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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Dec 11. 2022

공원에서 만난 스페인 엄마와 아기

스페인_바르셀로나(8.1)

#유럽여행 30일차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 30일간의 서유럽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기도 했다. 20일차에 접어들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 때문에 '언제 이 여행이 끝나지? 아, 이제 집에 좀 가고 싶다...'라고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속으로 괴로운 비명을 질렀었다. 그러나 여행이 막바지 즈음에 이르자, 이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 아쉬움이 점점 짙어졌고, 언젠가 일상을 살아가며 달콤한 초콜릿처럼 마음속 서랍에서 꺼내먹을 오늘의 이 여행을 끝까지 잘 빛내고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바닥까지 떨어졌던 체력도 서서히 올라왔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4박 5일 동안 가보고 싶었던 장소는 얼추 다 가보았기도 했고, 오후 5시쯤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무리해서 일정을 잡고 싶지 않았다. 찬찬히 걸으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바르셀로나 도심과 작별인사를 하는 게 마지막 여행지에서의 가장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쇼핑도 좀 하고 근처 공원 산책도 하면서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보는 게 오늘의 일정이라면 일정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한결같이 지켜오던 아침 7시 기상을 이날만은 어겨보기로 했다. 전날 밤 잠들기 전에 눈이 떠질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나자고 엄마와 오빠와 약속했는데, 웬걸, 한인민박의 아침은 다른 어느 숙소보다도 부지런하게 시작된다는 걸 간과했다. 새벽 6시, 또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여행자들의 분주한 발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말소리, 드라이기가 작동되는 소리가 민박집을 가득 메웠다. 무엇보다 아침 8시 30분에 배식이 시작되는 한식 조식을 조리하는 냄새가 문틈을 비집고 기어코 내가 있던 방까지 침범해 들어왔다. 한 번이라도 외국에 떨어져 본 여행자들은 알 것이다. 타국에서 만난 한식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청각과 후각을 간질이는 엄청난 자극들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고,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나도 저렇게 바쁜 여행자였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한국인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꺼칠한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조금 더 뒹굴하다 결국 평소와 똑같이 7시에 아침을 시작했다.


타국에서 먹는 마지막 한식이라 그런지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조식을 힘차게 먹고, 엄마와 오빠와 마지막 탐험을 떠났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발을 옮기며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바르셀로나 도심의 거리들


그렇게 걷다 보니 한 공원에 발길이 닿았다. 오전 10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시우타데야 공원(Parc de ciutadella)이었다. 평일이었기 때문에 공원은 한산했고 간간히 조깅하는 현지인과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보였다. 이국적인 식물들이 주는 공원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에 자연히 우리의 발걸음도 느릿느릿 느려졌다. 한국에서는 늘 빠르게 걷는 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렇게 느리게 걷는 게 얼마만인지, 반가웠다.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인 웅장한 개선문을 지나 안으로 더 들어가니 아름다운 인공 폭포가 우리를 반겼다. 연못에는 오리들이 둥둥 떠있고 새들은 상쾌한 아침 공기가 좋은지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좌)공원에서 대형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는 스페인 청년                              (우)개선문인 아르코 데 트리운포(Arco de Triunfo)
(좌)공원 입구의 인공 폭포 카스카다(Cascada)                                                             (우)연못의 오리들



한참을 주변을 구경하면서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는 스페인 엄마와 어린 아기가 눈에 보였다. 스페인 엄마는 30대 정도로 보였고 아기는 아직 걷지 못하는 태어난 지 정말 며칠 안된 아이 같아 보였다. 평소 아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어머, 아기네. 엄마랑 같이 나왔나 보네."라면서 관심을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자 엄마는 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기와 스페인 엄마를 쳐다봤다. 나는 그렇게 시선을 두는 게 예의 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딴 곳을 보며 엄마에게도 너무 그렇게 쳐다보진 말라고 했다. 또, 서유럽의 다른 국가를 여행할 때는 인종차별을 거의 당해본 적이 없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만 유독 인종차별을 몇 번 겪었던 터라 좀 더 경계가 됐다. 혹시나 이 스페인 여자분이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어떡하나, 그럼 우리 엄마가 상처받을 텐데, 라는 생각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사하게 웃으며 내게 아기 눈을 좀 보라며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와. 에메랄드 빛의 눈동자를 가진 그 아기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예뻤다. 아기를 보고 인형 같다고 하는 게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눈이 마주친 스페인 엄마와 아기에게 한 번 웃어주고 나와 오빠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엄마가 "어머, 아기가 너무 예쁘다." 라면서 그 스페인 엄마와 아기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황한 나와 오빠는 얼떨결에 엄마 옆으로 갔고, 이번 여행에서 나름(?) 통역 역할을 맡고 있었던 나는 직업정신을 발휘해 엄마의 말을 통역했다.


"어.. She said the baby is so pretty."(아기가 너무 예쁘다고 엄마가 그러네요.)


그러자 다행히도 스페인 엄마는 "Oh, thank you." 라며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엄마는 당당하게 한국어 질문을 이어갔다.



엄마가,


"아기 몇 살이에요?"

라고 하면 내가,


"Hou old is the baby?"

라고 물었고 스페인 엄마가,


"She is three months old."

라고 대답하면 나는,


"태어난 지 3달 됐대."

라고 통역했다.



이런 식으로 "아이 눈이 참 예쁘다", "날씨가 좋아서 공원에 바람 쐬러 나왔나 보네요.",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등의 내용으로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고 갔다. 아이를 보는 스페인 엄마가 많이 지쳐보여서 괜찮으세요? 라고 물어보니까 육아를 하느라 계속 집 안에 갇혀있어야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우울증 증세도 나타나서 조금이라도 숨을 좀 쉬어보고 싶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햇살을 쬐고 바람을 느끼니 좀 살만하다고. 그러나 애석하게도 스페인 엄마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더 애석하게도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 깊은 내용의 언어적 소통은 불가했다. 아쉽지만 이렇게 짧지만 좋았던 만남을 추억으로 남기고 슬슬 가야 하나 싶던 그때, 엄마가 아이를 안아봐도 되냐고 말했다. 무려 한국어로!


엄마는 바디랭귀지로 아기를 안는 시늉을 하며 "아기가 너무 예뻐서, 이렇게, 이렇게, 한 번 안아보고 싶은데, 될까요?" 라며 한국어로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러자 스페인 엄마는 '아!' 라는 표정을 짓더니 아기를 엄마의 품으로 안겨줬다. 엄마는 세상 환한 미소로 아기에게 한국표 '우르르 까꿍'을 보여주며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정말 다행히도 이 천사 같은 스페인 아기는 낯선 사람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울지 않고, 오히려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지켜보고 있던 우리 모두를 무장해제시켰다. 


그렇게 엄마는 한동안 아기를 안고 있다가 스페인 엄마에게 아기를 다시 돌려줬다. 그리고는 스페인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아기 키운다고 많이 힘들겠다며 한국어로 얘기했는데, 국적과 언어를 초월해 ‘엄마’라는 존재들 간에 그 무언가가 통했던지, 이내 스페인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얼굴로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Gracias, Gracias(고맙습니다)"라고 목소리를 죽이며 스페인 엄마가 속삭였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나였지만 그때 이 말만큼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인류애가 물씬 느껴지는 인류 대통합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이때는 이게 어떤 감정인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 감정은 '벅차오름' 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한 번씩 공원에서 만난 스페인 엄마와 아기가 떠오른다. 눈부신 햇살 속에서 두 손을 맞잡고 나이도, 언어도, 국적도 모두 다르지만 그 모든 걸 뛰어넘어 50대의 한국 엄마와 30대의 스페인 엄마가 소통하던 그 찬란한 광경이.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우리 엄마를 바라보던 그 스페인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가끔씩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볼 때면,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시죠?"라고 바르셀로나로 안부를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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