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이 아니라 질문이었다면
선악과를 먹은 건
타락이었을까.
우리는 오래도록
그렇게 불러왔다.
금기를 어긴 순간,
순종이 끝난 자리,
에덴에서 밀려난 이유.
그러나 다른 장면을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선악과는
악해지기 위해 집어 든 열매가 아니라,
알아버리기 위해 선택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열매를 먹기 전의 에덴은
완전했을 것이다.
아프지 않았고,
불안하지 않았고,
사랑은 설명 없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 완전함은
흔들리지 않는 대신
깊어질 수 없는 완전함이었다.
상처를 모르는 사랑,
떠남을 상상하지 않는 관계,
잃을 수 없기에
지켜낼 필요도 없는 평온.
그곳에서는
선도, 악도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건
선을 택하는 일이 아니라,
선을 택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는 일이다.
그 순간부터
사랑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고통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관계는 언제든 부서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결단이 된다.
아마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하와는
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이제는
속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 어떻게 상처가 되는지,
사랑이 언제 끝날 수 있는지,
시간과 공간이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그 모든 것을 알고도
다시 손을 내민다면,
그 사랑은 더 이상 본능이 아니다.
그건
의지다.
그런 선택을
타락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오히려
존재의 시작에 가깝다.
에덴을 떠난 이후에야
인간은 처음으로
서로를 잃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그럼에도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선악과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놓인 열매가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했던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만약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그 열매를
다시 한번 집어 들 것이다.
알지 못한 채 지켜지는 사랑보다,
알고 나서도 선택하는 사랑을
믿고 싶으니까.
그것이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첫 번째 자유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