대가 납득한다
내 평판도 지킨다
다음에 또 부탁받을 수 있다
모호하면:
상대가 섭섭해한다
"그냥 하기 싫은 거 아냐?"
다음부터 관계 어색해진다
"제가 직접 도와드리기는 어려운데, 이 부분은 김과장님이 전문가시니까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지금은 안 되는데, 다음 주 수요일 이후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때도 괜찮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전체는 어렵지만, 첫 페이지만 간단히 검토해드리는 건 가능해요."
대안을 주면:
완전 거절이 아님
상대를 생각한다는 게 느껴짐
관계 유지됨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한테 부탁해주셔서 고마워요. 다음에 제가 도울 수 있을 때 꼭 말씀해주세요."
거절하면서도 감사를 표현하면, 상대는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동료가 부탁했는데 내가 바빠서 거절했어. 근데 그 동료가 '괜찮아, 생각해줘서 고마워.' 라고 하더라. 거절한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는 거 있지. ㅋㅋ 다음엔 무조건 도와주기로 함"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우리 팀 선배 하나 보면 부탁도 깔끔하게 하고 거절도 깔끔하게 한다. 부탁할 때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도와주면 진짜 고마워한다. 거절할 때는 이유 명확히 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다들 그 선배 부탁은 들어주고 싶어 하더라구..."
댓글들:
"ㅇㅈ. 부탁 잘하는 사람은 거절도 잘함. 둘 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임"
"반대로 부탁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은 거절도 이상하게 함"
"부탁할 때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은 거절할 때도 상대를 배려함"
핵심은 이거다.
부탁과 거절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스킬이다.
둘 다 '상대를 존중하는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Point]
부탁과 거절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탁을 잘하는 사람이 거절도 잘한다.
부탁할 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제까지, 왜), 거절할 때도 구체적으로 (이유, 대안).
거절당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부탁하면, 오히려 YES를 받기 쉽다.
거절하면서도 감사를 표현하면, 관계는 유지된다.
부탁만 잘하면 이기적, 거절만 잘하면 고립. 둘 다 잘해야 조직에서 살아남는다.
다음 회에서는 업무 경계선 시리즈의 마무리로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사람 기분 좋게 무찌르는 방법"을 다루고자 합니다. 좀 더 적극적 대응 방법을 다룰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