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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Lee Sep 02. 2015

하루키의 여행법

책을 말하다1 - 무라카미 하루키

1999년 문학 사상사에서 발간한 책으로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으로 친숙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행기..아니, 여행수필이다.

최근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로 제목만 바뀌어서 다시 나왔는데, 새 디자인은 차마 언급하기도 싫다.

문학 사상사는 같은 책을 디자인만 이상하게 망쳐서 새로 재발간하는 재주가 있다.


<하루키의 여행법>은 여타 여행기와는 달리 씩씩하게 행군하는 식이 아닌

조금은 더 사색적이고 한가한 글이다.

여행지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하루키 개인이 여행을 즐기는 법, 여행기를 쓰는 마음가짐이랄까

여행기를 써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쓴 여행기를 자주 읽는 편이다.

이미 가본 곳에 대한 여행기는은 느낌의 공유라는 즐거움과 기억의 되새김을,

낯선 곳에 대한 여행기는  새로운 시선과 함께 '언젠가는 나도..'하는 설레임을 안겨준다.

무엇보다도 낯선 땅을 여행하는 타인들의 이야기는 소중한 간접 경험이 되어

때때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일깨워 주곤 한다.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길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많은 곳에서 열려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다짐하는 자극제가 된다.

무조건 신기한 풍물을 나열하는 팜플릿 같은 식의 여행기는 시시하다고 느껴졌던 차에

여행에 대한 자기만의 방식을 담아낸 책,

 

1999년에 만난 <하루키의 여행법> 꽤 반가운 책이었다.

물론 그동안 <상실의 시대>같은 소설뿐아니라

<치즈케익을 닮은 나의 가난> 이라든가

<렉싱턴의 유령>등 하루키의 수필을 더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의 글들에서 간간히 보여주는 삶에 대한 약간은 냉소적인 하루키의 시각이

글이 아닌 현실 속의 여행에서 어떤 생각과 말로 표현될지 궁금했고

과연 하루키라는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 건지,

그동안 그의 글들에서 풍겨나오는 여행의 냄새에서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동질감 마저느꼈다고 할까.

 

또 이건 20대의 혈기넘치고 의욕이 하늘을 찌르는 여행기가 아니라서 좋다.

어릴적엔 무조건 여행이라 하면 많이 보는 것을 택했다.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고, 좀 더 많이 많이를 외치며

대량의 정보와 풍물을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젠 배고픔에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음식보다는

정성들인 음식을 역시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싶은 그런 바램이 생긴다.

 

하루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왜냐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환상의 환상성이 더욱 뚜렷하게 인식되면 될수록

우리가 내보내는 에너지의 양에 비해 받아들여 지는 양은 점점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떠안는 많은 피곤에 비해 비교적 적은 양의 환상밖에 얻지 못한다-는 결과에 이른다'

 

뭐, 그답게 적절하면서 냉소적인 표현이지만

나이가 들어 현실에 대한 인식이 강해질 수록

여행이 주는 비현실적인 달콤함이 적어진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 여행에서도 가볍고 풍성한 볼거리 대신

그  길에서 꼭꼭 씹어 소화된 마음의 소리을 더 중요하게 듣게 되지 않나 싶다.

하루키의 여행기는 그런 면에서 공감하게 된다.

자신의 젊을 때를 비교하면서 같은 모습에서도 달라진 시각과 입장을이야기 하니까 말이다.


하루키의 여행법, 이것이 앞으로도 내가 쓰고 싶은 여행기일 것이다

딱딱하지 않아서 좋고, 순식간에 넘어가지만 자신만의 생생한 느낌을 담았다

정보를 나열하고 사진을 찍어두는 여행이 아니라

자기만의 다른 색으로 풍경을 그려내는 그런 여행기말이다.

버리기 위해 떠난 길에서 또 다시 얻어진 귀한 것들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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