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알못이 부암동 골목에 숨은 온세상을 엿보고 와서
아, 너무너무 좋았다.
곡선을 잘 쓴 3층짜리 본관 건물 곳곳이 참 우아했다. 김환기의 그 큰 작품들이 드문드문 걸린 벽은 여전히 넉넉하고, 계단 오를 적마다 넓어지는 채광 면적이 공간의 온도를 높이는 느낌. '(이미 있는) 전시관에 이번에는 환기의 그림을 걸자!' 가 아니라 애초에 '환기의 작품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한 차이가 있을 거 같았다. 다른 데서 이 전시 본 적 없기 때문에 뇌피셜이지만 말이다.
아, 너무도 아름다웠다.
미알못이라, 그간 '캔버스에 유채'만 봤는데 '코튼에 유채'가 눈에 띄었다(검색해보니 김환기만 잔뜩 뜨는 거 보면 독특한 부분인 듯).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비롯한 시그니처 작품들이 다 그랬는데, 코튼은 캔버스랑 달랐다. 색이 번진다. 수정을 위한 덧칠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캔버스 유채 작품들은 네모 주변에 덧칠한 흔적과 그로 인한 그라데이션이 흔한데, 코튼에 유채로 그린 작품은 화선지에 그린 듯 은은하고 생기있다. 즉흥적인 느낌이 들지만 10만 개의 점을 그린 건 결코 즉흥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겠다. 그게 눈에 보일 만큼 작품 내에 '여기서 저기까진 한 호흡이겠다' 싶은 구간들도 보인다.
추상미술이 어떻고 저떻고는 잘 모르더라도 제목 보고 이런 뜻일까? 저런 뜻일까? 궁리해보기라도 할 텐데, 이 사람은 다 무제 아니면 숫자의 나열이다. 그러니 아예 맘 놓고 편히 볼 수 있었다. 아! 예쁘다. 아! 봄이다, 아 바다인가, 우주 같다 하면서. 그렇게 작품들이 큰데 웅대하다는 느낌보다 점잖고 고매하다는 느낌이 든다.
전시관에 시시콜콜 김환기의 생애가 어땠는지, 74년 작고 후 김향안이 그를 어떻게 세상과 이어왔는지 같은 걸 적어두진 않았다. 20세에 일본, 35세엔 서울대 교수, 40대엔 625 그 이후 독일, 다시 한국- 그런 연혁 정도. 그래서 여전히 김환기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대신 별관 '수향산방'에 있는 기획전 (70년대 드로잉)을 통해 짐작한 바로, 아주 귀여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 우연히 레이몬드라는 화가를 만났어. 내 스케치북을 보였더니 경이적인 태도였어. 너무 동양적인가? 물었더니 그렇지 않대. 대단히 오리지널하대. 쬐끄만 작품이 우주감을 준대. 묘한 색깔이래. 가다가 진지하게 내 그림을 보아 주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기쁘고 용기가 나요. 나 우선은 다작보다도 알뜰한 그림을 만들래. 금년은 4,5폭에다 정열을 쏟을래.'
'향안, 빨리 와야겠다. 이런 것 가지고는 실감이 안 나니 이야기가 안 돼. 오른쪽은 시작해 본 거와 왼쪽은 전에 것 그대로인데 엷게 그려본 거야. 나는 오른쪽 그림에 매력을 느껴요. 바닥은 순백색이고 주로 赤, 靑, 綠. 향안도 눈이 영롱해지지 못했을 거야. 서울의 바쁜 생활 속에서는 당신의 發達한 視覺도 後退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러니 빨리 와서 그림을 봐주워요. 내 그림에 감동이 됐다가도, 가다가는 회의가 생기고 그래요. 왜 편지가 안 드러오나. 오늘도 편지가 없을가.'
<수화(환기의 호)>, <청백자 항아리> 같은 글들도 모양이 곱다. 시인이 되어도 좋았을 터다.
'(...) 몸이 둥근데다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 놓여 있는 것 같지가 않고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도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청백자 항아리는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항아리는 더욱 싱싱해지고 이슬에 젖은 청백자 살결에는 그대로 무지개가 서린다. 어찌하면 사람이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만들었을꼬... 한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다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향안에게 쓴 편지들이 엄청 귀엽다. 손으로 글을 쓰고 편지를 쓰는 것들이 이렇게 남는다니, 기록을 오프라인으로 남긴다는 건 이렇게 아주 나중에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지만 너무나 낭만적인 일이구나. 필체도 하나의 그림같이 독특하지만, 한자와 영어를 섞어 쓰고 맞춤법이 지금과 사뭇 다른 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미있는 텍스트로 남는구나.
분명히 연약하고 위태로운 구석도 있었을 테지만, 그가 한 말들을 보면 단단한 심지가 있었을 거라고도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미술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가질 수 있는 모든 형태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 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 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차다.'
'미술가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기 전에 아름다운 것을 알아내야 한다. 아름다운 것에 무감각한 미술가가 있을까. 미술가는 눈으로 산다. 우리들은 눈을 가졌으되, 만물을 정확히 보고 있는 것일까? 옥석을 부별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돌 틈에서 옥을 발견해 낸다는 것은 하나의 창조의 일이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라는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생각하라.'
'화제란 보는 사람이 붙이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아트샵 따위! 가고 싶지 않아서 스킵했었는데, 수향산방까지 보고서는 다시 돌아 올라가 그림과 전시 팜플렛을 샀다. 아 정말 보시니 참 좋았다!
* 다음주 화요일부터 당분간 수리 예정이란다. 가실 분들은 금토일을 잘 활용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