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기다리는 중입니다.

미안합니다, 젊은 그대

by 비단구름

주말 저녁 챙겨보는 티브이 프로그램 중 하나가 '도전 골든벨'인데 코로나로 인해 전국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져 요즘은 스페셜 방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주는 1999년 초 군대 간 오빠를 그리워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어떤 여학생의 인터뷰가 소개되었다.


(여학생) 오빠! 이제 얼마 안 남았어! 18개월밖에 안 남았어! 선임이 자꾸 여자 친구 소개해달라고 괴롭히면 내 사진 줘버려!


내가 아는 어떤 남자는 26개월일 때 군 복무를 했는데 11월 말에 입대해서 세 번의 겨울을 군대에서 맞이하고 1월에 제대했다. 농담으로 하는 셈법이긴 해도 햇수로는 4년을 군에서 보낸 셈이다.


해가 네 번 바뀌다 보니 제대하고 나서도 군 생활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는지 동해 바다를 갈 때마다 하조대에서 보초 서던 일, 파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시커먼 바닷가 바위에 앉아 있던 귀신 이야기, 그 무렵 넘어온 간첩을 잡으러 다녔는데 옆 부대에서 잡았다는 이야기, 생명 수당이 일당 백 원 정도였다는 이야기, 선임이 바지 주머니에서 한치를 쓱 꺼내더니 먹으라고 주었다는 얘기, 파도가 던지고 간 문어를 잡아먹었다는 믿기 힘든 얘기를 실화라며 얘기해 준다.


한 백 번쯤은 들은 거 같은데 얘기할 때마다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변하고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고조되어 신나게 전달하는 통에 매번 다른 이야기 같아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는 않는다. 군대 얘기를 할 때 남자는 딱 그 시절로 돌아간다. 마치 지금 훈련을 하고 있는 냥, 마치 지금 간첩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냥, 현장감이 생생하다. 듣고 있자면 이건 마치 라디오 소설을 듣는 기분이랄까, 상상과 현실 어디쯤의 그림을 그려보는데 아쉽게도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단다.


오랜 기간 30개월 이상을 유지하던 군 복무 기간은 90년대 들어서 26개월로 한참을 유지되다가 2000년대 들어서 24개월로 단축, 현재는 18개월이다. 군 복무 기간에 상관없이 휴가는 달달하고, 포상휴가는 달콤하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포상휴가에 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격 못했다는 남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된 일인지 모두 스나이퍼 급 사격 실력으로 툭하면 포상휴가를 나오니 입대하는 아들을 보며 눈물 흘리던 엄마가 “또 나왔냐?”, “이제 그만 좀 나와라.”라고 반겨주지도 않았다는 무용담이 익숙하다.


“동네 비비탄 사격장에서 하는 사격하고는 많이 다른가?”

“실탄 사격은 다르지.”

“그래? 어떻게 다른데? 조준하고 맞추는 거 똑같지 않아?”

“아니야, 달라. 실탄 총이 훨씬 무겁지. 그리고 반동은 또 얼마나 센대. 잘 못 쏘면 개머리판에 얼굴을 팍! 하고 맞으면 멍이 퍼렇게 들고, 반동 때문에 어깨도 아프긴 또 얼마나 아픈데.”

“그래? 무거워서 그런가?”

“무겁지. 비비탄 총? 그건 장난이지. 영점도 안 맞추고.”

“영점이 뭔데? 영점 맞추는 거 어려워?”

“어렵진 않지만 암튼 실탄 사격은 달라.”

“그럼 영점 맞추는 거 배워서 조준하고 맞추면 되는 거야?”

“아, 얘가 뭘 모르네. 실탄 사격은 다르다니까.”

다르다는 얘기를 무한 반복 중인데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금연 성공 시 외출이나 휴가와 같은 포상 휴가를 주는 부대가 간혹 있다. 하지만 포상 휴가를 주려면 비흡연자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금연 성공했다고 포상 휴가를 주는 것은 역차별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어 사라지는 추세다.

대신 티셔츠, 보조배터리, 백팩과 같은 금연 성공 물품이 있다. 금연에 성공해서 금연 성공 물품을 받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본인이 사용하겠다는 용사들이 있는 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용사들도 있다. 나는 난감해하는 용사들에게 부모님이나 여자 친구를 주라고 했다. 이렇게 새하얀 거짓말을 보태면서.


“이번에 우리 부대에서 사격 훈련을 했는데 내가 일등 했어!”


“뭘 이런 걸 가져와. 이까짓 거 너나 쓰지.”


말은 이렇게 해도 '저 녀석이 맨날 게임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럼 그렇지. 뭘 해도 될 놈이야, 저 녀석은.'라고 아들의 사격 일등 소식에 부모님은 내심 흐뭇해하며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은근하게 자랑을 시작할지 모른다.

“저번에 휴가 나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 나왔어. 쟤가 그렇게 사격을 잘한대. 지네 부대에서 일등이래. 좋긴 뭐가 좋아. 어휴, 지겨워. 자꾸 나오는 것도 지겹다, 야.”


여러분이 부대에서 일등 했다고 하면 여자 친구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오고 어쩌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라면, 음, 좀 더 만나봐도 괜찮을지도.'

여자가 능력 있는 남자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자가 생각하는 남자의 능력이 돈이나 재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여자마다 선호하는 능력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개인의 취향이다.


악의 없는 하얀 거짓말이 때론 효력을 발휘하긴 해도 진실의 힘만큼은 아니다. 금연 성공 포상휴가나 물품을 받았다는 사실은 특등사수가 되어 포상휴가를 나온 것보다 여러분을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더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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