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와 집착

원하되 그것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는다

by 성현
“삶의 방향이 있고, 에너지를 얻고, 적극적 도전성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바라는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원하는 것을 향한 적극적인 동기는 건강한 마음 근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힘인 자기동기력의 기반은 무언가를 원하는 데 있다.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원하되 그것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것을 원하는 마음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그것이 곧 집착이다. 어떤 것을 원하되 집착하지 않는 것을 선호(preterence)'라고 한다. 선호와 집착의 차이는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 때문에 불행 해지느냐의 여부가 핵심이다.”

- 내면소통(김주환) -







지나치게 현재에 몰두해서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나 좋으라고 하는 일들인데 내가 뭘 이루려고 했더라 싶은 순간들.. 의도와 목적이 불분명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왜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지? 나는 왜 불안하지? 사실 별 것도 아닌데, 분명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인데. 100년 조차 못 살고 가는 유한한 존재인 내가, 지금의 청춘을 버리는 게 싫었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미래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현재의 나를 희생하기 싫었다.


인간은 오감에 기대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지나치게 평범한 생물체 같다. 문명을 이루고 문화를 창조하고 첨단기술과 이성으로 약육강식의 최고층에 올랐더라도 동물은 동물이다. 보이는 것을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 한다. 맛보고 듣는 것이 전부라 생각한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렇게 느꼈기에 몸은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 믿는다.

여기에 인생의 특성이 더해지면 불안정성 콤비가 된다. 방향 설정을 아무리 잘해도 인생은 수천만 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를 선택해 가는 과정이기에 결국 직선의 길은 없고 우회전과 좌회전을 반복한다. 어떨 땐 목적지에 운 좋게 다다르기도 하지만 어떨 땐 전혀 다른 무인도에 갇힌다. 그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뚜렷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미래는 내가 보지 못한 너머의 시간이고,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 따라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것들에 집착하게 된다. 그게 인생의 법칙인 것 같다.


이렇게 변동이 많은 인생을 나 같은 성격의 사람(생각도 많고 여러모로 복잡한 사람)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나는 모든 걸 통제 가능한 범위에 두고 싶어 하고 내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을 ‘오차’라고 여긴다. 예상을 벗어나면 그 예상도 정답이 될 수 있는 건데, 나는 내가 생각한 범위 내에서 사건이 발생하길 바라는 것 같다. 오차를 줄여가며 점점 나의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게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참 진부한 삶의 방식이다. 나는 스스로의 우물을 만들고 있었다.


살다 보니 참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것이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나에게 타격감을 준다. 외부의 사건들은 당연히 통제불가능한 것이니 논외이고, 내부의 감정들이 생각보다 많이 통제하기 어려웠다. 내 감정 말이다! 마음먹기가 가장 어렵다. 이미 24년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처리하는 사고회로가 굳어져 있었기에 그대로 살아왔는데.. 조금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결국 모든 건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20세에서 25세까지가 가치관이 가장 많이 변하는 시기이고, 그 이후부터는 가치관이 점점 굳어진다고 한다.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나는 어떤 태도를 갈고닦아야 할까? 나는 어떻게 과정과 결과를 모두 즐길 수 있을까? 내 가치관이 굳어지기 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치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러던 중 이 글을 읽었다. 선호와 집착.. 인생은 참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다. 같은 것을 목표하더라도 내가 이 목표를 ‘선호’하느냐, ‘집착’하느냐에 따라 과정 속에서의 내 기분이 달라진다. 윗글에 써져 있는 대로,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원하되 그것을 설령 이루지 못하더라도 여의치 않는 태도를 말한다. 말이 참 쉽지.. 그게 되면 이 세상 사람들 다 이렇게 안 살았지 싶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둘을 명확히 나누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한테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일을 선호하는가, 집착하고 있는가? 되돌아보면 집착이 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함으로써 나를 calm down 시키는 거다. 잠깐!! 너 지금 너무 과해~~ 하고 나를 진정시키는 거다. 그럼 내가 진짜 그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집착해야 하는 순간이더라도 진정하고 잠깐이나마 숲을 보게 된다.


나는 발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사람이고, 공부를 멈추고 싶지가 않다.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뛰어나진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그럼 안주하라는 말인가? 싶었다.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스스로는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여타 스타트업 대표와 직원의 관계처럼, 스스로에게 대표와 직원의 역할을 부여하며 그렇게 인생에서의 성과를 평가하고, 평가당하고 있었다.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그리고 2024년 나의 일기

2024년의 내가 유독 그랬다. 속에서 수많은 ‘나’들이 갈등을 겪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나도 사랑하고 싶었다. 성과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 이념의 폐해에 묻힌 쳇바퀴 속 햄스터 같았다. 좀 스스로를 그 속에서 꺼내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뭘까…. 진짜 그대로를 사랑하라는 건가?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그냥 게으른 사람이어도? 할 일 다 미루고 그저 하루 중 절반 이상을 침대에만 보내더라도? 그래도 나를 사랑하라는 건가?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사람인데 그것과 상충되는 것 같았다. 충돌이 일어나니 심란해졌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건 무목적, 무의도한 나를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추구하고 성장하는 나를 사랑하되 내가 설령 그것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실패에 대한 채찍질을 하지 않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그 목표를 원할 수 있고 선호할 수 있지만, 놓치더라도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스스로에게 서둘러 상기시키는 거다. 너는 그걸 원했을 뿐이라고, 그냥 그 사실 자체로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고 너의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을 높이 산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해 주는 거다. 누군가는 이것이 자기위로라고 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테지만.. 결국 우리는 다음 스탭으로 나아가야 하는 매일의 분기점에 서있으니까. 이 정도의 위로는 다음에 이어질 또 다른 선호의 영역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 같다.


매우 보수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실패를 가정하는 거니까. 어찌보면 선호는 하되, 너가 실패할 수 있으니 마음은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방법이긴 하다. 그렇지만 인생이 어떻게 성공만 있겠는가! 성공은 대비하지 않아도 온전히 기뻐할 수 있지만 실패는 대비해야 한다. 갈고닦은 실패 대비 능력에 따라 나의 회복탄력성이 달라진다.



올해는 어느 정도 사고방식이 정립됐다.


1. 발전을 도모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말 것.

선호하고 원하되 그것 때문에 불행해지지 말 것.


그리고

2.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사랑하면 되는 거였다.


가장 어려운 두 가지이지만 이제 어떻게 사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앞으로의 할 일들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았다. 올해 한 가장 큰 다짐이다. 나는 선호하는 것들에 잡아먹히지 않아야겠다. 내 인생은 내가 멱살 잡고 끌고 가야지, 인생에게 멱살 잡혀 끌려다니지 않을 거다!

그게 쉽지 않더라도 노력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거다~ 나는 말의 힘을 믿고 생각의 힘을 믿는다.

옳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방향이 있다면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 있을 줄 믿는다.

더 멋진 내가, 더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한 한 가지 방법론을 깨달은 것 같아서 기분이 썩 괜찮았던 달이었다.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방법이 있다. 그걸 믿고 앞에 뭐가 있을진 몰라도 그냥 아자아자 뚜벅뚜벅 걸어가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