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은 나 대신 원칙에 맡기자
요즘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선순위 잘 정하고 실천하기>이다.
젠더이슈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 보니 ‘결국 교육이 핵심이다’ 깨닫고 젠더교육을 초등교육에 효과적으로 폭넓게 도입하려고 시도 중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것은 메타 문제인 셈. 그래서 다양한 의사결정 방법을 활용해 목표 달성에 최적인 상태를 만들려 노력중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의사결정 방법들은 '빼기'/ '비교하기'/ '미래 상상하기'
빼기가 가장 중요했다. 모든 경험이 교사에겐 도움이 된다고, 나는 너무 다양한 판을 벌려놨다.
처음엔 도무지 내가 몸담고 있는 데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 중요해 보이기도 했고, 내가 맡은 역할에서 물러나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결정을 나 대신 아래 원칙에 맡겼다.
워렌버핏이 소개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3단계다.
1) 직업상 목표 25개를 쓴다.
2) 자신을 성찰해가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 5개에 동그라미 친다.
3) 동그라미 치지 않은 나머지 20개의 목표를 찬찬히 살핀다. 그 20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할 일. 신경을 분산시키고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아서 중요한 목표에서 시선을 앗아갈 일.
앤젤라 더크워스는 이에 더해 그 5가지가 한 줄로 꿰여 하나의 큰 목표 아래 서로 상호보완하며 갈 것인지 살피라고 했다(<GRIT>, 2016). 이 방법에 근거해서 나는 빼 보기 시작했다, ‘내게 꽤 중요한 문제로 여겨져 왔으나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데에는 방해가 되는 것들’을.
일 년여 간 참여했던 그린피스 액티비스트 활동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전교조 소속 놀이교사 모임 가위바위보에도 발걸음을 거두었다. 경력 많으신 선배들에게 많이 배우고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주던 5년여의 국어교육연구회 활동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모든 모임의 주최자였던 내가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고 대신 중요한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안 해본 선택은 늘 시도하기 전이 가장 두렵고 어려워 보인다.
일상적이면서 지속해야 하는 문제들은 대개 빼기가 작용하지 않아 비교대상을 만들어 저울질 해보았다. 내일의 스케줄과 내 컨디션을 위해 일찍 자는 것과 오랜만에 보고 싶었던 영화 보기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가. 이 시간에 먹는 것과 안 먹는 것은? 밤새 즐거운 것과 적당히 아쉬움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선택의 기준은 '다음날 후회 대신 안도할 것'이었다. 저자는 후회와 안도를 반복하는 것은 유식한 강화학습을 잠시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뇌가 활동하는 한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이라고 했지만,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 발전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후회하는 대상이 계속해서 달라져야 한다.
위 두 가지 방법은 그럭저럭 순간마다 사용해가며 익숙해지고 있다. 나는 이전보다는 의사결정에 능해졌다. '내 최상위 목표에 따르면 무엇이 더 지금의 내게 필요한가?'라고 물으면 빼기도, 비교하기도 쉬워졌다.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일 거다. 내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와 목적을 묻고 답하며 유의미한 나로 채워갈 수 있는 것.
문제는 지금부터다, "미래 상상하기". 목표에 비추어 의사결정하는 일이 고된 게 아니라 목표 자체가 날 괴롭힌다. 아주 먼 미래는 지나치게 핑크빛이고, 가까운 미래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다.
그동안은 일 년 단위로 생각을 시작하고 마쳐 왔다. 정확히는 학급운영의 기본 단위인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나의 일 년이었고, 적어도 60대 초반까지는 이 일을 하리라는 무책임한 낙관으로 5년 10년 30년짜리 중장기 목표는 좋은 교사로 성장하고 익어가는 것으로 뭉뚱그려졌었다.
이제는 교육 안에서 나를 사용하고 싶은 분야가 좀 더 뾰족해졌다. 목표는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목표가 단기, 중장기로 더 분명해져야 했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니 시간이 급박해졌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존의 내 삶도 같이 뒤집어져야 하기 때문에, 꿈만 바꾸는 게 아니라 내 삶의 형태도 발맞춰 바꿔나가야 했다. 생각하던 방식대로 생각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런데 내 몸에 새겨진 오랜 습관들이 그를 따라가지 못해 더디다. 앞서 빼기로 결정한 것들도 그 관성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곤 한다. 익숙하지 않은 '목표 달성을 향해 올인하여 달리기'를 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을 책망한다. 도전하려 할 때 내 능력을 의심하고 자신감 없어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 괴롭다. "난 못해, 이번엔 안 될 거야, 아직은 멀었지 / 그런데 10년 뒤엔, 언젠가는, 마침내 그 때는 내가 바라는 세상에 한걸음 가까워져 있을 거야" 이런 모순된 미래를 상상하는 현재의 나에게 실망하는 과정에 있다.
꽤 만족스런 30년을 살았는데, 서른한 번째 해를 사는 나는 무척 실망스럽다. 왜 오늘이 충실하지 못했는가 후회를 하는 날이 더 많다. 자기 목표를 따라 충실히 살아내고 성과를 톡톡히 이루는 사람이나 젠더교육 관련해 하나씩 일구어가는 사람을 보면 시기한다. 책에선 시기, 실망, 후회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요소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런 감정들은 의사결정에 잘 활용해야 의미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생산적인 학습에 사용하지 않고 그저 나를 소모하는 감정으로 내버려두는 건 내게 손해다. 이 감정을 잘 활용하는 방법은 미움 받더라도 날 위한 선택으로 채운 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그 하루하루들이 목표를 향해 있도록 내 우선순위를 조정해나가는 일일 게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내게 계속 실망하는 이 과정이 조금 즐겁다. 실망스러운 나를 인정해야 나는 바뀔 수 있을 테니까, 실망하지 않기 위해 회피하거나 덮거나 중도포기했던 무수한 내 선택들을 복기하고 바로잡아나갈 거다. 내 삶을 '그냥' 살지 않겠다.
- 트레바리크루크루의 9월 토론도서 <지능의 탄생>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