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 [도토리 사랑]
아침이 언제나 상쾌한 것은 아니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아침과 인사하기 위해 베란다로 가 창문을 열었다. 창문에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오른쪽 어깨가 많이 시리다. 얇은 긴팔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어젯밤 일은 오늘 아침까지 마음을 시리게 한다. 어젯밤 하군은 공부에 건성인 사로를 불러 세우더니 저래도 되나, 갑자기 왜 저러나, 왜 저렇게까지, 싶을 만큼 혹독하게 혼을 내주었다. 사로를 한껏 혼쭐을 내고 안방으로 들어온 하군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쏟아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죽으면 쟤들은 어떻게 살지?”
“죽으면 끝이지 뭐.”
하군이 사로를 닦달하는 소리와 시든 콩나물 대가리처럼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사로의 모습을 번갈아 떠올리며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언제까지 뒷바라지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 없으면 쟤들은 어떡하지?”
하군은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안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중얼거리듯 말을 걸었다.
“일단은 빈곤해지겠지. 그다음엔, 살 길을 찾아봐야겠지?”
“애한테 뭐라고 하면 괜히 애 기죽이는 것 같아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보자니 쟤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너무 걱정되고.”
“잘했어. 잘했어. 아주 더 혼내주지 그랬어.”
빈정거림은 아닌데 빈정대는 듯한 말투가 튀어나온 까닭은 둘 다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군은 사로에 이어 나와도 다투었다.
십여 분 사이에 분노-걱정-자책의 쓰리 콤보 감정 변화를 달성한 하군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살면 사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지, 뭐. 내려놓고, 포기하고, 체념하면 모든 면에서 편하다. 그게 자식일지라도, 그게 삶일지라도. 하지만 하군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살면 사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지, 에는 하군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깨달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하는 말이지만, 내려놓고, 포기하고, 체념하면 모든 면에서 편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만, 하군이 이 말의 행간을 파악하기보다 이 문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엉뚱한 실행을 하여 죽어버리면 곤란하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사십오 분에는 어김없이 ‘은혜 시니어 데이케어’ 차가 집 앞에 서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각에 도착해 있는 작은 승합차가 신뢰감을 준다. 저런 곳이라면 엄마를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헐렁한 블라우스 티셔츠를 입은 육십 대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어기적어기적 걸어와 차에 오르는 노인과 노인을 태운 승합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아침 일찍부터 하군이 사로를 깨우더니 청소기를 꺼내 청소를 시켰다. 잠이 덜 깬 사로가 청소기를 돌리고 하군이 식탁 의자를 하나씩 들어 전부 거실로 옮기고 티비장 위의 물건들도 치워가면서 집안의 먼지란 먼지는 모두 빨아버릴 듯한 기세인데 잘 자고 있는 사로를 괴롭히려고 저러는 건지, 나 보라고 저러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사로에게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기를 돌리라고 명령 비슷한 것을 내리고 하군은 앞 베란다로 갔다. 앞 베란다를 청소할 모양이었다.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사로를 부르더니 가여운 녀석에게 또 뭐라 뭐라 지시를 한다.
“아빠가 바가리 갖고 오래.”
주방에서 바스락 거리는 나에게 다가와 사로가 바가리를 찾았다.
“바가리? 바가리가 뭐야?”
집수리하는데 사용하는 도구 이름인가?
“몰라, 바가리 갖고 오라는데.”
“새로 나온 거야? 가서 똑바로 다시 물어봐.”
도대체 그놈의 바가리가 뭐냐고, 왜 집에 있지도 않은 그딴 걸 갖고 오라고 불쌍한 녀석을 아침부터 똥개 훈련을 시키는 것이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가서 똑바로 알아오라고 애꿎은 사로를 타박했다.
사로가 다시 앞 베란다로 가 쭈그리고 앉아있는 하군과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 가 싶더니 돌아왔다.
“바가지 갖고 오라는데. 우리 집에 바가지 있나?”
“아니, 너는 어떻게 바가지를 바가리로 들을 수가 있니?”
나는 사로에게 성을 낸다.
“나는 바가리라는 게 있는 줄 알았지.”
사로는 나에게 성을 낸다. 지도 답답한 모양이다.
청소를 마치고 사로는 책상에 앉았다. 사로는 이번 주 수행평가가 일곱 개인데 몇 과목은 교과서를 참고해서 기입하면 되는 간단한 거라지만 사로가 며칠 째 붙잡고 끙끙 거리는 것은 무려 3페이지나 되는 ‘생애 설계/진로 및 직업설계’에 관한 것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아직) 모르겠음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이것도 아직) 모르겠음
내가 원하는 직업 탐색: 하는 일, 필요한 자격증, 급여 수준, 종사자 수, 근무환경, 근무시간, 직업 안정성, 사회적 인지도, 승진기회--------------------------------------------------------?????????
어떤 사람과 언제 결혼할 것인가?----------------------------------------Seriously?
결혼을 위한 자금 준비는? ----------------------------------What the h...(물가상승률 계산 못함)
자녀 교육비는?-----------------------------------------------결혼을 할런지도 모르겠음
노후준비는?--------------------------------------------------------노후가 뭐임?
“이런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이라니. 차라리 수학 문제 10페이지를 풀어가는 편이 낫겠군. 아니면, 영어 단어 2만 개쯤 외우는 편이 빠르겠군.”
나도 이럴진대 페이지 수가 문제가 아니라 어느 날은 한참 이것도 관심이 가고 저것도 관심이 가다가, 어느 날은 아무것도 흥미가 없는 마당에 미래의 삶이 그려질 리 없는 사로는 아직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해 한 페이지는커녕 한 칸 작성하는 것도 애를 먹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 모습을 답답하게 여기던 하군이 사로를 붙잡고 일장연설을 하는 광경까지, 하군과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하건만, 문맥상 ‘바가지’가 분명한 것을 혹시 ‘바가리’라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쓸데없이 무한한 배려심으로(세상 어딘가엔 ‘바가리’가 있을 수도) ‘바가리’를 찾는 사로에게 ‘게으르면 소가 된다.’며 훈계인지 잔소리인지를 한 시간 가까이 쏟아부은 뒤 하군은 사로의 방으로 들어가 프린터로 이력서를 출력했다. 하군이 방에 처박혀 이력서를 출력하는 동안 나는 영문도 모르고 아침부터 봉변을 당한 가여운 사로에게 속삭였다.
“아빠가 너한테 왜 그러는 거 같니?”
사로가 대답이 없다. 모를 테지. ‘바가리’가 있을 줄은 알아도 그 외엔 한참 아무것도 모를 나이다. 백수 아빠의 식은땀 나는 초조함도, 일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구직자의 두려움도,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가장의 무게도.
“아빠는 네가 아빠처럼 살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물론 아빠처럼 사는 게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아빠로서는 염려가 되는 거지. 네가 아빠 나이 됐을 때 아빠처럼 힘들게 살까 봐. 널 미워하는 게 아니야. 알고 있지?”
사로가 대답이 없다.
“우리 가족이 물에 빠지면 아빠는 틀림없이 너부터 구할 거야. 아니, 너만 구할지도 몰라.”
사로가 대답 대신 이해한다는 의미의 작은 고갯짓을 했다.
오늘도 하군은 면접이 있다. 티맵으로 면접 회사까지 거리를 체크한 하군이 “한 시쯤 나가면 되겠지?”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생각을 정리하는지 눈을 감는다.
“어디가?”
“누구 만날 사람이 있어. 일종의 면접 같은 거야.”
나는 눈을 감은 하군을 본다. 하군의 방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커피 줄까?”
“커피 좋지.”
달달한 믹스 커피를 타서 하군 가까이 놔주고 하군과 적당히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달콤한 향이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눈을 감고 있는 하군을 관찰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여러모로, 심난하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학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볼걸, 그랬으면 지금쯤.
공기업에 들어갔어야 할까, 그랬으면 지금쯤.
아니, 하군의 성향 상 이런 지지부진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되지도 않는 생각은 내가 하는 거겠지.
하군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가정에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그 생각뿐일 거다. 틀림없이.
하리와 사로가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뉴스를 확인하며 세상 걱정을 하고 나라 걱정을 한다. 가장 마음 아프고 가슴 저미는 기사는 아이들의 죽음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약자들의 삶, 사회 구성원의 화합과 상생 이런 것엔 관심 없어 보이는 뉴스를 접하면 염려스럽다.
우리는 사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가꾸고 얼마나 더럽힐 수 있는지, 세상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 동시에 얼마나 안 좋아지고 있는지, 이곳은 얼마나 발전하고 어느 정도 저물어 가고 있는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얼마만큼이 남아 있는지.
점심을 먹고 씻고 나온 하군이 곧장 나갈 채비를 했다. 허리를 수그리고 구두를 신은 뒤 휙, 돌아서 나가는 하군의 뒷모습을 보며 대봉투에 넣지도 않고, 엘 파일에 끼우지도 않은 채 하군의 손에 들려 낱장 낱장 하게 흔들리는 이력서에게 잘 다녀오라고 대신 인사를 전했다. 우리 하군 잘 부탁한다고.
하군이 나간 후 곧바로 각방의 이불을 교체해 주었다.
안방, 하리 방, 사로 방의 침대 패드를 교체해 깔아주고, 얇은 여름 이불을 도톰한 가을 이불로 교체해 덮어주고, 베개 커버를 새로 씌워준다. 50분쯤 걸리는 작업이지만 순환 운동을 하듯이 이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작업을 수행하다 보면 몸이 후끈, 여름에는 땀이 나고 겨울에도 진땀이 나는 집중력과 스피드를 고루 요하는 난이도 중상의 노동이다.
가장 최고 난도는 사이즈가 큰 안방 침대 이불 교체다. 가로 230, 세로 250센티미터 크기 이불의 솜을 빼고 새로 깨워 넣는 거부터 난관이다. 내 몸집보다 서너 배는 거대한 이불의 끄트머리를 찾기 위해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가 솜을 묶어 넣는 것은 향유고래 배속에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제페토 할아범이 된 기분이다.
이불을 새로 깐 잘 정돈된 침대를 보고 있으면 ‘힘을 내자.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힘을 내는 것 외에 별도리가 없다’라는 식의 청승의 나락에서 방귀 뀌고 있던 마음에서 ‘뭔가 해봐야겠다. 뭐든 다시 시작해 봐야겠어. 어맛?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똥꼬 발랄한 기운이 샘솟는다.
사로의 여름이불, 패드, 베개커버, 하리 침대 패드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세탁기에 한 번에 들어가지 않으니 몇 개씩 나누어 세탁해야 한다. 이번 주는 주간 업무계획에서 이불빨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불과 베개커버를 다 벗기고 침대 패드를 다 내린 뒤 새 이불로 교체하기 위해 이불장을 연 순간 과자 봉지들이 이불장에 모여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땅콩 깨 범벅’ 무려 450그램, ‘참깨 고소해’ 600그램, ‘웰빙 미니 꽈배기’ 600그램, ‘초코 락’ 무려 1000그램. 하리의 취향은 아니고, 나와 사로는 보는 즉시 먹어 치우니 보나 마나 하군 짓이다.
그래도 그렇지. 왜 이런 곳에.
산골짝에 일만 하는 다람쥐가 추운 겨울을 대비해 양볼이 터지도록 도토리를 물어다 나무 아래 묻어놓고 정작 도토리 묻은 나무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이래 놓고 매번 하군도 몇 주가 지나도록 먹지도 않는다. 혹시 퇴근하고 이불장을 열어보곤 남몰래 쟁여둔 과자봉지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중인가?
희주의 죽음은 예상 밖의 결과를 발생시켰다. 은숙이 남편과 재결합한 것이다. 은숙의 남편이 내연녀와 완전히 결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던 은숙네 식구들과 남편네 식구들이 똑같은 말을 했다.
“희주가 가면서 좋은 일 했네.”
“지 엄마 아빠 같이 살라고 희주가 갔네.”
뭐 이런 거였다. 은숙과 그녀의 남편도 따지고 보면 잔인한 서사를 아무렇지 않게 뱉는 무례한 어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가여운 어린양이었다. 죽음으로 가정을 다시 결합하게 만든 희주를 대신해 이번에는 내가 제대로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거였는데 나는 또 그걸 잘 해내지 못했다. 다섯 살에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한 희주가 살아 있었다면 서울대쯤 쉽게 갔겠지만 학교에 입학하고서야 겨우 한글을 깨친 나는 서울대는커녕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기 힘들 만큼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은숙은 하나 남은 자식이 어떻게 될까 봐 공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위로하면서도 그래도 사 년제는 나와야 할 텐데,라는 모순적인 기대를 했다.
끝까지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은숙은 수능 성적이 나온 날 실망을 감추고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위로했다. 은숙의 서울대 약대 친구들의 자식들이나 사촌들과 달리 번듯한 직장이 아닌 직장을 구했을 때도 은숙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만도 대견하다며 뛸 뜻이 기뻐했지만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곧 그만두었다. 나는 매번 은숙에게 잠깐의 기쁨도 허락하지 않고 곧장 실망시켜 버리는 잔인하고 악한 자식이었다.
은숙의 재결합은 또 다른 결과를 이끌어냈다. 그토록 바라던 재결합을 한 은숙의 시커먼 속은 나아지지 않고 더 까매졌다. 주먹으로 명치를 세게 두드리며 휴, 하고 한숨을 쉬어도 꽉 막혀버린 가슴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잘해보려는 의도가 있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부부. 결국 둘은 두 번째로 헤어졌다. 이번에는 영영.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에도 은숙의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안은 엉망이었다. 빨래는 늘 쌓여있었다. 몇 끼를 굶는 날이 흔했다. 은숙은 양주의 보육원에서 부모가 있는 아이를 맡아 준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양주의 보육원으로 향했다.
“금방 올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유를 맡기고 보육원을 빠져나와 돌아오는 길 저수지에 들렀다.
“나는 물가에 서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청록색의 저수지를 바라보았어. 죽으려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 그저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흘렀어. 그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어. 나는 점점 더 그를 사랑하는데 그는 점점 더 못되어지고 있었어. 나는 그에게 무시당하고 있었지.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우스워하고 있었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은숙은 곡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더 이상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기로 했어. 오직 연민뿐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그를 축복하며 보내주기로 했어. 그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소원해. 다만 나는 도저히 상처받았던 기억을 지울 수 없어. 그것만큼은 되지 않았어. 아무리 묻어두어도 묻힌 시간만큼 눈물로 되돌아왔어. 눈물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듯 나는 공기방울이 되어 공기 중으로 증발하고 싶어.”
저수지는 고요했다. 바람이 윙, 하고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인적 없는 저수지가에 빼곡히 들어선 울창한 수목들이 하나같이 은숙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울다간 잉어들도 따라 울겠어.”
은숙이 고개를 돌린 곳엔 노인이 앉아 있었다.
“같이 낚시할래?”
은숙은 노인의 곁에 앉았다. 노인은 회색의 긴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노인과 함께 잔잔한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었어. 발밑까지 주황빛, 검은빛의 알록달록한 잉어들이 몰려들었다. 노인은 몰려드는 잉어를 보고도 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노인의 바구니는 비어 있었다.
“시간 때우려고 앉아 있는 거야. 낚시는 그저 속임수지. 너도 그렇게 해. 힘들면 그냥 앉아서 쉬어.”
노인과 함께 저수지의 잉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선유가 보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가야겠어요.”
은숙이 노인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보육원으로 돌아갔을 때 일주일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유는 그새 키가 더 작아진 거 같았어. 꼬박 하루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고 했어.”
“그래서 빵을 주었더니 먹더라고요.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분홍색 앞치마를 한 보육원 선생이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어. 보육원 선생에게 선유가 밥보다 빵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를 세게 맞은 거 같았어. 심장이 철렁했어. 선유가 밥을 늦게 먹는다고 매섭게 혼내곤 했어. 선유는 빵을 좋아하는 거였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다그치고 몰아붙이고 있었어.”
선유 곁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선유가 여기 온 다음 날 근처 야산으로 체험학습을 나갔었지요. 그때 선유가 수풀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유기견을 발견했어요. 덕분에 보육원에서 임시로 보호하고 있지요.”
“그렇군요.”
은숙이 대답했다.
“선유는 틈만 나면 강아지한테 달려가 강아지와 논답니다. 강아지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렇네요.”
은숙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 선유는 하늘에서 내려온 맑은 심성의 아이랍니다. 길 잃은 강아지를 누구보다 빨리 발견했어요. 도움이 필요한 생명을 발견하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랍니다. 마음이 열려있는 소중한 아이예요.”
은숙은 외로운 선유 곁에 있어주었을 강아지에게 다가가 마주 보고 앉았다.
“만져봐도 되나요?”
“그럼요. 엄청 순하답니다. 선유가 직접 이름도 지어 주었어요. 초록 숲에서 발견한 아이라서 그린이라고요. 사람처럼 성도 붙여 주었답니다. 앞으로는 슬프지 말고 해님처럼 반짝반짝 빛나라고 해그린이라고요. 놀랍지 않나요?”
은숙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은숙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육원 선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선유와 해그린을 집으로 데려왔다. 셋은 해그린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가족이 되어 서로를 아껴주었다.
“은숙 씨의 두 번째 선택은 뭐였어?”
내가 물었다.
“좋은 엄마가 아니었던 시간들을 사과하는 거. 평생을 진심으로 사과하며 사는 거.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거.”
은숙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은숙 씨는 좋은 엄마였어. 누가 뭐래도 나에게 하나뿐인 최고의 엄마였어. 엄마, 언제나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하는 눈에 눈물이 맺혔다.
“죽을 뻔한 순간 어쩌면 신이 주신 두 번째 기회일 거야. 나는 신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에 늘 감사해.”
은숙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은숙의 손을 잡았다. 마르고 앙상해진 손의 온기는 그대로였다.
엄마는 나를 친구처럼 대했다. 엄마 말을 더 잘 들어주고 엄마를 더 잘 위로해 주었을지도 모르는 희주를 대신해 말이 없고 표현을 하지 않는 나를 붙잡고 엄마가 친구에게 하듯 이 얘기 저 얘기를 털어놓으면 나는 응, 그렇구나, 하고 무심하게 대꾸했다. 중학교 삼 학년 어느 날 엄마에게 “그래서 우리 은숙 씨 그 남자가 말 걸어서 기뻤어?”라고 되바라지게 물었을 때 “엄마한테 그게 무슨 버릇없는 말투야.”라고 혼내는 대신 짓궂은 소꿉친구와 놀 듯 몇 년 만에 하하하, 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막 까불고 장난치는 친구가 필요할 만큼 엄마는 오랜 시간 외로웠다.
“엄마, 미안해. 엄마 혼자 오랫동안 외로웠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미안해.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변명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해. 오랫동안 엄마를 외롭게 해서 미안해. 나 때문에 견디게 해서 미안해. 엄마 삶을 희생하게 해서 미안해.”
늦게 깨달아버린 바보 같은 눈물이 흘렀다. “괜찮아.” 은숙이 내 등을 토닥이며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약속이 있어 늦는다던 하군이 술을 한잔하고 얼굴이 벌게져서 들어왔다. 한 손으로는 노트북 박스를 한 손에는 검은 봉지를 들고 바스락거렸다.
“아들!”
들어오자마자 사로를 찾는다. 하군이 가성비 좋은 저렴한 노트북을 사서 들어왔다.
“아빠가 네 노트북 사 오셨어.”
하군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회사에서 지급한 최신 사양의 노트북(꽤 괜찮았는데)을 반납했다. 그리곤 급하니 아무거나 저렴한 거로 사 왔다. 방에 있는 사로를 부르자 아직 풀이 죽은 사로가 나왔다. 기타를 치거나, 농구를 하거나, 축구를 하거나, 주짓수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똥을 싸는 거 외에는 책상에 앉아 있기는 한 사로로서는 내심 억울하고 답답할 법도 하다. 딴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내지는 압박감 같은 것을 안고 애라는 걸 쓰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너 주려고 새 노트북을 사 오셨어.”
사로가 박스를 풀었다.
“어때?”
흥이 나지 않는지 사로가 대답이 없다.
"잘 봐봐."
“원래 쓰던 거 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왜? 안 좋은 거야?”
“아니, 그냥 전에 게 더 나은 거 같은데.”
잔뜩 곯아서 쳐다도 안 보는 줄 알았더니만 볼 건 다 보았는가 보았다. 이초 내지 삼초 사이 새로 사 온 노트북의 겉면만 보았을 뿐인데 사로는 그 찰나의 순간에 새로 사 온 노트북이 현재 사용하는 것보다 무겁고 조금 더 크고 키보드도 조금 더 구식 디자인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런 요즘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얼 가르치고 있는 걸까. 아이들에게 어떤 시대를 강요하고 있는 걸까. 우리의 시대에 살라고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새로 사는 걸 왜 이런 걸 사온 거지, 의문이 들어 옆에 있던 하군을 찌릿, 한 눈동자로 보았다.
“회사에 노트북을 반납하는 바람에 당장 내가 쓰려고 저렴한 거로 샀긴 했는데 그래도 지금 쓰는 거랑 차이는 없을 걸?”
사로가 원하면 새 노트북을 사로에게 줄 마음이었던 모양이었다. 하군의 말에 새 노트북이니 내심 고민해 볼 여지는 있는지 사로가 십 분쯤 두 개의 노트북을 비교해 보았다. 사양은 비슷했다. CPU 크기도 비슷했다. 둘 다 14인치 모니터인데 새로 사 온 것이 투박한 테두리 때문에 전체적으로 더 크다. 그리고 더 무겁다. 탐색을 마친 사로가 대답했다.
“쓰건 거 쓸래.”
하군은 사로의 마음을 잡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검은 봉지를 흔들며 신나게 말했다.
“우리 아들 좋아하는 키위 사 왔지! 하리가 좋아하는 포도도 있고 바나나도 있지!”
술만 먹으면 주사로 뭔가 사들고 오는 걸 태아 때부터 본 하리와 사로가 나와 보곤 그렇구나, 한다.
“저녁은?”
술을 먹었으니 뭘 먹긴 했겠지만 예의상 관심을 가져본다.
“먹었어.”
짐작대로 드셨단다.
그런데 누구랑?
일자리를 부탁하러 다니는 건가?
“뭐 먹었어?”
“모둠전.”
포도와 키위와 바나나가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털썩, 하고 식탁에 올려놓고 하군은 옷을 갈아입고 씻겠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뒷모습이 왼쪽으로 비틀, 하다 오른쪽으로 휘청, 한다. 목이 마를 하군에게 달콤한 과일을 주기 위해 검은 봉지에 담아 온 골드 키위를 꺼냈다. 여섯 개의 키위가 들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한 개는 골드키위가 아니라 그냥 키위였다. 뭐지? 새로운 형식의 밑장 빼기? 아니면 끼워 팔기? 혹시 덤더럼덤 덤?
“포도가 있었어?”
먹기 좋게 자른 골드키위와 함께 포도도 씻어 접시에 풍성하게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더니 씻고 나온 하군이 보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다람쥐가 까먹고 놔둔 나무 아래 도토리는 그 자리에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건실한 도토리나무가 되어 누군가에게 도토리묵을 선물하고 종족 다람쥐들을 살찌게 한다. 하군이 성실하게 이불장에 쟁여놓은 일용할 양식 덕에 나도 하리도 사로도 살찔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군이 옷장 문을 열고 그 안의 도토리들이 무사한 것을 보며 씩, 미소 지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