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 Feb 07. 2018

180206, 스위치 성교육 1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 성교육하기 어려울 땐

"똑똑, 바쁘세요?"

6학년 2반의 남자 선생님 H, 오후에 교실에 찾아오셨다.


"지난번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저는 선생님 반 남자애들 데리고, 선생님은 저희반 여자애들 데리고 성교육 하는 거..."

회식 때 성교육 필요성에 대해 의견 나누다가 남자선생님이 여자애들이랑 얘기하기엔 좀 한계가 있다시길래, 나도 남자애들과 대화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우리 트레이드해서 한 차시만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그걸 잊지 않고 학년 말에 찾아와 준 것.


H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하신 부분은 이런 거였다.

"생리컵 같은 거 있잖아요. 여자애들이 생리 때문에 꽤 고생하고 있어요. 그 부분에 대해 다양하게 조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얘기도 해주세요. 친밀한 관계에서 성폭력 일어나면 잘 인지하고 거절할 수 있게 상황별 성추행 대처 매뉴얼 같은 거 알려주세요."

선생님이 어려워 하시는 지점을 알 것 같다. 직접 공부하고 알려줄 수야 있겠지만 여자아이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대화 나누지 않으려 하면 역효과다.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 도리어 문제가 될까봐 염려도 될 테지. 그럼에도 외면하거나 덮어두는 대신 도움을 요청하는 선생님의 용기가 멋졌다.


"저도 비슷해요. 관계에 대한 '동의'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처럼 대한다고 여길까봐 접근하기 조심스러워요. 음란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서도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무심한 듯 짚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

H선생님은 그러마고 하시면서, 요즘 여자애들을 '00년'이라고 저장해놓고 이년저년 부르는 6학년 남자애들이 있어서 여성, 장애인, 소수자 비하하는 표현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가르치듯이 도덕적인 얘기하면 잘 안 받아들일 테니 접근방식에 대한 고민을 더 해보겠다고도 하셨다. 또 자신이 여성의 성차별 현실에 대해 얘기하면 비교적 끄덕이며 듣는 아이들인데, 여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편 든다, 피해의식이다, 역차별이다'고 느끼기도 하더라면서 어려우시겠다고 내게 격려도 해주고 가셨다.


다행히 다음주에 진도 끝나 재량으로 채워야 하는 국어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주 지도내용이기 때문에 무리없이 적용 가능하다. 물론 시간이 있다고 맘대로 진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교육 기관에서 관리자 허가없이 교육과정에서 벗어나거나, 계획과 다른 장소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을 할 수는 없기에 먼저 교장선생님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수업 취지, 목표, 내용, 방법을 설명한 계획안을 짰다. 수업의 근거도 필요하기에 [국가수준 2015 개정교육과정] 안전한 생활3-3-2, 체육 5,6학년 성취기준 / [2015 초중고 성교육표준안] 초등 고학년 지도 부분을 발췌하여 첨부했다.


내일 교장선생님과 면담할 일이 기대돼서 잠이 잘 안 온다. 잘됐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