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를 지우라던 말, 나는 되묻기로 했다
최근 유튜브에서 봤던 흥미로운 대화가 있었다.
배우 이이경 씨가 군 복무 중 받았던 특별한 훈련 이야기였다.
“머릿속에서 ‘왜’라는 단어를 지워라.”
그는 지시에 따라
‘왜 이걸 입어야 해?’,
‘왜 먹어야 하지?’
같은 질문을 의식적으로 지우며 행동했고,
그 결과 삶이 단순해지고, 몰입이 쉬워졌으며, 에너지 소모도 줄었다고 했다.
이 글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나는—질문으로 존재를 탐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조용히 반론을 던지고 싶어졌다.
‘왜’를 지우면 인생이 단순해질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함이 곧 깊이는 아니다.
내게 ‘왜’는 귀찮은 의문이 아니라,
존재의 결을 살피고
감정을 다듬으며
나를 알아가는 입구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 질문 하나가
때로는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왜’는 개인의 고뇌를 넘어서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왜 왕만 특권을 가져야 하는가?”
“왜 우리는 세금만 내고, 말할 수도 없는가?”
“왜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이 ‘왜’들은 프랑스 시민들의 가슴에서 피어나
왕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왜’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변화의 전조이자 혁신의 시작이었다.
‘왜’를 줄이면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생각 없이 따르는 삶일 수 있다.
‘왜 이걸 해야 해?’를 묻지 않으면,
우리는 루틴에 적응한 채,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나는 그런 삶보다
물음을 품고 걸어가는 삶을 원한다.
불편하더라도, 의미를 스스로 붙여가며 살아가고 싶다.
물론 모든 ‘왜’를 안고 살 필요는 없다.
때로는 질문이 회피나 핑계로 흐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다르다.
“왜 나는 이 감정에 머물고 있을까?”
“왜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할까?”
“왜 나는 글을 쓰고 있을까?”
이 질문들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는 모든 ‘왜’를 품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지탱해온 몇 개의 ‘왜’는
끝까지 놓지 않고 흐르게 둘 것이다.
그건
나를 만든 질문이며,
내가 사랑하는 울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왜’를 지우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왜’는 끝까지 안고 가야 할까?
그 질문 하나에서,
당신의 내일이 바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