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언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우리말과 한자(漢字)어가 섞여있다. 그래서 순수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달걀은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같은 뜻의 단어인 계란(鷄卵)은 한자(漢字)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에게는 달걀이 계란보다 더 예쁘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뭘까?
학창 시절에 필자는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이고 한자(漢字)는 표의문자(表意文字)라고 배웠다. 쉬운 우리말로는 한글은 소리글이고, 한자는 뜻글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이게 매우 중요한 점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필자는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보았다.
먼저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시작해 보자.
질문은 목적의식으로 연결되며, 목적의식이 작동하면 글을 좀 더 세밀하게 보는데 도움이 된다.
- 한글이 소리글이면 글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한자가 뜻글이면 글과 연결된 말소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문자와 말 그리고 뜻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여 그 순서대로 살펴본다.
첫 번째, 문자는 무엇일까?
문자는 평면적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자는 그림에 가깝고, 우리는 눈으로 그 문자의 모양을 인식한다.
(글자는 문자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기에 이 글에서는 글자와 문자를 섞어서 설명한다.)
그래서 글자를 익히려면 그 모양을 뇌에 저장해야 한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글자 모양과 말소리 그리고 뜻을 연결시켜야 한다.
중요한 점은 글자 모양은 시각 정보로 뇌에 저장되며, 이 정보는 특별하게 취급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특별한 시각 정보를 언어적 기억물(줄여서 언어적 기억)이라 칭한다.
두 번째, 글자와 연결되는 말에 관해 살펴보자.
우리는 글자보다 말을 먼저 배운다.
(지구 상에 글자를 먼저 배우는 사람은 없다.)
말을 배운다는 것은 말소리를 뇌에 저장하고, 그 말소리와 뜻을 연결시킨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소리는 특수한 청각 정보에 속한다.
즉 새소리, 개 짖는 소리, 닭 울음소리와 달리 언어로 약속된 청각 정보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특별한 청각 정보를 언어적 기억물(줄여서 이하 언어적 기억)이라 칭한다.
여기서 중간 정리를 해 보자.
글자는 평면적 모양이고, 특별한 시각 정보로 뇌에 저장되는 언어적 기억이다.
말은 소리이고, 특별한 청각 정보로 뇌에 저장되는 언어적 기억이다.
평면적 모양이 글자가 되려면 그리고 소리가 말이 되려면 모양과 소리는 반드시 뜻과 연결되어야 한다.
세 번째, 이번에는 뜻에 관해 살펴보자.
뜻(의미)은 무엇인가?
뜻을 살펴보기 위해 이번에는 말을 배우기 전 상태로 가보자.
아기가 말을 배우기 전에는 관찰을 통해 뜻을 파악한다.
아기는 비록 말은 못 하지만 주위 사물과 사람, 상황을 감각적으로 인지한다.
또한 아기는 정서적 반응을 보이며 대상과 상황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한다.
아기는 엄마를 알아보고, 엄마의 목소리와 냄새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기는 경험을 통해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한다.
아기는 이러한 감각적 정보와 정서적 반응 정보 그리고 가치적 정보를 뇌에 저장한다.
이러한 정보는 아기가 말을 배우기 전이므로 비언어적 정보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를 비언어적 기억물(줄여서 이하 비언어적 기억)이라 칭한다.
뜻은 바로 이러한 비언어적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기가 말을 배운다는 것은 이 비언어적 기억인 뜻과 말소리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는 맨 먼저 뇌에 저장된 비언어적 기억을 인지한 후 언어적 기억인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에는 그 반대로 언어적 기억을 인지한 후 비언어적 기억을 인지한다.
물론 이 과정은 내면의 인지 작용을 단순히 언어와 비언어의 관점으로 나눈 것이다. 실제로는 더 복잡한 과정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문자(글자)와 말 그리고 뜻이 무엇인지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앞의 질문을 다시 살펴보자.
첫 번째 질문 : 한글이 소리글이면 글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필자의 글을 이해했다면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뜻은 바로 ‘비언어적 기억 속에 있다’가 정답이다.
혹시 뜻이 왜 비언어적 기억이냐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국어사전에 단어의 뜻이 글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나온 단어에 관한 글을 읽고 그 뜻을 아는 것은 언어적 기억과 연결된 비언어적 기억을 인지하는 것이다. 즉 글을 읽는 것이나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모두 비언어적 기억을 최종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한편, 한글에서는 단어와 글자는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자.
단어는 뜻을 지니며 하나 이상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글자는 소리를 나타내는 한 음절의 문자이다. 우리말의 글자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하는 이유와 연결된다. 즉 자음과 모음이라는 단어의 음(音)은 소리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가령 ‘뀅’이라는 글자는 뜻과 연결되지 않는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물론 한글의 경우 하나의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가 적지 않다.
신체와 관련된 한 글자 단어 : 눈 , 코, 입, 귀, 혀, 배, 손, 발, 침, 간, 똥 등등
자연과 관련된 한 글자 단어 : 물, 강, 눈, 비, 달, 해, 별 등등
그런데 한자(漢字)는 한글과 달리 글자 하나가 단어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한글과 달리 글자 하나하나가 뜻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漢字)를 ‘뜻글’이라 부르고, 한글을 ‘소리글’이라 부른다.
두 번째 질문 : 한자가 뜻글이면 글과 연결된 말소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한글로 된 책을 읽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읽는다고 단어나 문장의 뜻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알다시피 한글은 소리글이고, 읽는다는 것은 소리를 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자(漢字)는 자신이 암기한 글자만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각 글자에 대한 발성을 함께 외우지 못하면 모르는 글자는 읽을 수 없다. 한자(漢字)는 뜻글이다 보니 각각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한자(漢字)의 개수는 7~8만 개 정도라고 추정한다.
정리를 해 본다.
학창 시절 배운 다음 문구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표음문자는 소리를 나타내고, 표의문자는 뜻(의미)을 나타낸다.‘
즉 표의문자 그 자체가 뜻을 지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문자는 그 자체가 뜻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집트의 상형문자 조차도 말이다.
물론 표의문자의 경우 뜻을 짐작할 수 있는 일부 시각 정보나 기타 정보를 어느 정도 포함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문자와 연결된 뜻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 실마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표의문자인 한자의 뜻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마음언어 기초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JxgggJj3-a5_veqx32PAYPXEo-dHWpB
마음언어 생활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kJxgggJj3-ZkcoQpZahfd9Bn0hFdJD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