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거예요?”
금연 클리닉에 방문한 흡연자에게 다음 달부터는 간호장교에게 금연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해 주었더니 한 용사가 이렇게 물었다.
“잘렸어요?”
잘린 것은 아니지만 계속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잘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자른 사람은 없다.
금연상담사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채용된다. 계약기간은 대게 12월까지다. 언제 오냐고 묻는 용사들에게 4월에 올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확신할 수 없다.
연말이 되면 금연 상담사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가장 큰 고민을 하는 사람은 2년을 채운 상담사들이다. 회사 방침상 2년 차는 계약 연장을 해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돈다. 금연 상담을 시작할 때 가지고 있던 열정과 소명이 2년 차에 들어서도 식지 않은 상담사들이 꽤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계속 일하고 싶다.”
계속 일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계약 연장이 안되어 다른 일을 찾는 상담사들이 많다. 경력을 살려 같은 업종으로 이직하면 좋은데 금연상담사 수요가 많지 않아 결국 2년 동안 쌓았던 노하우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물을 때마다 친절하게 신속하게 응답을 주었던 상담사는 2년 동안 일을 했는데 재계약은 힘들 것 같고 그사이 나이는 더 먹어 갈 곳도 없고, 그래서 다시 대학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했다.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2년 차 상담사들이 방법을 찾지 못하고 떠나는 걸 보는 신규 상담사들도 착잡하다. 내년에 자신에게 닥칠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어오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직을 알아보고 적당한 일자리를 찾으면 고민 없이 바로 이직하는 경우가 생긴다.
열정 있고 전문성을 가진 상담사들이 지속적으로 일하기 어려운 구조. 이런 채용이 가능한 이유는 금연 상담의 중요성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밖에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금연상담사들끼리 금연사업은 보여주기 식 사업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금연 상담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업종과 분야에서 이런 식의 단기성, 단발성, 보여주기 식 사업이 많기는 하지만.
금연 클리닉에서 작성한 등록 신청서는 금연센터로 간다. 그곳에서 연구원들의 통계 근거 중 하나로 쓰인다. 금연 상담사는 장기로 치면 병과 졸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얘기하면 소모적 인력이다. 현재 각종 채용 공고에서 보여주는 처우가 그걸 말해준다. 정규직은 없고 모두 계약직으로 뽑는다. 그마저도 일 년이 아니라 11개월인 경우도 많다. 운이 좋게 연장이 된다 하더라도 최대 2년이다. 몇 월에 시작하든 12월 종료. 매년 재계약.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금연 상담사들은 본의 아니게 일하면서 다른 잡을 찾기도 한다. 좀 더 안정적인 계약직, 무기 계약직, 정규직 등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경우 대게 바로 그만둔다. 이런 이유로 다른 직업을 찾기 전까지 잠시 거쳐간다, 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11개월 계약직, 12개월 계약직, 최대 23개월 계약 조건이 그러한 오해를 묵묵히 감내하게 한다.
나는 그해 세 번째 상담사였다. 내 앞전에 일했던 상담사들 중 첫 번째 상담사는 4개월을 일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두 번째 상담사는 세 달을 일하고 다른 일을 구해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 두 달을 채워야 했다.
그녀와 통화했을 때 그녀에게 세 달만 일하고 이직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나를 적당히 이용만 해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앞전에 일했던 두 상담사 모두 근무하는 틈틈이 이직을 위한 공부를 하였다는 말을 들을 때, 금연상담사는 왜 이렇게 자주 바뀌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여기는 이직을 위해 잠깐 거쳐가는 자리인가 보다는 오해를 받을 때 나는 그들이 어떤 패기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지 알기에 침묵했다.
이직한 곳의 출근 날짜를 맞추기 위해 두 번째 상담사가 급하게 떠나느라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다. 간호장교로부터 보고해야 하는 서류와 물품 관리에 관해 전달받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전 상담사가 쓰던 책상에는 그녀가 사용하던 물품과 서류 파일이 그대로 있어서 바로 일을 시작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쓰던 다이어리를 남겨 놓았다. 다이어리에는 전 상담사의 일정과 이런저런 메모들이 남겨져 있어 전체적인 업무 흐름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아침이면 책상을 닦고 텀블러에 허브티를 우려내고 자리에 앉아 흡연자들이 금연상담을 받으러 오길 기다리며 그녀가 남겨 놓은 다이어리와 상담 매뉴얼을 교재처럼 한 번씩 보았다. 그녀 대신 투입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름없이 그녀의 다이어리를 펼치다가 다이어리 커버 안쪽 포켓에 꽂혀 있는 한 장의 명함에 시선이 갔다. 그녀의 명함이었다. 사용하다 남은 명함일 거라고 생각하고 꺼내보지 않았는데 나에게 남겨놓은 것이었다. 명함을 꺼내보니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새로 오시는 상담사님, 궁금한 것 있으시면 아무 때나 편하게 연락 주세요.’
메탄올에 실명을 한 공장의 파견근로자들이 스스로를 일회용 컵에 비유했듯이 수없이 많은 그들도 일회용 컵처럼 사용하고 버려졌다. 일회용 컵은 한 줄에 천 원이면 충분하니 사용하는 입장에선 언제든 대체할 수 있지만 일회용 컵들은 버려지는 순간에도 미미한 소임을 다했다.
감사하게도 협회 주임에게 전화가 왔다. 올해도 금연 사업이 승인이 나서 구체적으로 일정 잡히면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다. 운영팀 주임도 꼭 전화하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담당 간호장교도 하던 분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해주었다. 이 모든 게 감사했다.
운이 좋게도, 감사하게도 일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함께 일했던 다른 상담사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 그들이 몇 달을 무직 상태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올해도 금연 사업 승인이 났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권해지지도 않는다. 그들이 어딘가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았기를 바라는 것이 현실적이다. 난데없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 시국에 바이러스가 그들을 비켜가 그들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