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울린다.
물론 비오는 날은 다 그렇지만 말이다.
오래된 집안 가득 내리는 여름비.
마당에 마구 돋아난 풀들이랑 은행나무, 감나무..
담쟁이들의 아우성.
마당이 한눈에 보이는 다락에 올라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이젠 오래된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지붕 바로 아래 이 작고 아늑한 공간이 참 좋다.
비스듬한 계단이 있는 문을 열면
훅 풍기는 오래되고 녹녹한 공기의 손짓,
변화나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느림과 멈춤이 이곳엔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다.
비만 오면 다락에 올라와
지붕 가득 떨어지는 빗소리와
흙이 빗물에 패여 생기는 작은 시냇물들.풀잎들, 꽃들,곤충들..
그렇게 세상 작은 생물들을 구경하곤 했던 거다.
한켠에는 아직도 모나미 낙타표 몽당 연필이 딩굴고 있고,
더이상 은색으로 반짝이지 않는 일원과
거북선 있는 오원짜리를 찾아낼 수 있는 낡은 가방들.
이름조차 희미해져 버린 어릴적 계집아이들이 담긴 흑백 사진.
낡은 옷들과 멈춰버린 궤종 시계..
그렇게 구석 구석 쌓인 온갖 잡동사니들은
어렸을적 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파편들인 셈이다.
천장의 횟대가 그대로 보이는 낮은 바닥에 엎드려
음악을 듣고, 밤중에 몰래 불을 밝혀서 책을 읽고,
전화를 가져와 비밀 이야기를 하거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던 추억이 이곳엔 도서관처럼 보관되어 있다.
추억이 모두 다 아름답고 기쁜 것은 아니다.
분명 그 안에는 슬픔도 칼로 베이는 힘듬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은 외면하고 픈 기억들을
마음의 다락.. 저 현실의 지붕 바로 아래,
기억의 빗장을 굳게 닫아 두곤 한다.
비가 오고,가슴속에 그리움이 가득하고,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질 때마다,
기도하고,울기도 했던
수많은 추억의 창고에서 가만히 되뇌어 본다.
난 아직도 길 위에 있다.
결국 기쁨과 아픔과 슬픔을 통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시간이 멈추는 그때까지, 이 길 위에서.
https://youtu.be/BczgDb9-c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