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강이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울어야 할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의미 없이 바라본다와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누구에게나 삶의 희로애락이 있겠지만 좋은 일만 있다면 사람이 주는 고마움을 다 느끼기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
고난이 때로는 밉고 원망이 된다. 하늘을 원망해도 그 원망이 고스란히 내게 화살촉처럼 날아온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 사람마다 그가 감당할 만큼 고난을 등에 얹히는 거 같다. 마치 거북이 등껍질 같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마음을 가지고 싶은 양철나무꾼처럼 나는 세상이라는 벽 앞에 점차 우는 법을 까먹고 마음의 감각이 무뎌진 나날들이 있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무감각해졌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보내기를 수차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의미 없게 바라보면 의미가 없고 의미 있게 바라보면 의미가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니 마치 눈앞에 다른 색안경이 씌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봇물 터지든 빵 터졌다.
‘내가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단 말인가’싶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때 사람은 교육을 받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가 학교나 사회에 나가면서 조금씩 배우며 세상을 알아간다.
스트레스받으면 표출하는 방법도 알아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면 스스로 아파한다.
세상에 이리저리 부딪혀도 보고 다쳐도 보고 아물기도 하면서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다.
세상이 보는 잣대가 나와 안 맞아도 어떤가 나도 그들을 바라보는 잣대가 다른 것을…….
세상에서 주는 교훈을 새겨 어느덧 마음의 벽에는 상처 자국들이 수두룩하다. 마치 훈장처럼 나는 이 또한 감사히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눈물이 강이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울어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고난의 시간을 익살스럽게 그리고 싶었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듯이 때가 지나고 뒤돌아 보면 그 기억도 희미해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