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왕자

by cloudyess

우리는 모두 내면의 어린 왕자와 이별한다

작품 [어린 왕자]를 자세히 보면, 사막이 사막 같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마치 사막이 아닌 다른 것을 빗대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담 사막이 과연 무슨 의미로 적혔을까? 당시의 사회, 아니 그냥 오늘날의 사회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과 길들임이 사라진 사회는 마치 물이 없는 사막과 같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막 속에서도 우물을 찾을 수는 있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였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마지막 말과 여러 정황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왕자’ 자체가 작가 내면의 무엇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작품 후반부 어린 왕자의 죽음은 사실 ‘내면의 어린 왕자와의 이별’이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느 순간 내면의 어린 왕자를 떠나보냈고, 작가는 그 떠나보낸 어린 왕자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보내는 그리움일 것이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장미의 “특별하지 않음”도 깨닫고 장미의 ’특별함’도 깨닫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지구에서 관계의 “특별하지 않음”과 ’특별함‘을 깨닫게 되고는 한다. - 물론 그것을 영영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 그렇다면 어린 왕자의 죽음은, 내면의 어린 왕자와의 이별은 성숙을 의미하는 것일까? 만약에 그런 거라면, 성숙은 순수함의 소멸과 함께 찾아오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갈까. 이러한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순수함의 상실인 거 같다. 일단 우리는 순수함의 소멸과 함께 성숙이 찾아온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모자로만 보던 예전과, 이제는 그 그림마저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으로 만 볼 수밖에 없는 지금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순수함을 잃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 내면의 어린 왕자와 작별을 고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마주하고, 또 그러한 것들을 몸으로 겪어가면서 각자만의 틀을 만들어간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잘 살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틀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순수함과는 멀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효율과 논리를 배우고, 관계의 복잡성과 세상의 냉혹함을 깨닫는다. 수많은 장미들을 보면서 나의 장미가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부터 깨닫게 된다. 우리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며, 가장 먼저 순수함을 내려놓게 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의 어깨가 가벼워질테니까. 말 자체는 부정적일 수 있지만, 순수함과의 이별이 성숙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면서 나아가기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도 행성을 떠나야만 한다. 다른 말로는 알을 깨야만 한다.

우리는 행성을 떠나 사막을 마주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의 틀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이다. 더 많이 소유하려 하고, 더 효율적이려고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려 한다. 허나 그럴수록 마음 한 켠이 공허해진다. 그곳은 사막이기 때문이다. 사막에서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건조하다는 것이 변치 않는다. 우리가 물을 찾지 않는 이상, 사막 속에서는 목마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 세상 속에서는 사막 속에 우물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힘들다. 우리는 순수함의 눈과는 점점 멀어지기에 사막 속에 존재하는 우물을 보지 못한다. 내면의 어린 왕자는 떠나버렸지만, 우리가 내면의 어린 왕자를 그리워하지는 못하는 상태. 우리는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린 채, 사막 속 관계를 전부라고 생각하며 ‘어린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은 이러한 갇힘에서 시작한다. 다시금 ‘어른‘이라는 틀에 갇힌 채 순수함을 소멸시켰다면, 우리는 한 번 더 알을 깨고 나가야만 한다. 의식적인 노력,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이 사막 속에서 우물을 보이게 할 것이다. 이는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복잡함, 허무함, 공허함, 무상함을 모두 경험하고 난 뒤에도,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의 가치를 믿기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장미가 가장 가치가 있다는 믿음. 그러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믿음이 아니라, 수많은 것을 겪고 다시금 순수함을 바라보고자 하는 어른의 ’믿음‘이다.

죽어버린 ‘내면의 어린 왕자’를 다시 살려낸다기보다는, 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마냥 어린아이 같은 어른보다는,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성숙해져가는 과정인 것 같다. 어른의 지혜와 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함께 가지고 있는 상태, 그것이 ’어른 왕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사막에서 살아가고 있다. 삭막한 환경, 모래바람 속에서 우리는 가끔은 기침을 해대거나, 코와 입을 막아야 한다거나, 목이 마르는 등의 힘겨움이 있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사막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막의 어딘가에는 우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어른의 모습을 한 채로 아이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일 것이다. 성숙이라는 것의 시작은 순수함의 상실과 함께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잃은 뒤 다시금 되찾아 가는 과정에서 더욱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사막 속에서 각자의 비행기를 수리하며, 밤하늘의 별을 보고 웃음을 보일 수 있는 ‘어른 왕자’가 되는 순간에, 우리는 사막을 아름답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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