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재와 에세이 드라이브 2기에서 쓰다
/ 고운
친절은 공짜처럼, 미소는 헤프게 쓰는 걸 좋아합니다.
덩실덩실 춤추듯 걷되 정면을 응시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요즘에도 그렇게 말해요? 꼰대는 둘째치고 촌스럽다 쫌.”
그 분 들으라고 하는 말을 다른 데 보고 던진다. 다행히 다른 분들이 열심히 맞장구 쳐 준다. 거봐, 당신 꼰대 맞잖아. 그런데 이상하다? 그 분도 맞장구를 같이 친다. 이러면 안 되는데,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찔려하고 역정 내야 맞는데. 왜 당신까지 맞아맞아 해주는 거야...
이런 일이 적잖으니‘세상 사람들 참 눈치 없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시시콜콜을 잘 들어주는 이에게 이 일화를 조잘거리니 그이가 그런다.
“저격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대부분 그 저격에 실패하는 거 같아. 오히려 힘 빼고 그냥 썼는데 정조준으로 먹혀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
오, 맞는 말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어서 그가 묻는다.
“왜 저격을 하는 것 같아 너는? 그냥 말하면 되는데 한 번 꼬고 돌려서 전하는 거잖아.”
그렇다. 저격은 정면승부하기 어려울 때 쓰는 방법이다. 두렵거나, 상대가 강하거나, 역공을 받고 싶지 않을 때. 이야, 촌스러운 건 나였네. 성큼성큼 가서 ‘당신의 말이 설렜어요, 상처였어요, 기뻤어요, 아팠어요’하면 되는데, 그 뒤에 돌아올 대답이 두려워서, 당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던져보다가, 이번 판이 아닌 것 같으면 홀라당 발 빼기를 반복하는 게 내가 상대를 가늠하는 방식이었다. 사랑받고 싶다. 엄밀하게는, 미움 받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이 나를 겁쟁이 저격쟁이로 만든 거겠다.
그런데 겁내는 습관에 관성이 붙으면 제일 안 좋은 게 진솔한 대화가 요원해진다는 거다. 겨냥하고 가늠해서 헤아리는 방식으로 대화하면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관성에 균열을 내지 않으면 항상 상대와 그 정도의 거리에서 서로를 어림잡아 이해할 뿐.
게다가, 그렇게 변화구 쓰지 않아도 어차피 대화는 항상 실패한다. 내가 전달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지도를 상대는 볼 수 없으니까. 그러니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고 전달받고 싶으면, 역시 직구여야 한다. 위력도 제일 세다. 다만, 상대에게 잘 읽힌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것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일 테다. 자신에게 자신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그래도 관성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내가 비겁한 채로 다시 그이에게 물었다.
“저격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저격하는 기술은 없을까?”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는 듯이 깔깔 웃으며 대답해준다.
“글쎄, 나도 늘 돌려 말하다 실패하는 사람이라. 도움 못 돼서 미안하다 야.”
도움을 받지 못하고 더 생각해봤다. 아직 잘 모르겠다. 그나마 그간 한 일은 우선순위를 세운 것이다.
1. 우회해서 전달하고 싶은 게 생긴다면 잔치레 다 걷어내고 알맹이만 담백하게 직접 전달하려고 마음먹어 보자.
2. 그게 어렵다면 그냥 하지 말고 참는다.
3. 참아봐도 계속 마음에 남는다면 그 사이에 여물어 있는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한 번 알맹이만 담백하게 직구로 전달해 보자.
4. 그러기 어렵다면 다시 참아 본다.
5. 3부터 다시 읽는다. 반복.
혹시 방법을 알게 되면 공유하겠다. 이상.
⊙ meghancarroll님 그림을 배경으로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