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 Nov 11. 2017

한결같은 사랑을 하려면

한결같지 않아야 한다는 이상한 사랑의 원칙

* 트레바리 GD의 11월 도서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를 읽고 쓴 글입니다.



이번 토론을 위한 발제문의 첫번째 질문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 이에 대해선 예전에 글쓴 대로(https://brunch.co.kr/@clsrn4146/1) 여전히 생각하고 있으니까 요 부분은 생략한다.
다만 이 책을 읽고 새롭게 가지고 싶은 마음가짐이 있다면, '한결같음'의 환상을 버리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애인의 한결같음은 환상을 넘어 때로 편견이나 폭력일 수 있다는 걸, 이 문장을 보고 생각했다.


p199 누군가를 하나의 개인으로 환원하고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바라보려는 것은 근대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권력이 남긴 최고의 유산이다. 우리는 특정 영역을 딱 잘라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잘라낸 '한 사람'에 대하여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착한지 나쁜지 빨간지 파란지 분류한다. 하지만 오늘 남자인 사람도 내일 여자일 수 있고, 어제 나쁜 사람도 오늘 착한 사람일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사소한 간과가 사랑에서의 지루함을 유발하고 결국에는 이별을 낳곤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A 말고 다른 이B에게서 매력을 느낄 때, 그 매력은 보통 A가 가지지 않은 것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면 미술관 관람하며 미술사에 대한 수다를 하루종일 나눌 수 있는 애인이 너무 좋은데, 유약한 그와 다르게 에너지틱한 클라이밍을 즐기는 스포쓰맨 친구가 멋져보이곤 하는 식이다. 그래서 왠지 A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매력을 가진 B가 연애의 위협처럼 느껴질 테다. 하지만 실제로 연애를 하다 보면, 애인인 A에게 실망하게 된다면 그건 A에게 없는 것 때문이 아니라 A에게 있었다가 없어진 것, 혹은 없었다가 생긴 것들일 게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 자주 이런다...변했나?' 
'예전엔 열렬히 날 사랑했다-> 사람이 변했다=더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로 간단히 치환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종종 그저 막연히, 사랑도 사람도 변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아는, 한결같음의 신화를 대변하는 영화 명대사가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중학교 때 이 영화 보면서 내가 뭘 알겠나. 사랑이 변하는 건 안 좋은 건갑다 했겠지. 좀더 옛날로 가보자면 가족끼리 똘똘 뭉쳐 살아내는 게 과제이던 때 전우애 비슷한 의리나 가족에 대한 헌신이 중헌 때에, 같이 살자고 서로 한 번 약속한 거 끝까지 지켜내자는 문화가 전해져 와 이견없는 사실처럼 자리잡았겠다. (더 옛날로 가면 청상과부 열녀문 세우던 때니까 패스.)그러니 일반적으로 우리 생각에 사랑은 불 같은 감정을 넘어서 삶에 대한 전반적 태도나 책임의 문제인데, 이놈의 폴리아모리는 언뜻 감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거부감 들 만도 하다. 

사람이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는 것이 우리가 연애를 할 때 가장 두려워 경계하는 일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불변을 원하는 건 '한결같은 사람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나를 넘치게 애정할 거'라는 안일함을 갈망한다는 소리다. 아니 세상에 누가 조건없이 날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사랑해주나. 울엄마도 못해준다. 변화는 생의 증거이다. 모든 건 변할 수밖에 없다. 만물이 변화한다는 건 진리로 여기면서 내 사람만은 변치 않고 날 사랑해주길 바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하니 이별할 때 절절히 아프고 괴롭다. 

그런데, 으레 변하기 마련인 누군가에게 한결같이 애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그건 계속해서 내가 그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겠다. 이 책에서 말한 '강렬도' 개념이다. 

p144 특이한 존재들이 자신만의 본질적인 강렬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강렬도가 특이한 개체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명심시킨다. 강렬도는 관계 안에서 발생하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존재를 가능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강렬하지 않을 때에는 우리는 결코 실존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세상은 강렬한 만큼 나에게 존재한다.


여전하고, 변함없고, 한결같이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려면 계속 변해야 한다. 처음과 같은 모습이라면 그건 한결같음이 아니라 퇴보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변하고, 만나는 사람도 변하고, 접하는 정보가 달라지니 나는 가만히 있어서는 한결같을 수가 없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수많은 요소들이 겹치고 겹쳐야 가능한 마법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마법에서 깨나지 않을 수 있도록 발버둥치는 일이다. 나를 아끼는 누군가는 내 존재 자체로 빛이 나서 그래주는 게 아니다. 특정한 배치 상태에 놓인 그당시의 내가 강렬했을 것이고, 그 여러 배치 속에서 발생한 강렬함들과 아울러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배치를 다듬고 가꾸고 보듬어야 한다. 나에게 그 상대가 강렬한 한.

그리고 나의 강렬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상대의 강렬함을 빛나게 해주는 최고의 방법이 '비독점성'이라고, 폴리아모리는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의 성숙함과 그에 따른 의사결정을 온전히 긍정하고, 서로의 빛을 꺼뜨리는 갈등은 하고 싶지 않으며, 그리하여 상대를 자기 인생에서 결코 이별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중요한 존재로 대하겠다는 태도의 표현이라는 것. 나는 그들이 인간과 삶과 사랑을 끌어안는 방식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만큼은 내가 조금 더 성숙해져야겠다고, 옹졸한 모노아모리 주제에 감히 다짐도 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