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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Dec 18. 2022

마지막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만난 중동 가족

아랍에미리트_두바이(2019.8.3)

#유럽여행 번외편 32일차


두바이에서의 20시간 레이오버를 뒤로 하고 이제 진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기를 탑승했다. 평소에 창가 자리를 가장 선호하는데 아쉽게도 양 가쪽의 자리가 아니라 중간자리였기 때문에 창가 자리에는 앉지 못했다. 그래도 제일 앞자리에 당첨이 되어서 이코노미석이지만 다리를 쭉 펴고 좀 더 여유롭게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있어 창가 자리에 대한 아쉬움은 금세 상쇄되었다.


생각해보면 어제 아침 7시 35분에 두바이국제공항에 도착해 당일치기로 두마이몰과 부르즈 할리파를 구경한 후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새벽 3시 40분 비행기를 타는 일정으로, 정말 빡빡하게 마지막 여행을 불태웠다. 그것도 30일간 유럽에서 하루 평균 2만 보씩을 걷는 강행군을 한 이후에 말이다. 혼자였으면 아마 못했을 것이다. 아니, 절대 못했을 것이다. 걷는 걸 좋아하는 가족이라는 동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고 일정이었다. 때론 투닥거리며 싸우기도 했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평소에 잊고 있었던 농도 짙은 감정들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표면으로 끌어올려주는 힘이 있고, 그 힘에 내 몸을 온전히 맡겨보았던 한 달이었다. 점점 언제 어떤 곳에 내가 서 있을지,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지 모르는 그때그때 대응해야 하는 여행지에서, 오늘과 내일이 가늠이 되고 또 그래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준비를, 여행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알게 모르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이 끝나간다는 게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색다른 경험들의 집합체 속에서 나는 또 성장했고 한 발 나아갔다. 그거면 충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행을, 그것도 국외여행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여행하는 동안 다친 사람도 없고 숙소가 갑자기 취소된 일도 없었으며, 여권이나 지갑을 분실한 일도 없이 잃어버린 거라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세비야로 가는 야간 버스 안에 두고 내린 흰색 캡 모자 하나밖에 없었던 걸 보면, 참 많은 행운이 여행하는 내내 함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아빠는 회사를 다니느라 이번 여행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럽여행이 끝나갈 즈음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유럽의 노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했던 생각이 있는데,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면 다같이 다시 유럽여행을 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찍은 3명의 가족사진은 어쩐지... 좀 허전했다.


물론 아빠가 회사를 졸업할 때면 오빠와 내가 직장생활을 하느라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를 기약 없는 혼자만의 다짐이었지만, 그건 모르겠고 어찌 되었든 가족 4명이 다같이 세계 여행을 하는 게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지게 된 '꿈'이었다.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10년 전과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비관주의와 낙관주의 사이 그 어딘가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였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두바이에서도 폴짝폴짝 뛰어다니느라 체력이 방전되고 시차도 뒤죽박죽이 되어 비행기를 타자마자 거의 바로 기절해서 잠들었다. 두바이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어서 그런지 히잡을 쓴 여자들과 키파(유대인 남자들이 쓰는 작고 테두리 없는 모자)를 쓴 남자들이 많이 보였고, 비행기 안 공기도 이국적인 향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낯선 향기쯤은 여독에 가득 찬 내가 기절해서 잠드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8시간 비행 중 몇 시간이 흘렀을까. 기내식 준비로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항공료 본전 생각이 나서 눈을 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인천공항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과 달리, 기내식보다 잠을 택한 사람들이 더 많았고 잠든 승객들을 위해 비행기 실내등은 어두웠다. 창밖은 가도 가도 깜깜했고, 이른 아침인지 저녁인지 가늠조차 될 수 없을 만큼 비행기는 밤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었다.


퉁퉁부은 얼굴과 잠긴 목소리로 겨우 비프와 치킨 중에 치킨을 주문하고 꿈인지 생시인지 시트에 기대어 몽롱하게 잠에 취해있는데, 어디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잠결에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내가 앉은 복도 바로 건너 창가 쪽 자리에 진짜 아기가 있었다. 검은색 히잡을 쓴 아랍계 성인 여자 두 명과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이렇게 4명이 있었는데, 아기는 엄마에게 안겨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져서 건너편에 누가 있는지도 제대로 못 봤었나 보다. 좁고 어두운 기내 안에서 오랜 시간을 있어야 하다 보니 아기는 한계치에 도달한 것 같아 보였고, 설상가상 맡아보지 못했던 생소한 음식 냄새는 아기를 더 자극하는 것 같았다. 아랍계 엄마와 유모로 보이는 동승자는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기를 달래느라 받아놓은 기내식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태였다.


기내식을 절반 정도 먹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건너편의 아랍계 일행 중 제일 창가 안쪽에 앉아있던 남자아이가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내며 발작 증상을 보였다. 중간에 앉아있던 아랍계 엄마는 복도 쪽에 앉아있던 유모에게 얼른 아기를 건네주고는 익숙한 듯 안간힘을 쓰며 남자아이를 누르면서 진정시키려고 했다. 갑작스레 발생한 소리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려움이 섞인 놀라움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남자아이가 지적장애나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나보다, 라고 짐작만 해볼 뿐이었다.


그렇게 다른 탑승객들이 음식을 거의 다 먹어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기는 비행기가 떠나가라 울었고, 남자아이의 발작은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여행지에서의 좋은 기억들로 마음은 풍요로웠지만 몸은 많이 지쳐있었던 터라, 처음엔 '성인도 힘든데 좁은 공간에서 아기가 얼마나 힘들겠어, 그럴 수 있지', '발작증세가 나타나니 본인은 얼마나 더 힘들겠어, 그동안 가족들도 힘들었겠다, 한국에 치료를 받으러 가는 걸까? 증상이 호전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나도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윽고 주위에 있던 다른 승객들의 불편과 항의가 승무원을 통해 두어 번 전해졌고, 그럴 때마다 아랍계 엄마와 유모는 승무원에게 미안하다며 진땀을 빼면서 난감해했다. 그러나 아랍계 엄마와 유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불편한지 울음을 그치질 않았고, 이들의 옆에는 겨우 포장만 뜯어낸 채 한입도 먹지 못한 기내식이 그대로 식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밥을 먹는 내내 신경이 쓰였던지 건너편 중동 가족을 돌아보던 엄마가 울고 있는 아기에게 잼잼과 도리도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깊은 눈매를 가진 아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엄마의 동작을 주시했다. 방금 전까지 대성통곡을 하던 아기의 큰 눈망울에서 미처 떨어지지 못하고 남은 눈물방울이 또르르 흐르는데, 마치 세수하고 난 후 잠근 수도꼭지에서 마지막으로 맺힌 물방울이 또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어이없게도 나는, 아기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얼굴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르르 흐르는 닭똥 같은 눈물방울, 이 이질적인 대비가 참을 수 없이 귀여워 내적 탄식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으려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스페인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 우리 엄마가 또...!' 싶었다. 국적 상관없이 아기만 보면 엄마는 그렇게 예뻐 보이는지 몸이 먼저 아기에게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보호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기들은 엄마를 세상 환한 미소를 가진 아이로 만드는 요상한(?) 힘이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엄마의 이런 돌발행동이 당황스럽게만 느껴졌는데, 가만 보니 엄마는 엄마의 방식대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는 스스럼없이 그들에게 다가갔고, 오빠와 내가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신기한 건 언어를 몰라도 다 소통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중동 아기에게 여전히 도리도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오히려 내가 너무 보수적이었던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됐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과 만나면서 예측 불가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과 삶의 태도 등을 배우는 것인데, 나는 예측 가능한 상황만을 기다리고 그렇게 유도하려 했었던 것 같았다. 내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벌어지면 당황해하고 불편해하고 수습하는데 급급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렸던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원래 여행이란 그런 건데. 누군가를, 어떠한 상황을 만날 결심을 하고 만나게 되는 게 아닌데. 예상치 못한 곳에 서있게 되고,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겪게 되는 게 여행의 본질인데, 그래서 굳이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하는 이유인데, 하마터면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여행을 마무리할 뻔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자주 당연한 사실을 까먹게 된다. 엄마를 보면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그 초심을 찾게 되어 다행이었다.


엄마는 건너편 자리의 유모에게 잠깐 아기를 달라고 했다. 내가 아기를 안고 있는 동안 밥을 좀 먹으라고. 이번에도 엄마는 역시나 한국어와 바디랭귀지였다. 이번에도 엄마의 인류 대통합이 통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유모는 옆자리의 아기 엄마에게 아랍어로 묻더니 두 분 다 피곤에 지친 얼굴로 고맙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으며 엄마에게 아기를 안겨 주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맑은 눈망울과 깊은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 아기와는 또 다르게 얼굴의 전체적인 선들이 선명하고 깊어서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중동 아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정말 아이의 눈은 우주를 품고 있는 것처럼 깊고 맑았다. 나도 모르게 사막의 오아시스를 연상했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한국식 까꿍을 반복했고 엄마는 둥개둥개 스킬을 사용했다. 아기를 낯설어하는 오빠는 옆에서 소극적이지만 나름 아기를 웃게 하려고 손으로 폭죽 같은(?) 무언가를 만들며 애썼다. 낯선 이방인이 신기한지 아기는 엄마와 나와 오빠를 번갈아보면서 한참 동안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는 이내 엄마를 찾기 시작했고 한국 엄마의 품을 불편해했다. 5분에서 10분 정도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 사이에 중동 가족은 기내식을 거진 다 먹었고 정리하고 있었다. 유모와 아랍계 엄마가 아기를 다시 데려가면서 뭐라고 했는데, 아랍어라 못 알아들었지만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대충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 오빠도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어유, 아니에요."라는 한국어와 함께.


잠깐 동안 아기는 안정을 찾는가 싶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탈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엄마는 나에게 승무원에게 말해서 아기를 좀 달랠 수 있는 장난감이든 뭐든 좀 도와달라고 말해달라고 했다. 저러다가 아기 쓰러지겠다고. 승무원에게 말한들 뭘 해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엄마가 하도 닦달을 해서,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아기를 좀 도와달라고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승무원이 건너편 중동 가족에게 무언가를 아랍어로 말하는데, 아무리 봐도 도와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기가 울어서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니 어떻게든 안 울게 조치를 취하라고 경고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말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 아기가 울어서 항의를 하는 게 아니라 도와달라는 거라고 다시 말했는데도, 승무원은 굳은 표정과 화난 듯한 말투로 더 강도 높게 중동 가족들에게 말할 뿐 도와주려는 제스처는 그 무엇도 없었다.


엄마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급기야는 한국어로 "그게 아니라, 아기가 너무 울어서 탈진할 것 같은데 이럴 때를 대비해서 기내에 뭐 준비해놓은 거라든지, 매뉴얼 없어요?!"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한국어와 영어와 아랍어가 섞인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웅웅거리는 기내소음, 어둑어둑한 실내등, 여러 음식과 각 나라 사람들의 고유한 향취가 섞인 냄새 등 모든 게 아득해지면서 순간 다 짜증이 났다. 왜 갑자기 이런 실랑이가 벌어졌으며 승무원은 왜 저렇게 화만 내면서 승객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지, 엄마는 왜 남의 일에 나서서 일을 크게 만드는지 등등. 


그렇게 기내에서의 실랑이는 어찌어찌 마무리가 되었고, 나만 느낀 건진 모르겠지만 건너편의 중동 가족과는 서먹한 관계가 된 것 같았다. 우리가 아기가 우는 걸로 항의를 넣은 걸로 오해했으면 어떡하지, 라는 마음에 미안하면서 억울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을 가지고 불편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한숨 자고 나니 우리를 실은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해있었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 승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본인의 짐을 챙겼다.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에서 일반 모드로 전환하고, 전화를 하고, 선반 안에 넣어놓은 짐들을 꺼낸다고 기내는 북적북적거렸다. 그런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가족도 선반 안에 넣어놓았던 가방과 짐들을 찾고 사람들의 흐름에 섞여 밖으로 나왔다. 32일간의 장거리 여행 중 각 나라들에서 산 기념품들로 뚱뚱하고 무거워진 캐리어들까지 무사히 찾고 이동하는데, 저 멀리 건너편에 앉았던 중동 가족이 가는 게 보였다. 그들도 짐을 다 찾고 나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기내에서의 실랑이가 떠오르면서 마지막에 오해가 생긴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한국에 대한 첫 기억이 우리 때문에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런데 중동 가족이 우리를 보더니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활짝 웃으면서!! 얼떨결에 나도, 엄마와 오빠도 다같이 손을 흔들면서 활짝 웃어주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오해한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사람 마음은 통하는구나'였다.


걸어가면서 엄마에게 기내에서의 잘못된 소통으로 중동 가족이 오해했을까 봐 정말 걱정했다고 말하니까, 엄마는 마음은 다 통하게 되어있다면서 그런 걸로 오해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기내식을 먹을 수 있게 아기를 안아주고 서로 웃으면서 대했는데, 그 사람들도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느꼈을 거라고.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소통이 잘 안 돼서 승무원이 그랬다는 걸 저 사람들도 다 알았을 거라고 그랬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더 안심이 됐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표지, 만물의 언어’와 같이 사람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의미가 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지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p.s.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보다 신이 너무 났는데, 일단 중동 가족과의 일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는 것과 한국에 도착했다는 게 너무 신이 났고 무엇보다도 한국어가 보인다는 게, 떡볶이, 비빔밥, 제육볶음, 순두부찌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너무, 너무, 너무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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