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 같은 사람들을 발견하면 좋겠어.
▣ 마스크 할머니와 헤어지고 나는 다시 우산을 쓰고 소나무 숲 아래를 걸었다.
그새 비를 약간 맞았지만 지금이라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벅저벅 느릿느릿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매주 교회를 나가는 성실한 신자도 아니면서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어찌 된 영문인지 놀라웠다. 그러나 나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내 의지로 하나하나 읊조렸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힘이 있어 감사합니다.”
▣ 한때 이런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선 적이 있다.
‘오늘 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대단히 순진무구하고 우스워 보이는 이런 마음을 간직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니! 염세적이고 냉정하기까지 한 지금의 나는 한때 그런 마음을 품고 있던, 지금과는 믿지 못할 정도로 또 다른 심성의 내가 있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고 있었다.
종종, 때때로, 가끔, 그들은 내 앞에 나타난다. 잊고 있던 마을을 되찾아 주려는 듯이. 우연처럼, 필연처럼, 그들은 닫혀 있는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간다. 잊을 만하면 내 앞에 나타나 치워두고 있던 열매를 꺼내 보여준다.
그들은 내게 불쑥 길을 물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갑자기 몸이 굳어 광장 한복판에 쓰러지기도 했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버스 창문에 붙은 벌레를 잡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거리에서 위협을 받기도 했다. 계곡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유흥가 거리에서 윗옷이 벗겨진 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한테 맞고 있기도 했다. 엘리베이터 교체로 택배가 일층에 쌓여 있는 걸 들지 못해 끙끙대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그들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하필 그 시간, 그 자리. 몹시 우연적이게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를 도울 힘이 있어 감사합니다.”
▣ 며칠이 지나고 여느 날처럼 아침 산책을 나갔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아침 공기가 시원해져서 아침 산책을 나갈 땐 얇은 겉옷을 걸쳐야 했다. 일정이 있어 빨리 돌고 들어갈 때 도는 코스로 진입했다. 빠르게 오른쪽 길을 지나 광장을 가로지르고 왼쪽 오솔길이 가까워지자 불현듯 마스크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저기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앞을 보니 마스크 할머니가 눈앞에 서 계셨다.
“저번에 그 아기 엄마 맞지요?”
마크스 할머니가 나를 알아봤다.
“네. 맞아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나는 반갑게 물으며 마스크 할머니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안색도 밝아 보였고 며칠 전 쓰러졌을 때보다 젊어 보였다. 그녀의 건강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 안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한 번 만났으면 하는데.”
마스크 할머니가 만나서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한 번 만나자는 말의 의미가 함께 식사를 하자, 내가 사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았다.
“밥 한 번 먹어요.”가 “안녕하세요.”처럼 예의상 쓰이는 것과 달리 언제 갈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마음 약한 그녀들의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미뤄지는 경우는 있어도 대게 진심인 경우가 많았다.
마음 약한 그녀들은 “밥 한 번 먹자.”라고 뱉으면 진짜 밥 한 번 먹을 때까지 그 말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는 것이 내가 동네 할머니들과 이런저런 일을 하며 얻은 결론이었다.
“괜찮아요. 좋아 보이셔서 다행히예요.”
나는 그녀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고마워서 그래. 한 번 만나. 밥 한 번 먹어. 응?”
마스크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몹시 진심 같았는데 이래도 되나,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머뭇거리자, 그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기에 전화번호 입력해 줘요. 나는 이런 거 잘 못해.”
나는 마스크 할머니의 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제 이름을 뭐라고 입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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