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는 감정이 극도로 강해지고는 한다. 벅차올라서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물론 흔히 있는 일이 아니지만, 오늘과 같은 순간들 말이다.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설명하지도 못할 텅 빈 상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못할 것 같다는 절망감이 섞인 압박, 그런 거 말이다. 이는 외로움이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이러한 욕망인지 결핍인지 모를 것이,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며, 사랑에 대한 욕망으로 변해 갔다. 누군가, 아니 어떤 것, 아니 그저 무엇, 아니면 더 광범위하게, 마음을 쏟아내고만 싶었다. 무조건적 사랑. 그냥 존재를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사랑
세상을 사랑하라는 말은 내겐 너무 모호하게만 느껴진다. 곰곰히 되짚어 보아도 잘 모르겠다. 내게는 추상적이고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 전체를 사랑해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세상을 사랑하려면 어떤 각오가 필요할까. 나는 그 각오를 감히 손에 쥘 수도 없고, 실체를 붙잡으려 두 팔을 크게 벌려보아도 감쌀 수 없다. 그러한 이유 때문일까? 나의 비루한 마음씨는 늘 구체적인 대상을 필요로 한다. 한 장면, 한 순간, 한 대상이면 충분하다. 작은 무엇을 사랑해가는 발자취를 따라서 세상을 향한 사랑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의 이성적인 사고 안에서는 ‘세상을 향한 사랑’이 온전한 사랑임이 느껴진다. 특별함을 쫓는 사랑이 아닌, 평범함을 감쌀 줄 아는 사랑. 존재하는 세계 전체에 포근히 스며들어보려고 하는 과정. 선을 그으며, 여기와 저기를 가르려는 행동이 아님을 알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할 때마다 - 나의 이성적인 생각이 기름 냄새를 풍기며 작동할 때마다 - 이상한 공허감이 나의 세계에 잔존한다. 진실로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나의 가능성은 사실 무한했던 걸까? 아니면, 이러한 기계적인 작동은 내 안에서만 발화되었다가 불타올라 사라져 버리는 걸까.
허나 사랑의 본성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서투른 몸짓과, 불완전한 포옹, 뜨겁고 차갑기를 반복하는 체온의 나눔들이 그러한 과정을 만들어낼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한다”는 문장의 주파수를, 다소 형편없지만 따뜻한 ‘과정’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벅차오름은 그 주파수에 작게나마 공명했던 나의 안테나 덕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완고한 선언이나, 거대한 정의가 아니라, 허술한 행동과 미숙한 마음에 있다. 내가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오늘 내가 건네볼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나아가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