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상식,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

상식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by 클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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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묻는다.
상식이란 무엇인가.

다수가 믿는 것을 상식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오감으로 직접 확인하고, 시간과 자연의 질서 속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을 상식이라 불러야 하는 걸까?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다수의 믿음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 믿음은 마녀를 화형대에 올렸고, 노예제를 당연한 제도로 만들었다.
다수가 합의한 상식은, 때로 비상식이었다.

그렇다면 상식은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보고 믿을 수 있는 것.
속일 수 없는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뜨거운 불처럼,
흐르는 시간처럼,
변하는 계절처럼 말이다.


나는 상식을 시간, 자연, 오감 위에 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시간은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흐름이고,
자연은 인간보다 오래된 질서이며,
오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직접적 경험이다.

이 세 축은 권력이나 다수의 여론이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 위에 인간이 쌓아온 자유와 학문은,
어쩌면 경험이 남긴 결과물이자 흔적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순적이다.


우리는 상식을 알면서도,
반복해서 추악함을 되풀이한다.

욕망, 질투, 폭력, 무지—
그 어두운 것들이 언제나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추악함을 함부로 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인간이라는 전체 그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추악을 미워하는 순간,
나는 오히려 그와 닮아간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인간의 추악함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라,
성찰할 거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와 과학은 질서를 주었다.
도덕은 인간성을 지키려는 장치였다.
그러나 그 질서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력하다.

도덕은 때로 우리를 억누르기도 한다.
인간은 결국,
한계 앞에서 무너지고,
그 무력함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다.

나는 그 모순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인간은 사회와 과학으로 질서를 세우지만,
도덕과 인간성으로 그 틀을 다시 묻는다.
무력함 속에서 자유를 향한 불꽃을 갈망하는 것—

그 모순과 진동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추악함도, 아름다움도
그 안에서 동시에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갈망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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