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업무가 아닌데 넘어온 경우, 슬기롭게 거절하는 방법
"이거 원래 누가 하던 업무예요?"
이직 6개월 차, 나는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예전에는 김 대리가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업무가 어느새 '내 일'이 되어버렸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직 6개월인데 이상한 일들이 계속 넘어옴. 경력직이니까 이것도 할 수 있죠? 이러면서. 처음엔 적응하려고 다 받았는데 이젠 내 일은 야근으로 하고 남의 일은 근무시간에... 이게 맞나 싶음. 근데 이제 와서 거절하면 왜 이제와서 그러냐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 못하겠음. 하....."
댓글에는 비슷한 고민들이 쏟아졌다.
"ㄹㅇ... 경력직이라고 뭐든 다 할 줄 알 거라고 생각하는 듯. 거절하면 능력 없나?라고 생각할까봐..."
"새로 온 사람이라 선 긋기 어려움 ㅠ 나중에 내가 부탁할 일 있을 수도 있는데..."
"저두요 ㅋㅋ 조용히 있으면 재미없는 사람으로 찍힐까봐 무리해서 말 많이 하는데 집 가면 탈진"
리멤버에도 올라왔다.
"팀장이 '일단 이거 한번 해봐' 하는데 이게 원래 내 업무인지도 모르겠음. 업무분장표엔 없는 일인데 물어보면 뭘 그리 세세하게 따지냐고 할까봐 그냥 하고 있음. 근데 이게 6개월째라는...."
신입사원 때는 이런 고민 없었다.
"저 이거 처음이에요" 하면 다들 "당연하지, 신입인데" 했다.
근데 경력사원은 다르다.
이직 후 첫 3개월은 괜찮다. "아직 새로 오신 분이니까..." 하면서 아무도 일을 안 시킨다. 오히려 도움을 받는 입장이다.
문제는 3개월쯤 지나면서부터다.
"이제 좀 적응하셨죠?" 하면서 슬슬 일이 넘어오기 시작한다. 이때가 진짜 위험한 타이밍이다. 거절하기 애매하다. 아직 적응 중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적응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 이미 늦었다. 거절 안 하던 사람은 '거절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미 익숙해진 업무 구조를 바꾸기는 더 어렵다.
내가 아는 지인도 7년 차 때 이직해서 똑같은 실수를 했다.
"경력직이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빨리 적응하려면 적극적으로 해야지"
그렇게 6개월 동안 넘어오는 일을 다 받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본인 업무의 절반이 원래 본인의 일이 아니었다는 걸....
1회 "이직 첫 90일, 세 가지 관계의 함정"에서 유관부서와 관계 맺으라고 했다. 4회 "회사 내 업무 유관 네트워킹"에서는 도움 요청하라고 했다.
"그럼 도움도 받고, 도움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지금은 거절하라고?"
헷갈릴 수 있다. 근데 이건 모순이 아니다. 단계가 다른 거다.
이직 후 1~3개월에는 관계 맺기가 우선이다. 도움도 받고, 도움도 주면서 '이 사람은 협업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근데 3~6개월부터는 달라진다. 이제는 슬슬 '내 업무와 남의 업무'를 구분해야 하는 시기다.
관계는 이미 맺었다. 이제는 그 관계 속에서 경계를 세워야 한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처음엔 뭐든 다 해주면서 관계 맺고, 3개월쯤 지나면 슬슬 이건 제가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기 시작해야 함. 그게 제일 자연스러움. 처음부터 선 긋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되고 6개월 내내 안 긋는 사람은 호구됨"
"이게 원래 제 일인가요?"
이 질문조차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애초에 애매하다.
업무분장 자체가 모호하거나, 이전 담당자가 퇴사했거나, 여러 팀이 겹치는 업무거나, 아예 새로운 업무거나.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업무분장표에 '기타 팀장이 지시하는 업무'라고 되어 있음. 이게 뭐임? 이러면 뭐든 다 시킬 수 있는 거 아닌가?"
진짜 그렇다. '기타'라는 두 글자가 모든 걸 집어삼킨다. 블랙홀이다....
1~4회에서 그렇게 공들여 만든 관계.
거절 한 번 잘못했다가 다 무너질까봐 무섭다.
"도움 안 주는 사람"으로 찍히면? "비협조적인 사람"으로 소문나면?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뒤에서 말하면?
그래서 그냥 한다. 억울해도 한다.
"경력 10년이면 이 정도는 하시겠죠?"
이 한마디가 무겁다.
신입이면 "저 이거 처음이에요" 하면 되는데, 경력직이 "저 이거 못해요" 하면 무능해 보인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경력직인데 이것도 못 한다고 하면 그럼 뭘 할 수 있냐고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모르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밤새 공부해서 합니다. 이게 맞나요?"
14년 차에 이직한 김차장은 7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접근했다.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제가 이 부분은 아직 서툴러서요."
자신을 조금 낮추면서 거절하는 방법이다.
명확히 내 업무가 아니고, 정말 잘 모르는 분야일 때 쓴다.
"죄송하지만 제가 그 업무 담당이 아니어서 일처리가 많이 늦을 것 같아요. 담당자에게 직접 부탁하시는 게 훨씬 빠를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세 가지가 해결된다.
거절의 이유가 명확하고 (내가 담당 아님), 대안도 제시하고 (담당자한테 가라), 상대방에게도 이득이다 (더 빠름).
근데 주의할 점이 있다. 누가 봐도 내가 그 분야 전문가라면 역효과다. 거짓 겸손은 신뢰를 깎는다.
"제가 잠시 확인해보고 알려드려도 될까요?"
바로 수락하지도, 바로 거절하지도 않는다.
빠른 거절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거절하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혹은 바로 거절하지 못해서 얼떨결에 수락해버릴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일단 시간을 번다.
"오전에 회의 들어가야 해서요, 오후에 일정 확인하고 알려드려도 될까요?"
그 사이에 할 일이 많다.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인지 확인하고, 팀장한테 물어보고, 내 일정 체크하고, 거절할지 수락할지 판단한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즉답은 무조건 손해. 일단 확인해보겠습니다 하고 시간 벌어야 함. 그 사이에 상황 파악하고 안 되면 그때 거절 이유 만들면 됨"
전부 거절하기 부담스러우면, 일부만 수락하고 일부는 거절한다.
핵심은 질문이다.
"혹시 언제까지 필요하신 건가요?" "현재 어느 분이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인가요?" "제가 정확히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는 걸까요?"
구체적으로 파악한 후에 조건부로 답변한다.
"오늘은 보고 준비 때문에 어렵고, 내일 오후까지는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제가 매출 분석까지는 어렵지만, 상반기 자료 찾아서 전해드릴 수는 있어요."
이렇게 하면 일부는 도와주면서 (관계 유지) 일부는 거절할 수 있다 (경계 설정). 그리고 나의 한계를 명확히 전달한다.
단발성 거절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까지만"을 명확히 해야 한다.
내 업무가 아닌 경우라면 이렇게 말한다.
"이번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런데 저도 담당업무가 많아져서 다음부터는 영업팀 담당자에게 직접 부탁하시는 게 더 빠를 거예요."
협업은 맞는데 항상 임박해서 요청하는 게 문제라면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최대한 빨리 해볼게요. 그런데 저도 우선적으로 처리할 업무들이 많아서 다음부터는 최소 3일 전에는 꼭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당장은 도와주니까 관계 손상이 최소화되고, 다음부터의 룰은 명확히 설정된다. 그리고 나중에 거절할 근거가 생긴다.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처음 한 번 도와줄 때 이번만요 다음부터는 OO팀에 직접 말씀하세요 라고 딱 박아놨음. 그랬더니 두 번째부터는 안 오더라. 처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애."
가장 합리적인 거절은 역할 기반 거절이다.
"이게 제 업무인지 확인해봐도 될까요?"
이렇게 물어보면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내 업무가 맞으면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라고 명확한 범위와 일정을 확인한다.
내 업무가 아니면 "확인해보니 이건 OO팀 업무더라고요"라고 말한다. 역할 기반이니까 상대방도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 기분 나쁘면 본인만 ㄷㅇㅇ 되는 걸 뻔히 안다.
팀장한테 확인할 때는 이렇게 말한다.
"팀장님, 제가 아직 확실히 몰라서요. OO팀에서 이런 업무 요청이 왔는데, 제가 해야 하는 업무일까요? 프로젝트 마감 앞두고 있어서, 혹시 제 업무가 아니라면 그 쪽에 양해를 구하고 싶어서 여쭤봅니다."
팀장이 판단해주니까 내가 악역이 안 되고, 역할도 명확해진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저는 무조건 상사한테 먼저 물어봅니다. 이거 제가 해야 하나요? 상사가 아니라고 하면 떳떳하게 거절 가능하거든요. 만약 '응'이라고 하면 그때는 그럼 지금 하던 OO 업무는 언제까지 미뤄도 될까요 물어봅니다. 우선순위를 상사가 정하게 만드는 거죠."
솔직히 말하면, 업무 거절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평소에도 거절을 못 하기 때문이다.
"밥이나 같이 먹자" → 거절 못 함
"커피 한잔 할까?" → 거절 못 함
"이거 좀 봐줄래?" → 거절 못 함
그러면 당연히 업무도 거절 못 한다.
평소 연습이 필요하다.
무례한 부탁을 받으면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기분 나쁜 농담을 들으면 "저 생각보다 상처 잘 받아요"라고 말한다.
항상 자기 맘대로 이끌어가려는 사람한테는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요?"라고 말한다.
이런 작은 거절들이 쌓이면, 업무에서도 자연스럽게 경계를 지킬 수 있다.
리멤버에 이런 글이 있었다.
"회사에서 만만해 보이면 일도 자꾸 넘어오는 듯. 이직 후 첫 달부터 불필요한 회식은 안 간다 퇴근 후 연락 안 받는다 이런 거 확실히 했더니,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3개월 지나니까 다들 그러려니 하더라. 그리고 업무 경계도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거 같아. 나랑 같은 상황인 분들 내가 했던대로 한번 해봐."
거절 표현을 아무리 많이 연습해도, 내 안에 기준이 없으면 소용없다.
"회사생활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지?"
어떤 사람은 관계가 더 중요하다. 업무 경계보다 원활한 관계가 우선이다. 어느 정도는 손해 보더라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경계가 더 중요하다. 원활한 관계보다 적절한 경계가 우선이다. 관계가 조금 불편해져도 선을 분명히 하고 싶다.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쯤인지 아는 것이다. 그래야 일관되게 행동할 수 있다.
블라인드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나는 관계가 중요한 타입이라 어느 정도는 도와줌. 대신 이것까지만이라는 선을 명확히 해둠. 그 선을 넘으면 그때는 단호하게 거절함. 내 기준이 명확하니까 거절할 때도 덜 미안함"
많은 사람들이 거절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거절은 나를 지키는 것이다.
거절하지 않으면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 거절하지 않으면 평가에서 손해본다. 거절하지 않으면 번아웃이 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거절 못 하는 사람이 더 미움받는다.
왜냐하면 떠안은 일을 제대로 못 하고, 마감을 못 지키고, 결국 "능력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명확하게 거절하는 사람은 신뢰받는다.
왜냐하면 자기 역량을 정확히 알고,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수락한 일은 확실히 해내기 때문이다.
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있었다.
"처음엔 거절 잘하는 선배가 차가워 보였는데, 6개월 지나니까 알겠더라. 그 선배는 자기 일은 진짜 완벽하게 해냄. 거절도 명확하게 하지만 도와줄 때는 확실하게 도와줘. 그래서 오히려 더 신뢰받는 거 같애. 반대로 거절 못 하는 사람들은 모든 일 떠안다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함."
이직 후 6개월 동안 열심히 네트워킹을 구축했다.
이제 6개월부터는 그 관계 속에서 나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
거절은 나쁜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용기다.
다음 글에서는 "부탁과 거절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거절뿐만 아니라 부탁도 잘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둘 다 잘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화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이직 후 3~6개월이 가장 위험하다. 이때 경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6개월 후에는 고착화된다.
2. 거절은 관계를 해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를 쌓는 것이다. 명확하게 거절하는 사람이 더 신뢰받는다.
3. 자신을 낮추면서 거절하기, 시간 벌면서 거절하기, 일부만 수락하고 일부는 거절하기를 상황에 맞게 쓴다.
4. 평소에 작은 거절을 연습해야 업무에서도 경계를 지킬 수 있다.
5. 내 안의 기준을 먼저 세워라. 관계와 경계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아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