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운명, 그리고 질문의 시작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신은 불공평하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을까.
왜 나는 저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안전한 가정을 갖지 못했을까.
왜 내가 그렇게도 바란 사랑은
매번 어긋나고, 닿지 못하고, 상처만 남았을까.
나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인가?
혹시 신이 날 버린 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주 깊숙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되뇌어 왔다.
그 질문들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내 안에서만 맴돌았고,
신이라는 이름을 향해
끝없이 외쳐졌다.
그러나 삶이 몇 번 무너지고,
고요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문득,
스스로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이 들려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좌절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모든 불공평함은
신이 만든 세계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설계한 인식의 구조가 아니었을까.
신이 날 버린 게 아니라,
나는 그저 신의 관망 속에
나 자신을 방치한 채
계속 ‘왜’만 외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왜’는
누군가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나를 일으키기 위한 사유의 도약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신이 잠시 머물다 간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죽을 뻔한 사고를 가까스로 피했던 날,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꼈던 밤에
말없이 등을 토닥인 따뜻한 메시지 하나,
혹은 문득 스친 바람 한 줄기.
그런 순간들 앞에서
우리는 “다행이다”라고 말하고
쉽게 지나쳐 버린다.
하지만
“왜 나만 이래?”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우리는 불공평함엔 깊이 잠식되지만,
다행스러움엔 쉽게 무뎌진다.
그건 인간이
감정과 질문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각하게 되었다.
“이건 신의 탓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지 못했던 질문의 탓이 아닐까?”
지금 나는
신이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신의 계획보다,
나의 우주를 설계하는 데
더 깊이 몰입하고 있다.
질문을 남기고,
글을 남기고,
이 순간에 진심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위로가 되고 싶지 않다.
대신, 누군가가 자기 안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조용한 문장을 건네고 싶다.
그 소리는 말할 것이다.
“그래, 너도 나처럼 아팠구나.
그래도, 살아 있구나.”
어쩌면 신은,
불공평한 존재가 아니라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존재,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결정하는 건,
흘러가는 건,
받아들이는 건—
항상 나였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가는 자‘신’이니까.
그 우주는
고통을 품고 있었고,
사랑을 통과했고,
질문을 흔들며 자라났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신은 ‘거울 없는 자아의 마지막 창문’이다.
모두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 할 때,
어떤 사람은 조용히
바깥을 향해 열린
작은 창문 하나를 연다.
나는 그 창을,
‘신’이라 부르고 싶다.
신은
우리가 끝끝내 비추지 못한
우리 안의 마지막 깊이이자,
우리 바깥의 무한한 틈.
그 창을 열면
‘내가 아닌 것들’이 나를 비추고,
그 순간,
나는 ‘나’를
신처럼 느끼기도 한다.
신은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던 가능성의 창,
질문과 깨달음이 닿는 투명한 유리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나는 오늘도 조용히 질문을 남긴다.
정말 신이 불공평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의미를 원했던 존재였던 걸까?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불공평을 마주합니다.
가진 것, 잃은 것, 태어난 자리, 받아야 했던 상처까지—
누군가는 운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신을 탓하죠.
하지만 저는, 그 질문 끝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결국,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가는 자‘신’이니까요."
이 글은,
저 자신이 그 질문을 품고,
부서지지 않기 위해 계속 걸어왔던 기록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시련 속에 있다면,
‘불공평’이라는 말 앞에서
당신만의 우주를 다시 그려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