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해숙

by 비단구름

문숙은 다정한 남자와 결혼했다. 건실한 몸짓과 깊은 속이 전해지는 남자의 모습에 문숙은 남자와 결혼을 결심했다. 남자의 주변인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남자를 찾았다. 남자는 친구에게 여러 차례 돈을 빌려주었으나 한 차례도 돌려받지 못했다. 선배와 수익성이 확실한 사업에 투자를 하였으나 원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믿을만한 거래처 사람에게는 보기 좋게 사기를 당했다. 문숙이 불안해하며 말려도 의리와 신의를 중시하는 남자는 문숙의 불안한 예감보다는 사람들을 믿었고 눈 감고 돌진하는 소와 같은 판단으로 불안에 바들바들 떠는 문숙의 유리 멘털을 벼랑으로 몰았다.


맞벌이를 위해 시골의 부모님께 태우를 맡겨두고 주말에 만나는 생활을 하던 문숙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한숨 섞인 푸념이 늘었다. 남양주로 올라오는 일요일마다 엄마 아빠와 같이 살고 싶다고, 나도 데려가라고 울며 바닥에 드러눕는 태우를 매몰차게 떼어놓고 내빼듯 도망 친지 십 년 만에 문숙 부부는 스무 평 아파트를 마련했다. 시댁에 맡긴 태우도 데려왔다. 불고기, 잡채, 문어숙회, 백설기, 광어회, 매운탕까지 문숙은 평소라면 꿈도 못 꿀 음식들을 한 번에 차려낸 상차림으로 그간 바라지를 해준 양가 식구들을 대접했다.

“부자가 된 거 같아요. 저는 이제 부러운 거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우리 태우도 같이 있고.”

문숙이 세상을 가진 것처럼 활짝 웃었다. 집들이하던 날 문숙의 얼굴은 근심 없는 사람처럼 활짝 웃는 마지막 함박웃음이었다.


동업을 하던 문숙의 남편이 일 년 동안 수입 없이 버티다 사업을 접었다. 생활비로 썼을 뿐인데 모아둔 돈의 잔고는 금세 바닥이 났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주식뿐이라고 하는 남편의 주장은 타당해 보였다.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아 투자한 주식으로 팔천만 원을 잃으며 문숙 부부가 매달 갚아야 하는 금액은 이자만 백만 원이 넘었다.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부는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십 년 만에 마련한 아파트를 사 년 만에 팔고 그 집에 전세로 살면서부터 문숙은 웃음을 잃었다.


“앉아 있다가 눈에 구멍이 난 것처럼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져. 사무실에서도 마트에서도 은행에서도 눈물샘이 통제가 안 돼. 마음을 독하게 먹으려고 노력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고장 난 수도꼭지가 얼굴에 달린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던 눈물을 어쩌지 못했던 문숙은 직장도, 직장 동료도, 매달 들어오던 급여도 잃었다. 어느 날 문숙은 아파트 상가 부동산 중개업소 벽에 붙은 시세를 확인했다. 문숙이 잠시 가졌다 지금은 빌려 살고 있는 아파트가 몇 년 사이 이억이 올랐다.

“이 조그만 집이 무려 이억이나 올랐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팔지 말고 가지고 있어 볼걸. 나는 진짜 복도 지지리 없다.”

문숙은 종종 해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네 부부 일은 너네가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 엄마한테도 우는소리 하지 말고!”

“내가 너 아니면 누구하고 얘기해. 나는 만날 사람도 없고 속 얘기를 터놓을 사람도 없어.”

태우한테 너무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며 문숙은 흐느꼈다. 마지막으로 문숙에게 매몰차게 짜증을 낸 이후로 해숙은 문숙과 연락을 끊었다.

“미안한데 돈 좀 있니? 오백만 원만 있으면 빌려줄 수 있어?”

육 년 만에 전화한 문숙의 부탁에 해숙은 사정을 묻지도 않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문숙의 사정을 알았어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영등포에 산 삼십오 평 아파트의 대출금을 상환하고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니는 현아와 민준이의 학원비만으로도 해숙 역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미안. 해숙아, 놀러 와. 태우가 이모 보고 싶대.”

“등신 같은 년. 저런 게 언니라고.”

해숙은 문숙의 전화를 집어던지듯 끊어버렸다. 칠 개월이 지났다. 오전 회의를 하는데 엄마가 쉼 없이 전화를 했다. 엄마는 평소에도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안부 따위를 물었다. 해숙이 인상을 찡그릴 때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언니 죽었다.


문숙은 새벽 네 시에 홀린 듯 걸어 나가 호수에 몸을 던졌다.

“애 엄마는 평소에도 잠에서 깨면 아침 운동을 나가곤 했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없길래 평소같이 운동 나간 줄 알고 출근했어. 이렇게 갈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 했어.”

문숙의 남편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빛이 들지 않아 컴컴하고 차가운 공기를 홀로 가르는 문숙의 마지막 모습을 시시티브이만 지켜보고 있었다.

“몹시 부지런한 사람이 새벽 운동을 가는 것처럼 언니는 가볍게 걷고 있었어. 걸으면서 뒤를 한 번 돌아보기도 하고 막 불빛이 켜진 떡집 앞에서 떡이라도 살 것처럼 잠깐 멈춰서 이것저것 보기도 하더라. 걸으면서 허리를 트위스트 하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어.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

해숙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뺨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애들레이드는 언니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 갔던 장소야.”

해숙이 울음을 삼키며 나지막이 알려주었다.


“우리 호주 갈까? 호주가 그렇게 근사 하대.”

“호주? 외국에 있는 그 호주? 제주도도 안 가 봤는데 무슨 호주야.”

문숙은 이미 마음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해숙이 고개를 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문숙의 눈이 확신으로 반짝거렸다.

“우리라고 해외여행하지 말란 법 있니? 돈은 걱정하지 마. 언니가 모아놨어.”

문숙이 통장을 보여주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해숙은 문숙의 손등을 보았다. 문숙의 손등에는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 끓는 기름에 닭을 넣다 기름이 튄 자국들이 핑크빛으로 변해 얼룩덜룩하게 남아 있었다. 문숙은 수업을 마치면 열 시까지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했고 어떤 날은 열두 시까지 소주방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말에는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나는 줄곧 너랑 해외여행 갈 날을 꿈꾸었어.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잖아. 나는 진짜 엄마한테 고마워. 평생 친구를 만나게 해 주었으니 말이야. 네 비행기 표는 내가 대줄게. 너는 네가 쓸 용돈만 챙겨. 엄마한테 보태달라고 해도 되고. 아니다. 아껴 쓰면 지금 있는 돈으로도 가능할 거야.”

제주도도 가본 적 없는데 호주라니! 해숙은 곧 문숙에게 설득되었다. 자매는 트렁크도 없었다. 자매는 책가방으로 쓰던 이스트팩에 짐을 챙겼다. 공항에 가서야 여행객들의 트렁크를 보고 아, 해외여행 갈 때는 트렁크에 짐을 챙겨야 하는 거구나, 깨닫고 둘이 킥킥거렸다.


“여행 책은 한 권이면 되겠지? 성경 책 보다 두껍고 무거워 두 권은 못 가져가겠어. 호주에 식염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식염수는 무겁지만 각각 두 통씩 챙기자. 수건은 네 장이면 충분하겠지? 팬티랑 브래지어랑 양말은 일곱 장씩은 챙겨야겠지?”

“샴푸 하고 린스도 챙겨야 하나? 가방이 너무 작은데.”

해숙이 물었다.

“호텔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챙기자.”

자매는 샴푸와 린스, 비누도 가방에 넣었다.

“두루마리 휴지는?”

“휴지야말로 매우 중요하지. 화장실에 휴지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것도 넉넉하게 챙기자.”

자매의 가방에 두루마리 휴지가 세 개씩 들어갔다.

“벌써 꽉 찼어. 화장품이 들어가지 않겠는데!”

“어떻게든 쑤셔 넣어 보자. 어차피 휴지랑 샴푸, 린스, 식염수 같은 거는 쓰고 나면 점점 부피가 줄어들잖아. 올 땐 가벼울 거야. 같이 쓸 수 있는 건 하나씩만 넣어. 화장품이랑 빗이랑 드라이기 같은 거 말이야. 나눠 쓰면 돼.”

방바닥에 너저분하게 펼쳐놓은 물건들이 기적처럼 가방에 다 들어갔다. 자매는 여행 전날 호주 얘기를 하며 밤을 새웠다.


애들레이드 스트리트는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던 자매의 경유지였다. 자매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호주의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집중했다. 아끼는 것이 습관이 된 문숙과 언니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던 해숙은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물 한 병도 사 먹지 않고 버텼다. 우리도 시원한 거 하나씩 먹을까? 하고 해숙이 물으면 조금만 참자. 그럴 수 있지? 물은 이따 호텔에서 마시면 돼. 사 먹으면 돈 아깝잖아,라고 문숙이 설득했다.


자매가 애들 레이트 스트리트에 도착했을 때 호주 전역은 사십 년 만의 폭염으로 낮 최고 기온이 사십 도까지 올라갔다. 더위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뉴스가 나왔다.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먹을까?”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것을 본 문숙이 물었다.

“오, 정말? 그러자.”

자매는 애들레이드 거리의 노상 카페로 들어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서 앉았다.

“여태까지 먹은 아이스크림 중 가장 맛있다.”

“정말 그래. 최고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녹아 흐르기 시작하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으며 문숙이 환호했다.


자매가 앉아 있는 건너편 연두색 잔디밭 광장에선 일광욕을 하며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광장 한편에서 남자와 여자 무리가 일반 피아노보다 세배나 길이가 긴 자이언트 그랜드 피아노를 밀고 끌어 광장에 놓았다. 섬세하게 수놓은 자개무늬로 뒤덮인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검정 피아노가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냈다. 정오의 햇살을 받아 피아노가 매끄럽게 윤이 났다. 얄따란 줄무늬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건장한 남자와 검정 민소매 티셔츠와 타이트한 검정 바지를 입은 여자가 피아노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여자가 피아노 건반을 누르자 딩, 피아노 소리가 진동을 만들며 공기로 퍼져나가 사람들이 기대감을 안고 피아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연미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지상 낙원의 연주 같은 달콤한 멜로디가 광장 전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람들이 피아노 연주하는 남자에게 박수를 보냈다. 잔디밭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광장의 대형 스크린에 가사가 떴다. 자매는 멀리 앉아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따라 부르기 힘들었지만 가사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분위기에 취해 따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쑥스러워진 자매는 눈을 맞추며 웃었다.

“청아한 음색으로 노래를 꽤 잘 부르는구나. 가수만큼은 아니지만.”

문숙이 말했다.

“그 말은 가수 아닌 사람 중에는 내가 가장 잘 부른다는 말이지?”

문숙의 칭찬에 해숙이 으쓱했다.

“그래. 네가 이렇게 노래 잘 부르는 줄 지금 알았어.”

“가수를 할 걸 그랬나?”

자신감을 받은 해숙이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이 순간만큼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업종에 발을 들여야 하는지, 대학원을 가면 학비는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재환이와 화해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과연 취업이나 할 수 있을지 고민만 가득한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났다. 답을 찾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다고 속삭이는 세상을 오롯이 느끼는 순간이었다.


“저기 봐!”

광장에 앉아 있던 사람 중 누군가 소리치자 자매는 소리 나는 방향을 올려 보았다.

“연이네. 외국 사람들도 연날리기를 하는구나!”

자매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 얼레를 돌리고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수많은 인파에 묻혀 누가 연을 날리고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 쾌청한 하늘을 연이 꼬리를 펄럭이며 피아노 연주에 맞춰 춤추는 댄서처럼 춤추듯 날았다.

“정말 아름다운 연이야!”

사람들이 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연을 보고 감탄을 내뱉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결심했어.”

문숙이 말했다. 피아노 연주자가 다음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자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빠르고 경쾌한 템포의 음표들이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두둥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가면 유학 준비할 거야. 호주로 유학 오려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지지 않니? 저기 잔디 광장도 멋지고 말이야. 저기 앉아 있는 한가로워 보이는 사람들도 멋지고 말이야. 이렇게 쪄 죽을 것 같은 미친 날씨조차도 다 멋져. 세상은 그냥 다 멋진 거야!”

문숙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디자인 공부를 더 해볼까 해. 사람과 자연 사이의 공간을 보는 눈을 공부하고 싶어.”

문숙이 말했다.

“그러면 나는? 우리 헤어지는 거잖아.”

“영영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몇 년이잖아.”

“난 몇 년도 싫어.”

해숙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아봤는데 호주에선 대학원 과정 일 년을 하면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그쪽도 알아보려고 해. 호주에서 교사하며 일 끝나고는 여기 광장에 누워 하늘을 보면 근사할 거야.”

“언니랑 떨어져 사는 거 싫은데.”

해숙의 말끝이 흐려지자 문숙이 말했다.

“같이 갈까? 우선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는 거야. 카페에서 일하면서 영어도 늘리고 돈도 좀 모으는 거지. 나는 유학도 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어. 그리고 이렇게 밝고 화사하게 걱정 없이 살 거야. 평생!”

광장 너머 하늘과 땅이 이어진 청사진에 눈을 맞추며 활짝 웃는 문숙의 얼굴엔 자신에 대한 사랑, 이 순간의 나를 만든 과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짐 싸는 법도 몰랐지만 그때가 가장 설렜어. 언니랑 함께 깔깔거리던 그 여행이 가장 행복했었고 말이야. 지금은 어딜 가도 그때만큼 신나지가 않아.”

해숙이 창밖을 보며 속삭였다.

“나는 지금도 꿈을 꿔. 언니랑 노상 카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 먹던 순간이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아.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 하지만 눈을 뜨면 그 순간은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아 버려. 다시 올 순 없다는 것도.”

해숙의 커다란 눈에 맺혀있던 눈이슬이 또로록, 하고 뺨을 타고 흘렀다.

“언니가 떠난 후 항상 비가 내리는 것 같아. 소리 내어 웃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에선 비가 내려. 여우비처럼.”


버스는 엄퍼스톤 싱크홀 위를 날았다. 동그란 모양의 핑크빛 수국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짐볼처럼 정원 구석구석에 피어 있었다. 수국이 뿜어내는 달콤 쌉싸름한 향기가 창문 틈새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버스 안에 퍼졌다.

“치, 여기는 백 년 전엔 무척 보잘것없고 스산한 광경이었어. 땅이 꺼졌을 때는 오싹하기까지 했지. 그런데 어떤 바보 같은 남자가 땅이 꺼진 곳에 꽃을 심고 가꾸어 황홀한 정원으로 바꾸었어. 바닥에도 꽃을 피워 놓다니 뭐든 가꾸면 마법이 되지. 바로, 내려가 보고 싶지 않아? 저 정원 바닥에 누워서 석회암 벽을 타고 오르는 넝쿨이 하늘 정원 날개처럼 팔랑거리는 틈으로 하늘을 보면 참 근사해.”

메리 할머니가 창틀에 얼굴을 대고 주먹 쥔 두 손을 턱에 괴고 눈을 감았다.

“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땅이 무너져도 정원이 되는군. 아무렴 어때. 뭐가 됐든 근사한 일이야.”


버스는 25번가를 지나 햇빛에 반짝이는 은갈치 같은 폭이 좁고 긴 강을 건너 칼리지 드라이브를 지나 프레스턴 애비뉴를 지나 더치 그로스를 지나 애트릿지 드라이브 위를 날았다. 구름 아래로 바다가 보이더니 곧 나무와 빨주노초파남보 알록달록한 지붕의 단층 건물들이 레고 속 동화나라 같이 아기자기하게 나열된 마을의 정류장에 멈췄다.

“해숙 씨, 아이스크림 맛있게 먹고 와! 올 때 딸기 시럽 듬뿍 뿌린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개 사다 주면 더 좋고! 나 알레르기 없는 거 알지? 바닐라 아이스크림 없으면 아무거나!”

세틸리카의 말에 해숙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럴게! 고마워, 세틸리카!”

해숙이 사라지는 것을 보던 세틸리카가 바로를 보고 돌아 앉으며 물었다.

“어디 가고 싶은지 아직도 생각 안 했어? 가고 싶은 데가 너무 많아서 그러는 거니, 가고 싶은 데가 없어서 그러는 거니?”

세틸리카가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혹시 이 버스 저승도 가나요?”

바로가 물었다.

“뭐라고? 네가 보기엔 내가 저승사자로 보이니?”

세틸리카가 어깨를 올리고 혀를 내밀고 어처구니없다는 제스처를 했다. 메리 할머니는 즐거운지 고개를 흔들며 옆에서 웃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했던 좋은 순간이 참 많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엄마 만나고 싶다는 생각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요. 모든 순간이 행복이었다는 것뿐.”

“엄마 만나면 뭐 할 건데?”

바로는 대답을 떠올리기 위해 주먹을 꼭 쥐었다. 세틸리카가 가만히 바로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함께 있어 줄 거예요. 이번엔 엄마를 지켜줄 거예요. 혼자 슬프지 않게. 엄마랑 꽃을 피울 거예요. 뭐든 함께 가꿀 거예요.”

“흠, 그렇단 말이지. 엄마가 있는 곳이라면 아무 데라도 좋다 이거지? 저승이라도?”

“네. 저승이라도요.”

“저승은 안 간다니까. 그리고 말이지 사실 저승 가는 게 더 쉬운 편이야. 저승이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얼마든지 갈 수 있지. 이 버스는 그렇게 시시한 데는 안가.”

“아무 데나 가는 버스라면서요.”

“저승은 빼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순간으로만 가나요?”

“승객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저승은 빼고.”

세틸리카가 백미러로 가늘고 기다란 눈을 흘겼다.

“잠시만요.”

잠시 생각한 바로는 창가의 노란 줄을 당겼다.

“거기로 가고 싶구나! 오케이!”

대시보드를 확인한 세틸리카가 큰 소리로 외치고 시동을 켰다. 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세틸리카가 대시보드를 확인하고 스위치를 껐다 켰지만 버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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