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가방의 무게가 지금보다 가벼웠으면 좋겠다.

미안합니다, 젊은 그대

by 비단구름

어쩌다 보니 아침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선 고등학교를 지망할 때 1차로 5 지망까지 원하는 순서대로 작성하고 2차로 열몇 개의 고등학교를 원하는 순서로 작성한다. 1 지망의 학교가 배정되면 다행이지만 1 지망으로 지원했던 학교의 정원이 다 차면 랜덤으로 다른 학교에 배정된다.


열몇 개의 고등학교 중 자립형 공립학교가 몇 개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모두 일반고인데 다 같은 일반고 중에서도 아이마다, 엄마들 나름대로 선호학교를 마음에 두고 있다.


특목고나 외고를 지망하는 것이 아닌데도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엄마들끼리, 아이들끼리 정보를 주고받고 의견을 나누고 고심하여 희망 학교를 결정한다. 전년도 서울대 입학시킨 성적과 최근 몇 년간의 학업성취도가 학교를 지원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반고임에도 불구하고 인기 있는 학교는 나름 경쟁률이 치열해서 그 해 그 학교 정원보다 많은 아이들이 지원하면 떨어진다. 나도 아이와 진중하게 상의해서 1 지망부터 5 지망까지 작성했다.


우리의 지원 기준은 집에서부터 학교까지의 거리다. 어느 학교가 대학을 잘 보내는가 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것이 최고라는 단순한 생각이 나와 아이가 통했다.


우리는 네이버 지도 앱을 열고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거리, 그중에서 도보 이동경로와 예상 시간을 체크했다. 그리하여 1 지망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 도보로 등하교를 할 수 있는 학교로 적었다.


1 지망이 아니면 사실 2 지망부터는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2 지망, 3 지망의 학교도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인기 있는 학교이기 때문에 나의 2 지망 3 지망 학교는 다른 누군가의 1 지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1 지망에 떨어지면 2 지망, 3 지망의 학교에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못했던 학교(우리 기준으로는 집에서 먼 학교)로 배정을 받게 된다.


고등학교 배정 확인을 하던 날 아이와 나는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기뻐했다. 도보로 다다를 수 있는 우리가 원하던 1 지망 학교에 배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나는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늘 잠이 부족한 아이의 가방의 무게가 아이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만큼이나 무겁기 때문이다.


아이의 가방은 어림잡아 최소한 6킬로그램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내가 들고 운동하는 아령의 무게가 6킬로그램인데 6킬로그램 아령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팔운동을 하는 내가 어찌 된 일인지 아이의 가방을 들어 보니 가방 바닥에 접착제라도 붙은 것 마냥 가방이 방바닥에 붙어서 꿈쩍을 않는 것이다. 기분 탓일 거다.


오늘은 2학기 중간고사 시작 날이다. 평소보다 가방이 가벼울 테지만 차키를 들고 따라나섰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밖에 나가니 아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 교생 선생님한테 줄 마카롱을 사야 한다며 편의점에 내려달라고 했던 같은 반 친구와 같은 단지의 다른 반 친구를 뒤에 태우고 매일 아침 함께 등교를 한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아이 친구들이 시험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눈 감고 뜨면 금요일이었으면 좋겠다는 둥 시험 첫날답게 시험의 무게감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곧 보이즈가 어떻고, NCT(엔시티)가 어떻고, 요즘 누구를 좋아하니 누구 아이템을 이제 그만 팔아야겠다는 둥, 어째 시험 아침에 하는 소리치고는 낯선 발랄함이다.


신호 대기에 멈춰 건너편을 보니 같은 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아이는 프린트를 손에 들고 보면서 걷고 있었다. 시험 날 아침 풍경이었다.


“얘들아, 저기 저 아이는 프린트 보면서 가는데 너희들은 시험 보러 가는 애들 맞니?”


“아, 저희는 그러니까,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


그러더니 까르르, 하는가 싶은데 거울로 슬쩍 보니 얼굴에 시험의 무게까지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가방의 평균 무게가 6.56킬로그램이라고 하니 6킬로그램 아령보다 무겁다고 느낀 것은 기분 탓은 아니었다. 내 어깨에 매달려 있던 진로, 입시, 성적, 인간관계, 가정사의 무게를 알기에 아이들에게 매달려 있는 삶의 무게 또한 어떠할지 안다.


처음엔 일주일만 데려다주어야지 했던 아침 기사 역할은 뒷자리에 앉은 몇 분 동안 잠시 가방의 무게를 내려놓고 재잘대고 까르르 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약해져 어쩌다 보니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마음 같아선 모든 아이들의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이 아이들을 아끼듯 세상도 이 아이들을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우리의 아이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미안합니다, 젊은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