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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25. 2018

나도 몇%의 가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도 모르게 나한테 주는 면죄부를 인식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트레바리-CLUB ESQUIRE>의 2월 책 <82년생 김지영>과 에스콰이어 2월호 아티클을 읽고 쓴 글입니다.



 이번 에스콰이어 2월호는 여성 이슈를 주제로 내세우고, 실제로 아티클의 90% 이상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성 이슈에 관심 갖고 목소리 내는 남자가 힙한 거지'라는 느낌적인 느낌을 준다. 세태 흐름이나 고객층 고려해서 돈 되겠다고 판단한 일이겠지만 어쨌거나 너무 반갑다. 

 요즘 과학 분야 1위 도서가 <랩걸>이다. 관련 키워드는 #식물학 #자서전 #여성과학자 #워킹맘 정도 되겠다. 코스모스보다 위에 있다. 갑자기 왜 1위로 급부상했는가 했더니 TV에서 유시민씨가 딸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소개했더라. 과학자가 소개한 것보다 훨씬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건 당연하다. 깊게 관여되어 있지 않은 인물의 공동체적 관심과 지지, 연대는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횡적으로 확대시킨다.

<남자는 여자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에 실린 사례들과 비슷한 일화를 10개도 댈 수 있다. 그런데 이럴 때 대화는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기 쉽다. 나도 그랬다.
"세상에 저런 불한당 개새끼가 다 있나!" 
그런데 이런 방식은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안 된다. 가해자와 내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마땅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욕하는 나는 선량한 시민이 되고, 저 불한당과의 거리는 선명하게 벌어진다. 그 같은 가해자가 생긴 과정에 내가 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사람은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해결에 뛰어들지 않는다. 

김지영 씨가 미쳐버린 직접적 이유가 뭔지 찾을 수 있던가? 아니다. 다만, 무력감과 공포를 느끼는 순간들이 삶의 코너마다 등장했고, 한 인간의 경험은 환경과 문화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버지도, 버스위협남도, 상사도, 정신과의사도, 남편도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들의 의도는 나쁘지 않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것들이니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또한 당시의 상처들이 아주 크리티컬하지도 않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존엄성은 차츰 깎여나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나는 내 안에도 존재할 '가해성'을 발견하는 대화를 나누는 작업이 문제 해결에 좀더 이롭다고 믿는다. 낮은 수준이라도 차별적인 사고방식이나 편견을 갖고 있진 않은지, 나는 몇 퍼센트의 가해자일지 점검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회사 내에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면 피해자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일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나? 연예인 섹스비디오가 떴을 때 보고 싶지 않았나? 혹은 누군가 공유해줬을 때 '이런 행동 별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나?"같은 물음을 해보는 일. 내가 내 연차보다 낮은 사람에게 은근슬쩍 강요한 일은 없나?, "야이~ 막내가 이래도 돼?"라며 위계를 인식시키고 상대의 행동에 제약을 거는 경험은 없었나? 그런 발언들이 이 조직의 분위기 형성에 기여하지는 않았을까? 등 조직 내 권력이 흐르는 방식에 나는 긍정적 기여를 하는 사람인지 판단해보는 일. 

 아티클에 제시된 사례 속 가해자들은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나쁜 놈이 아니다. 그런 나쁜 짓이 가능해보이는 문화와 환경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작은 가해에 허용적인 분위기는 더 큰 가해를 쉽게 부른다. 유쾌한 농담과 불쾌한 농담, 모욕, 물리적 폭력은 모두 연결돼 있다.  나는 가해자는 명백히 아닐 수 있어도, 가해에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말하긴 어렵다. 그런 점에서 가해자들은 우리와 얼마간 닮아 있다.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함께 가해에 대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기 어렵다. 후배 얼굴 몸매 평가하는 카톡방에서 가만히 있거나 한 마디 거드는 건 괜찮은가? 라는 물음을 던져본 경험이 있어야, 그 다음 행동에 반영할 수 있다. 내가 "사람 없는 데서 평가질 하지마, 뭐냐 모양 빠지게ㅋ" 한 마디 던졌을 때는 "뭐래" 같은 반응이 돌아올 지언정, 같은 카톡방 안의 누군가에겐 그자체만으로 고마운 일이나 용기가 될 수 있고 그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로 번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제1의 남성패션잡지가 여성 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다루는 것 역시, 나는 위와 같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가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무언의 선고 같다.  


 성폭력, 권력에 의한 차별, 그로 인한 불이익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가 고립감에 빠지는 대신 주변에 도와주거나 들어주거나 편이 되어줄 사람, 기관, 제도가 있다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다. 내 안의 가해성을 찾고 인정하고 개선해나가는 게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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