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 소공인 이야기 #2
이 글은 헬로우문래 2019 '문래의 맛' 세션 중 '소공인의 레시피' 프로그램에서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틀 전(2019.10.21), 문래동 소공인 아버지 세대를 만나고 난 후, 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그들의 관점은 어떠할까? 자신의 일을, 문래동을 바라보는 2세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오후 8시가 훌쩍 넘긴 시간인데도 작업에 한창 열중해 있던 돌풍연마 이충규 대표, 소공인협회 청년분과로 섬기며 부친과 많은 노동자들과 소통하며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동호기계 정동호 대표를 만나봤다.
소공인협회 청년분과 회장이자 동호기계 대표를 맡고 있는 정동호씨의 본래 꿈은 호텔리어였다. 30대 중반인 그는 고등학생때부터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던 요리사의 꿈을 접고 2011년부터 부친과 함께 하나의 공장 공간을 셰어해서 각각 우영기계, 동호기계를 운영하고 있다.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부친께서도 늘 강조하시는 점은 '사람'이었다. 하나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공장이기에 사람의 아전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주5일을 철저히 지키며 근무시간과 환경을 특히 신경쓰고 있다고 했다.
사진 : 예병현 작가, 시각 디자인 : 안테나, 헬로우문래 2019
우영기계는 아버지 공장이고, 기계를 조금씩 우영기계에서 동호기계 소유로 옮기고 있다.
낮에는 활발히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 곳이라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혹시나 한눈을 팔게 되면 사람이 다치거나 기계가 망가지는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한편으론 위험한 현장이다.
우영기계/동호기계, photo by 최성우
2011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본래 호텔리어가 오랜 꿈으로 호텔조리학과로 제주도에서 공부했다. 제주에서 일하다가 해외에서 더 경험을 쌓기 위해 준비하는 도중 부모님들의 요청으로 가업을 물려받게 되었다. 당시 부모님께서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계셨다.
일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쉐라톤 호텔이 보이는데, 사실 여전히 아쉬움 반이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어렸을 적부터 친했던 친구의 설득이 이 일로 전향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요리도 손을 쓰는 일이고, 늘 손을 쓰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서 일하는 것도 .. 그런데 정말 하루종일 서서 일한다. 다리와 발이 부어 슬리퍼를 신고 출근을 하곤한다.
아버지는 30년이상 문래동에서 일하셨다. 집은 광명이었지만, 공장에 자주 놀러왔었기 때문에 어렸을 적 현재 쉐라톤호텔은 연탄공장이 있었고, 그 옆에는 단과학원이 있었던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제조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주말없이 계속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가공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잔업으로 늦게까지 공장을 지키는 경우가 많다. 납기일은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지키려 노력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Q. 일을 시작한지 8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 어떻게 배웠나?
A. 처음엔 소위. 버튼맨만 했었다. 부품이 가공되기 전에 넣고, 가공 후 빼는 작업이 주업무였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기술자 분들은 쉽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르쳐주고 나면 자신의 쓸모가 없어져 일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워 하셔서 그렇다고 한다. 가르쳐준다고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데 말이다. 버튼맨만 하다보니 1년동안 기술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격노하신 아버지가 기계를 하나 추가로 구입해서 1년동안 직접 부딪히며 배워서 어느 정도 실력이 늘었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라든지 다른 건 전혀 없었다. 청소부터 시작했다.
Q. 일을 배우는 건 어렵지 않았나?
A. 기술이나 기계 다룸은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어떻게 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가장 어렵다. 관계 등,
그리고 회의 때 늘 나오는 말이 있다. “아프지 마라! 다치지 마라!” 그래서 업무 환경과 직원 복지를 개선하고자 오전7시 출근해서 오후5시 퇴근하는 것으로 업무시간을 바꿨다. 주5일은 계속 지키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이 공장이 낮에는 8명이 근무하는데,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보니 신경이 많이 간다.
Q. 어떤 점이 부족한거 같나?
A. 홍보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든, 다른 나라로의 판로 개척이라든지 홍보 역량을 기르고 싶다. 돌풍연마의 이충규 대표(실제로는 ‘동생'이라고 표현했다.)는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cndrb92)도 운영한다. 기계에 대한 소개도 하고 자신의 하는 일을 잘 이야기하더라.
Q. 2세들의 모임이있다고 들었다.
A. 소공인협회 청년분과가 현재 16명이 활동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12명이었다. 지원사업에 채택되어 보행 보조기구를 개발해(copy + 의견 수렴) 영등포역 앞에 위치한 카톨릭 병원에 기증했다. 수량이 넘쳤는지 병원에서 인근 요양원에 남는 기구를 기증했다. 그 이후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편이다. 문래동의 인프라는 이미 충분히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 2세들 끼리 인적 자원도 공유하고, 일도 공유한다. 적극적으로 서로 소개시켜주기도 한다.
가공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시제품을 반나절만에도 만들 수 있다.
Q. 꿈은 무엇인가?
A. 문래1가쪽 건물을 하나 사서 공장을 깔끔하게 세팅하는 것이다. 현재 공장은 오래된 건물이라 비가 올 때면 물이 새서 걱정이다. 비가 오거나, 태풍이 오는 날이면 늘 불안하다. 물이 차서 기계를 망가뜨리면 어쩌나.. 비가 세차게 내릴 때면, 새벽 2-3시에도 벌떡 일어나서 공장에 나온다.
Q.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A. 사람이 가장 어렵다. 30년 정도 또는 이상 나이차가 나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젊은 친구들이 합류하기 쉽지 않다. 면접 때 늘 하는 질문이 바로, 어르신들과 함께 일하는게 어렵지 않겠느냐? 이다. 대답은 Yes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그만두기도 한다. 그리고 고독함이다. 나 역시 작업하는 동안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기계도 말이 없다. 그저 Mazak 기계는 시작과 끝을 이야기해 준다. 멍 때리다가 기계 소리에 끝났나보다 하고 움직이곤 한다. 그래서 다들 사람을 그리워한다.
공장의 전면에서 새 기계를 우리 공장도 배치했는데, 사람들이 기계를 보고 또는 공장의 청결도(?)를 보고 많이 들어온다. 요구사항들을 이야기한다. 혹여나 소화가 어려울 때는 다른 2세들이 운영하는 공장을 소개시켜준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인적 자원은 충분하다. 소공인 협회와 삼다수가 하고 있는 일도 있는데, 그 쪽 공장의 부품이 주로 독일제다. 이를 국산화하는 작업들을 문래동 공장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일종의 CSR일지도 모르겠다.
Q. 소공인 청년들은 주로 어디서 모이나? 다른 업종의 청년들과의 모임이나 네트워크는 없나?
A. 우리들은 정기적으로 자주 모인다. 사람이 그립기 때문이다. 일하는 내내 아무말을 안해서 다들 만나면 그저 반갑다.
다른 업종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쉽지 않다. 일하고 쉬는 시간대도 다르고, 서로의 니즈도 다르다보니 접점이 딱히 없다.
Q. 소공인협회 사람들과의 어떤가?
A. 청년분과는 현재까지는 주로 서포트 역할을 하는 편이다. 주축으로 진행하기에도 부담스럽고, 아버지 세대이신 분들이다보니 생각의 차이가 있는게 사실이다.
Q. 앞서 잠깐 나온 이야기 중에서 social media를 잘 하고 싶은 이유가 있나?
A. 이런 기계도 있고, 이런 일도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싶다. 내 친구들 조차도 나의 일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런 일도 있다고 더 알리고 싶은 점이 먼저이다. 미국이나 기타 나라의 경우, 고등학교에서 이미 선반과 같은 공구, 기계들을 다루어 보고 직접 눈으로 보아 익숙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혀 인식조차 없다.
그리고 내수가 아시다시피 거의 없다. 대부분이 수출이다. 수출이라고 하면, 중국만 많이들 생각하실 텐데 그렇지 않다. 멕시코 등 남미지역부터 다양한 나라에 수출한다. 판로 개척을 위해서도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싶다.
독립한지 2년, 일을 시작한지 5년정도 되었다고 하는 20대 사장, 돌풍연마 이충규 대표는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일찍이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했다. 지금은 혼자 일하다보니 주7일,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그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사진 : 예병현 작가, 시각 디자인 : 안테나, 헬로우문래 2019
2019년 현재 28세이다. 독립한지 2년, 아버지로부터 일을 배운 기간 3년을 포함하면 총 5년 경력이다.
운영하고 있는 공장은 본래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곳이다. 일을 배워 아버지로부터 공장을 인수했다. 보증금도 모두 내고 별도의 지원도 없이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는 문래동 1가 쪽으로 공장(백두연마)을 이전하셨다. 처음 아버지로부터 일을 배울 때는 월급도 없었다. 이후 월100만원정도 받고 일했다. 조금씩 모으고 모아 보증금도 마련했고, 기계도 구입했다. 물론, 대출 껴서 독립했다. 현재 주7일, 하루 12시간~14시간을 열심히 일하고 있다.
Q. 아버지로부터 경영 노하우를 받은게 있다면?
A. 단가 계산하는 방법이다. 어려운 작업의 경우, 시간당 단가로 계산하지 말라는 조언이 있었다. 평균적으로 5시간 작업해야 끝낼 일감을 나는 2시간 내로 작업이 가능하다면, 5시간 단가로 계산해서 값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아버지에게 매우 엄하게 일을 배웠다. 하나의 예로, 출근하면 핸드폰을 서랍에 넣어두어야한다. 점심시간 30분 정도 잠깐 확인할 수 있을 정도. 그러다보니 인간관계가 단절되었다. 그게 좀 힘들었다. 독립하고 나서 좋은 점은, 그러한 제약이 없다는 것.
Q. 젊은 사람들에게 이 업계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은가?
A. 요즘에는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도 150-200씩 받을 수 있다. 그에 비해 이 일은 1년 이상 먼저 수련의 과정을 인내해야 한다. 그것도 100만원 남짓한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20대 또래 친구들에게 솔직히 권하기는 쉽지 않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람이라면, 30대 중반의 가정이 있고, 사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절실하고 절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1년 쯤의 시간은 견뎌내지 않을까?
Q. 지금 일이 전망이 있다고 보나?
A. 그렇다. 우리 윗세대가 50대 이상이다. 이 분들이 일손을 언젠가는 놓는 시점이 오실 텐데, 그 GAP이 30년정도 이다. 예전보다 일거리는 많이 줄었지만, 전망은 확실히 있다고 본다.
소공인협회 청년분과로 활동하고 있는 2세 사장들은 16명, 지역에서 진행되었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서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관심사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가 귀하다보니 금방 친해졌다는 그들. 지금도 자주 만나며 교류하고 있어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인적 자원의 공유는 물론, 일이 들어오면 가능한 선에서 일도 함께 공유한다고 한다. 그만큼 문래동의 부품 가공 인프라는 거의 완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부품가공과 같은 일도 있다, 공장에 있는 기계들이 어떤 종류의 부품을 만들고 있는지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도록 하고 싶다는 정동호 대표, 블로그를 통해서 작업이야기를 간간이 업로드하며 자신의 스토리를 쌓아가는 이충규 대표는 분명 아버지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제조업의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
2021년 1월, 브런치 서랍 속 잠들어 있던 글 초안을 발견했다. 당시 현장에서 무척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 선택해서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해 준 현장의 있는 그대로 모습과 직접 전해주는 이야기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그 때 당시 작성한 글을 더 손보지 않았다. 2021년 그들의 이야기 또한 궁금해 진다.
본문 작성일 : 2019.10.23 / 덧붙이는 말 작성 :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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