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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Lee Jul 04. 2015

생활의 발견

"나는 감상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어리석지는 않으나

감상을 비웃으리만큼 용감하지도 못하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울 것 없는 생활의 한 영원한 제목일법하니까
 
환상이 위대할수록 생활도 위대할 것이니
그것이 없으면서도 칩칩하게 살아가는 꼴이란

용감한 것이 아니요, 측은한 것이다.
황상이 빈궁할 때 생활의 변조가 오고 감상이 스며드는 듯하다"
 
- 청포도 사상중에서
 
이효석.
난 이효석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보다는 수필들을 더 좋아하는데
'청포도 사상'과 '낙엽을 태우면서'두 편의 글은 가슴속에 생생히 간직되어 있다.
 
특히 '낙엽을 태우면서'
나는 오래된 낡은 한옥에서 살는데 집은 좁고 불편했지만 마당만은 아주 넓었다.
가을이 되면  노랑 은행 잎과 낙엽들을 긁어 모아 태우면서 이 수필을 꺼내어 읽으며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이 수필과 함께 코 끝에 느껴지는 것은 진한 커피의 향기와 따뜻한 수증기이다.
 
따뜻한 물과 불...
생활의 기쁨이, 물과 불과 함께 있다던 그의 말이
따뜻한 물에 피곤한 하루를 담글 때면 행복하게 공감하는 웃음으로 기억되곤 한다.
차가운 가을 소나기에 젖은   돌아와서 따뜻한 수증기에서 보내는 그 시간만큼
단순하고 순수하게 큰 기쁨이   있을까.
 
 
커피.
사실 난 수십 종의 커피 맛을 분간해 내거나
에스프레소의 진한 갈색의 맛을 가만히 음미할 줄 아는 커피 애호가는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책을 읽다 밤을 새우다 보면 어느새 커피는 나와 뗄 수 없는

인생의 친구가 되어 버렸다.
자주 마시다 보니 커피도 취향 뚜렷하게 생겨서
각종 핸드 드립 기계부터 커피 잔, 원두까지 골고루 섭렵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작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개성 있는 커피 맛을 가진 카페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번쩍 거리는 은빛 갑옷을 입은 십자군 같은 거대하고 든든한 외국 자본으로 무장한
스타벅스니,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 빈 같은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어째 맛이 전부 비슷하고 , 오래된 원두 냄새까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된다고 할까.

 
그래서 가끔은 흔치 않은 드립 커피나 사이폰 커피를 마시러

골목 골목 남아있는 오래된 커피 전문점엘 간다.
낡고 어둑한 실내의 빛바랜 소파에 앉아  오래된 그 장소만큼 편안한 사람과 
알코올 램프에 타오르는 파란 불꽃을 보고 대류 현상에 대한 아마추어의 물리 상식을 나누기도 하면서
끓어오르는 진한 커피 향을 맡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즐거운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바흐..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곧잘 듣게 된다.
난 바흐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의 첼로 곡들이 커피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골드베르그보다는 무반주 첼로 조곡이라든가.

원전 연의 대가 에너 빌스마의 연주, 로스트로 포비 치나 미샤 마이스키의 폭포수처럼 시원스러운 연주,

무엇보다도 들을 때마다 나의 슬픔과 기쁨을 일깨워 주는 거장 파블로 카잘스,

그의 연주는 영혼을 울리는 가르침이 있다.
 
   
살다 보면 이런 작은 여유가 사치로 다가올 때가 많아진다.

사소한 환상들, 삶의 소소한 열정들.. 무시하기 쉽고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난 그 끈을 놓치진 않겠노라 생각한다.

 
그것들은
너무나 지루하고 거친 삶에 하나님이 부여해주시는

값지고 놀라운 선물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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