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물러선 사람

by 클로디

이 사람은
무언가를 쉽게 고르지 않는다.


사랑 앞에서도,
자기 자신 앞에서도,
일과 현실 앞에서도
늘 한 박자 늦게 선다.


그 한 박자는

망설임이 아니라
이미 무너져본 사람만이
갖게 되는 간격이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확신하는 사람들을
가끔은 부러워하지만,
끝내 그 속도로 살지는 못한다.


사랑 앞에서
이 사람은 말보다 시간을 본다.


설레는 문장보다
지켜진 하루를 보고,
약속보다
남아 있는 방향을 본다.


여전히 애틋해지고,
여전히 상대를 헤아리고,
여전히 “혹시”를 남겨두지만


이제는
사랑을 증명하려고
자기 자신을 잃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소모하는 방식만은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대할 때
이 사람은 예전보다 느리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를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르겠다는 시간을 견디며,
질문이 남아 있는 상태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나는 부족하다” 대신
“나는 아직 가는 중이다”라는 말을
겨우 자기 안에 남긴 사람이다.


현실 앞에서
이 사람은 도망치지 않는다.


조건을 알고 있고,
제약을 이해하고 있으며,
당장의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가치를 대신 말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현실은 버텨야 할 환경일 뿐,
자기 존재의 증거는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계속 되새긴다.


그래서 버티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고,
타협하면서도
방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 사람은
세상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방식으로.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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