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앨마

by 비단구름

“무슨 일이야, 세틸리카?”

메리 할머니가 물었다. 세틸리카는 공포에 질려 말을 잃은 사람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초조한 낯빛을 하곤 덜덜거리는 손가락으로 버스 조작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보는 폼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으스스해졌다. 시간이 정지한 듯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 선 것 같았다. 나무의 이파리 하나 움직임 없이 숨죽인 고요가 버스를 에워쌌다. 하늘의 구름도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대기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의 문이 열렸다. 긴 검은 머리와 무릎까지 오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본 세틸리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세틸리카는 귀신을 본 사람처럼 정신마저 나간 듯했다.


“오랜만이야, 세틸리카.”

검은 머리 여자가 세틸리카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자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을 곧바로 관통했다. 바로는 여자의 음색이 세상에서 가장 소름 끼친다고 느꼈는데 아마도 여자를 보는 세틸리카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분석했다.

“앨마.”

세틸리카가 짧게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앨마는 대답 대신 바로를 곧장 쳐다보았다. 세틸리카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으로 다가와 바로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조심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또라이니까.”

앨마와 눈이 마주친 바로는 앗, 하고 놀랐다. 앨마와 세틸리카는 머리색과 눈동자 색을 제외하곤 쌍둥이별처럼 똑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세틸리카, 마음을 정하지 않은 사람을 버스에 태워서 꼬드기는 건 반칙이야.”

세틸리카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앨마의 차가운 눈은 바로에게서 떼지 않았다.


“바로, 넌 당장 버스에서 내려야 해.”

앨마가 하얗고 길쭉한 손가락을 바로에게 뻗었다. 바로는 앨마 같은 사람도 손가락이 다섯 개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왠지 친근하다고 느꼈다. 세틸리카가 잽싸게 바로 앞을 막아섰다.

“바로는 어디 갈지 마음을 정했어.”

앨마가 칫, 하고 비웃었다.

“정말이에요. 저는 가고 싶은 데가 있어요. 앨마.”

바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앨마에게 항변한 후 세틸리카에게 속삭였다.

“분신이라면서요. 어떻게 좀 해봐요. 세틸리카가 더 센 거 아니에요?”

앨마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너 또 내가 네 분신이라고 거짓말했니? 하여간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니까. 네가 내 분신이잖아. 나에게서 도망친 나약한 내 분신.”

앨마가 손을 휙, 하고 움직이자 세틸리카가 날아가 버스 복도에 쓰러졌다. 바로가 세틸리카를 잡았다.

“이 버스 때문에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해. 이미 끝난 마당에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자꾸 생각하잖아.”

앨마가 버스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앨마가 움직일 때마다 검은색 플레어스커트가 한들한들 흔들렸다.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려는 것뿐이야.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잖아.”

“넌 죄책감만 심어주고 있어.”

앨마가 미간을 찡그렸다.

“앨마 부탁이에요.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바로가 앨마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앨마가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바로를 바라보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원하는 대로 해줄게. 가서 엄마를 만나고 와.”


저녁을 막 먹은 직후였다. 통화를 마친 아빠가 얇은 바람막이 겉옷을 챙겨 입었다.

“현석이 알지?”

“들어본 적은 있지. 이름만.”

“근처 오는 김에 잠깐 얼굴 보고 한잔하자고 하네.”

“나가려면 나가. 어차피 나간다고 통보하는 거잖아.”

“왜 또 그래?”

아빠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며 나갔다.

“제멋대로야. 정말 싫다. 외로워서, 외로운 게 싫어서 저런 사람에게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아빠가 나간 현관문을 보며 엄마가 거실에 서서 중얼거렸다. 바로가 옆에 없는 것처럼. 혼자인 것처럼.

“나갔다 올게.”

불 꺼진 거실에 유령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엄마는 대답 대신 초점 잃은 눈빛으로 바로를 보았다.

“몇 시에 들어올 거니?”

“열 시쯤?”

“왜 지금 나가? 하루 종일 뭐 하고?”

“동호가 지금 학원 끝나서.”

“그러든가.”

엄마가 입을 닫고 고개를 돌렸다.


“너는 친구들 대기 조야? 학원 안 다니는 이유가 네 친구들 공부할 거 다하고 시간 될 때 맞춰주기 위해서야? 걔들은 공부할 거 다하고 미래를 위해 공부할 거 다 하는데 너는 남는 시간에 맞춰주는 거야? 모자란 거야, 생각이 없는 거야?”

열 시 넘어 들어온 바로에게 아빠가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너 술 마셨어?”

아빠가 바로에게 물었다. 바로가 숨을 내쉴 때마다 술 냄새가 풍겼다.

“술까지 마시고 돌아다니면서 멋대로 구는구나.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공장 갈 거야? 이럴 거면 오늘이라도 당장 공장 들어가던가!”

“미리 약속 잡혀있던 건데 갑자기 취소하라고 하면 아빠는 그럴 수 있어? 아빠는 없던 약속도 만들어서 나가잖아!”

바로는 아빠에게 소리 질렀다.

“됐고, 그냥 공부나 해. 공부하기 싫으면 당장 나가.”

바로 생각엔 아빠가 횡포란 걸 부리기 시작했다. 공장 가라 그랬다가 공부하라 그랬다가 생 어깃장을 부렸다.


“나가라면 나갈게.”

“어딜 나가? 공부하라니까.”

나가려는 바로 어깨를 아빠가 잡았다. 엄마가 다급히 뛰어와 바로 어깨를 꽉 움켜쥐고 있는 아빠의 솥뚜껑 같은 손을 떼려고 했지만 아빠의 손은 어깨에 단단히 붙어 버린 것처럼 꿈쩍을 안 했다.

“이러지 마. 진정해. 왜 애한테 그래.”

아빠가 바로의 팔을 당겼다. 바로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텼다.

“너도 통보하고 나갔잖아. 퇴근하고 술 먹고 들어올 때 나한테 먼저 말한 적 없잖아. 늘 통보했잖아. 누구랑 어디서 먹는지도 말 안 하잖아. 언제 들어오냐고 물으면 그것도 얘기 안 해 주잖아. 늦어,라고 밖에 얘기 안 하잖아. 묻는 것도 싫어하잖아!”

아빠가 바로를 때릴까 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엄마가 아빠에게 소리쳤다.

“시끄러워!”

아빠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방으로 들어가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 나왔다. 엄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엎드려.”

퍽! 퍽! 퍽!

아빠가 야구 방망이로 바로의 엉덩이를 강하게 내리쳤다. 바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두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바로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아빠를 말리며 엄마가 하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울부짖었다.


“불과 어제도 갑자기 저녁 먹고 온다고 통보하고 나가선 술이 취해 밤에 들어온 주제에. 지도 그랬으면서.”

엄마가 아빠에게 소리쳤다.

“시끄러워. 그런 소리 할 거면 너도 나가.”

아빠가 방망이를 던지고 방문을 쾅, 하고 닫고 들어가 버렸다.

“아프지. 어떡해.”

엄마가 바로를 끌어안고 울었다.

“아빠는 너한테 화낸 게 아니야. 나한테 화가 난 거야.”

한참 후에 울음을 멈추고 엄마가 말했다.

“너한테 한 말은 엄마 들으라고 한 말이야.”

아빠가 바로를 때리는 것을 본 이후로 엄마는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말수도 다시 적어졌다. 푸념 같은 혼잣말이 늘었다.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다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우리 집이 이렇게 됐어. 나는 지옥에 갈 거야. 기꺼이 지옥에 갈 거야. 나는 행복을 바라선 안 되는 사람이야.”


며칠간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반나절이나 앉아 있어도 문제집을 한 페이지도 풀지 못했다. 새벽 세시까지 공부한다고 앉아있지만 사실, 세시까지 친구들과 채팅을 하느라 아침엔 일어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모두 피곤했다. 바로가 책상에 앉아 있는 기간 동안 침울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진 엄마가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요즘 길가며 공원에 꽃이 활짝 피었어. 아침 먹고 같이 보러 가자.”

엄마가 높은 톤으로 바로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와 자고 있는 바로를 깨웠다.

“나 배가 아픈데. 안 나갈래.”

“엄마 아빠 나가면 더 자려는 거지?”

눈치 빠른 엄마가 이불을 걷으며 물었다.

“아니라고. 아, 좀!”

바로는 짜증을 내며 이불을 끌었다.

“옷 입어. 세시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한 거 아니잖아. 공부하는 척하면서 세시까지 애들하고 채팅한 거잖아. 엄마가 모르는 줄 알았어? 그래 놓고 아침에 피곤해하고 낮에 낮잠 자는 거 정말 보기 싫다고.”

엄마가 언성을 높였다.


“엄만 왜 채팅하면서 공부 못한다고 생각해?”

“억지스러운 소리 하고 있네. 그럼 성적 보고 얘기하자.”

“그래. 성적 보고 얘기해.”

지금 입에서 내뱉는 소리를 누가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낯설었지만 바로의 입에선 엄마 말에 즉각 반박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공부하는 척은 왜 하는 거야?”

“내가 언제 공부한다고 했어?”

말문이 막혀 답답한 사람처럼 슬픔이 드리운 엄마가 애원하듯 부탁했다.

“이렇게 좋은 날은 너랑, 너 어릴 때처럼 함께 걷고 싶단 말이야. 같이 가자, 응?”

“왜 또 그래? 바로 안 간대?”

소란을 듣고 아빠가 바로의 방으로 왔다. 바로는 실랑이 끝에 하는 수없이 엄마 아빠를 따라나섰다.


“공기 상쾌하지? 아침 공기가 제일 좋더라.”

밖으로 나온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걸음이 빠른 아빠는 십 미터쯤 앞에 걷고 있었고 엄마는 바로 곁으로 와 나란히 걸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다 같이 나오니까 좋지? 나는 좋은데.”

바로는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이거 봐봐. 꽃이 활짝 피었어! 정말 예쁘다, 그렇지?”

잠이 부족해 짜증이 잔뜩 바로는 바닥만 보고 걸었다.

“이렇게 우리 다 같이 걸으니까 정말 기분 좋아. 이런 게 행복이겠지?”

바로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고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엄마가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우리 아들, 사랑해.”

“아이, 좀.”

바로는 손으로 엄마를 내쳤다.


“나 잠깐 화장실 갔다 와도 돼?”

공원엔 화장실이 많았다.

“어느 화장실에 갈래?”

“저기.”

바로는 십 미터 거리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휴대폰 갖고 왔지?”

엄마가 등 뒤에 대고 물었다. 바로를 기다리며 엄마 아빠는 활짝 만개한 노랑, 분홍 국화 사이 화장실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아빠는 도토리 여섯 개를 주워와 엄마와 홀짝 게임을 했다. 엄마가 소리를 내며 활짝 웃었다. 공원에 설치된 거대한 전광판에선 백 년 전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오밀조밀 모여 살던 농경 사회가 빌딩 숲의 도시가 되기까지의 발전 과정이 송출되고 있었다. 삼십 분이 다 되어 가는데 바로가 나오지 않자 엄마가 말했다.

“전화 한 번 해봐.”

아빠가 전화했다.

“아들, 아직 멀었어?”

“지금 똥 닦고 있어요.”

“그래. 얼른 와.”

아빠가 전화를 끊었다. 아빠와 엄마는 다시 홀짝 게임을 했다. 시간이 십 분쯤 더 흘렀다.

“아까 똥 닦는다고 하지 않았어?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전화해 봐.”

아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바로에게 전화했다.


‘전원이 꺼져있어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가 들어간 것으로 짐작되는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뒤 아빠가 돌아왔다.

“없어.”

“없어?”

엄마가 바로에게 전화했다.

‘전원이 꺼져있어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빠가 바로에게 다시 전화했다.

“전화 꺼져있다는데.”

엄마 아빠는 공원을 뒤져 바로를 찾아다녔다. 아빠는 바로가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되는 화장실로 향했고 엄마는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바로 안에 있니?”

남자 화장실 앞에서 바로의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화장실 입구에서 슬쩍 들여다보니 화장실 문이 대부분 열려 있었는데 가장 안쪽의 두 개의 문이 닫혀있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엄마가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가자 입구 안쪽에 무방비로 서 있던 남자가 “여기 남자 화장실이에요.”라고 쏘아붙였다.

“죄송합니다.”

당황한 엄마는 도망치듯 얼른 나왔다. 저 멀리 아빠가 서 있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 화장실도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어디에도 바로는 없었다.

‘전원이 꺼져있어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전화에선 계속 같은 멘트만 나왔다.


“답장 왔어. 집 이래.”

“집?”

“화장실을 집으로 간 거야? 다시 연락해 봐.”

전화는 다시 꺼져있었다. 바로가 집이라고 하니 엄마 아빠는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으로 향하는 엄마에게 아빠가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먼저 집으로 가. 나는 여기 더 있을게.”

안 좋은 기사를 자주 접한 아빠가 혹시나, 하고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침에 애한테 뭐라고 했어?”

“아무 말 안 했어.”

엄마가 대답했다.

“무슨 말 안 했어?”

아빠가 재차 확인했다.

“나가라거나 필요 없다거나 죽으라거나,라고 안 했어?”

“그런 말 안 했어. 지적만 조금 했을 뿐인데.”

나 때문에 바로가 나쁜 마음을 먹은 걸까, 잘못됐으면 어떡하지, 발걸음을 재촉하는 엄마는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집에 있을까?”

정신이 살짝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엄마는 집으로 향했다.

“없으면 어쩌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엄마가 빠르게 걸었다.

“집에 있을 거야. 없으면 어쩌지?”

“집에 있을 거야.”

“아니면 없거나.”

엄마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바로의 검정 운동화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곧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없어.”

“없어?”

아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아빠는 바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문자를 보냈다.

‘전원이 꺼져있어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에게 답장이 왔다.

“아무 걱정하지 마.”

걱정된 아빠가 실종 신고를 하러 파출소로 향했다. 엄마는 다시 바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바로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 파출소에 간대.”

두 시간쯤 지나 가방에 옷가지를 챙겨 친구 집으로 향하던 바로가 집으로 돌아왔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파출소에 가던 중 연락을 받고 아빠도 돌아왔다.


“나는 당신이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길 바랐어. 그거면 되었어. 언제나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미안하다고, 아이가 없어졌을 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그런 식으로 말해서 미안하다고, 납치됐는 줄 알고 자초지종을 확인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고,라고만 해도 괜찮았어.”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왜 그렇게 물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점심을 차리라고 했다.

“아이가 없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의심하고, 내 잘못일 거라 단정하고, 내 탓을 하며 추궁하더니 점심을 차리라고 하는 아무렇지 않음이 끔찍하게 싫어.”

엄마의 얼굴 근육이 흔들렸다.

“네가 한 행동을 돌아봐.”

엄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빠가 퉁명스럽게 비아냥거렸다.

“나 나갈 거니까 너희들끼리 살아.”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 짐을 챙기는데 아빠가 따라 들어갔다.

“나간다고? 그러던가. 나가려면 나가.”


아빠가 짐을 싸는 엄마 옆에 서서 빈정대자 짐을 챙기던 엄마가 일어나더니 갑자기 아빠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그러자 아빠도 주먹으로 엄마 가슴을 가격했다. 엄마가 아빠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한 대 더 쳤다. 그러자 아빠도 더 세게 엄마의 가슴을 쳤다.

“악. 바로야!”

엄마가 가슴을 부여잡고 상체를 웅크리고 바로를 찾았다.

“이게.”

아빠가 거북이 등 껍데기 같은 딱딱하고 커다란 손바닥을 들어 엄마를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엄마의 목을 일 초간 조르고는 거실로 나갔다.

엄마가 곧바로 아빠를 쫓아 나갔다. 그리고 아빠의 등짝을 쳤다. 아빠가 뒤를 돌더니 두 손으로 엄마의 볼을 꽉 움켜쥐었다. 엄마의 얼굴이 찢어질 것처럼 당겨졌다. 엄마의 얼굴을 당기던 아빠가 엄마를 밀어 던졌다. 소파에 부딪친 엄마가 테이블 위에 있던 액자를 집어던졌다. 액자 모서리가 아빠 이마에 정면으로 맞았다.

“아악!”

아빠가 비명을 질렀다. 아빠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엄마가 액자를 아빠에게 던진 것인지 아빠 뒤쪽 벽을 향해 던졌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고 했던 것인지 죽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 다 순간 눈앞에 있는 것을 잡고 던졌다.

본격적으로 살육 전쟁이 펼쳐질 거라고 짐작한 것과 달리 아빠는 싸움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현관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울었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절규하는 짐승의 소리처럼 처절하게 집안에 울렸다. 아빠는 다음날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살면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 두 가지를 오늘 모두 해버렸어. 하나는 남편과 싸우면서 아이를 부르지 않겠다는 것. 엄마가 아빠에게 맞으면서 앙칼지면서 동시에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부르는 소리, 어디든 따라오는 소리, 혼자 있는 시공간까지 끈질기게 따라오는 그 소리가 나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아.”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엄마는 허공을 멍하게 응시했다.


“그건 어떤 기분이냐면 검은 사람이 갑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것과 같아. 검은 사람들은 차에 어린아이가 타고 있으면 어린아이조차도 끌어내어 던져버려. 멋지고 용감한 사람이 나타나 지켜주려고 골목을 걸어 모퉁이에 있는 허름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은 우리 집 대문 앞에 다다랐는데 집안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행복한 집에서 환하게 밝힌 불빛 같지만 사실은 그놈들이 집안에 잠복하며 기다리고 있는 거지. 용맹한 사람이 되어 집에 들어가려는데 검은 사람이 나타나 이 사실을 알려주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어. 돌아가는 것마저도 쉽지 않아. 놈들 중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서 주변을 돌며 동그란 철판 같은 무기를 돌리고 휘두르고 위협하며 끈질기게 쫓아오고 있는 그런 기분이야. 영원히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지.”

눈물을 모두 소진한 엄마는 마른 눈물을 흘렸다.


“또 하나는, 아이를 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것. 엄마가 나를 두고 집을 나가버리는 걸 가만히 볼 수밖에 없는 심정은 슬픔도 뭣도 아니야. 세상이 통째로 흔들리는 비극이지. 그런데 미안해, 바로. 엄마는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 끝도 없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했어.”

엄마의 다짐을 바로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 엄마는 바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에게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어.”


밖에는 강풍과 함께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는 우산을 들고 곧바로 엄마를 따라나섰지만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슬픔, 우울, 후회, 분노, 아쉬움의 벽돌이 잔뜩 올라간 무거운 어깨를 늘어뜨린 바로는 처량한 심정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짧고 강렬한 바람이 얄궂게 바로의 우산을 뒤집어 버렸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 바로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다리 한가운데 서서 바로는 소리를 질렀다.

“으악!”

바로의 뒤로 차들이 세차게 쏟아붓는 비를 뚫고 달렸다. 자동차 엔진 소리와 굵게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와 함께 소리가 묻히자 바로는 더욱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엄마가 죽은 거야.”

바로가 눈가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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