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빈 Mar 09. 2023

아무도 없는 개선문을 달리다

프랑스-파리(7.10)

#유럽여행 8일차 (1)


이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프랑스 여행에서 기대했던 일정 중 하나인 노르망디 지역을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구음악의 창시자 에릭 사티의 고향으로 유명한 해안마을 옹플뢰르와 디즈니성의 모태가 된 몽생미셸을 들르는 일정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가기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한국인 가이드와 50여명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함께 대형버스를 타고 가는 하루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6시 40분까지 개선문 근처에 있는 집결 장소에 모이면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두 곳을 둘러보고 밤 9시쯤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여러 명이 다같이 움직이는 단체 활동이라 집결 시간에 맞춰 오지 않으면 기다려주는 것 일체 없이 바로 출발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공지사항에 적혀 있었기 때문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했다.


전날 눈을 감기 전까지도 과연 내일 아침에 무사히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내 몸은 생각보다 정신의 계획에 충실했다. 우리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5시 50분쯤에 출발했다. 에펠탑 근처 숙소에서 개선문 근처의 집결 장소까지는 넉넉잡아 25분 정도 걸렸다. 그래서 처음엔 6시쯤 출발하려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최대한 서두르자고 한 엄마 덕분에(?) 10분 정도 더 일찍 나가게 됐다. 당시엔 몰랐지만 이때 엄마의 선견지명은 후에 우리가 노르망디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게 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게 된다.


숙소 문을 열쇠로 철컥철컥 잠그고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파리는 지금도 현관문 잠금장치로 디지털 도어락을 쓰지 않고 열쇠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항상 도어락을 쓰던 한국인 입장에선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열쇠로 잠그는 그 특유의 아날로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쇠붙이가 돌아가면서 나는 그 거친 마찰음 소리가 집을 떠나는 사람에게 괜히 든든한 안정감을 주는 느낌이랄까? 파리에 도착한 첫날, 열쇠를 찾기 위해 벌였던 소동에 대한 기억은 이미 온대간대 없고 미디어에서 심어놓은 파리지앵의 낭만에 괜히 아침부터 흠뻑 취하는 우리였다.


투박한 미명 속의 공기를 뚫고 우리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고요 속에 잠겨있는 파리는 어제와 같이 여전히 아름다웠고 이런 풍경 속에 우리가 들어와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 6시경의 파리 시내는 지나는 행인이 거의 없어 살짝 경계가 되기도 했는데,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니 출근하는 파리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북적거려서 오히려 안심이 됐다. 잠시 기다리니 굉음을 내며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내릴 역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사뿐히 지하철에 올랐다.



Ep1. 

프랑스 지하철 파업 사태


그렇게 10분을 달렸을까. 중간지점 정도 되는 역에 왔을 때 지하철이 멈춰섰고 출입문이 닫히지 않았다. 처음엔 마주오는 지하철을 피하기 위해 서 있거나 운행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잠깐 멈춰 서는 건 줄 알았다. 주위의 파리 시민들도 대수롭지 않게 폰을 보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길래 원래 이런가 보다 싶어서 우리도 별 걱정 없이 기다렸다. 곧 있으면 출발하겠지,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지하철의 출입문이 열린 채 정차상태로 그렇게 1분이 지나고 3분이 지나고... 다시 5분이 지나갈 무렵, 뭔가가 잘못됐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포착되기 시작했다. 평온했던 파리 시민들의 눈동자가 여기저기 방황하기 시작했고 영문을 모르는 여행객들은 그런 파리지앵들을 보며 덩달아 불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윽고 알아들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불어 방송이 지하철 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는데, 중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앞다퉈서 거의 뛰다시피 말이다. 순간 '지하철 내에 폭발물이 있기라도 한 건가? 설마... 테러??!' 라는 합리적 의심이 언뜻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오빠도 일단 따라서 내리긴 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멀쩡히 잘 가고 있던 지하철이 갑자기 왜 멈춰서는지, 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친듯이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올라가는건지... 설상가상 우리가 내리자마자 지하철 내부의 등이 꺼지고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의 시동이 꺼졌다. 어느 것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지나가는 여자분을 가까스로 붙잡고 물었다. 


"Excuse me, what happened?"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그러자 여자는 지하철이 파업을 해서 여기까지만 운행하고 더 이상 안한다고 했다. 내가 기다리면 다시 운행하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그건 언제가 될지 모른다면서, 근데 아마 1시간 내에는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버스를 타러 몰려가는 거라면서 지금 빨리 나가지 않으면 버스마저 타지 못할 거라며 우리보고도 얼른 버스정류장으로 가든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보라고 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프랑스 지하철 파업이란 말인가. 프랑스 시민들은 파업을 하는 것도 노동자의 권리라고 생각해서 출·퇴근길의 불편을 감수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파리지앵들의 표정과 때아닌 지하철역의 아비규환을 보니 '당연하게'는 빼야할 것 같았다. 하하...


출근하던 사람들, 들뜬 마음으로 관광지로 향하던 여행객들,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던 아무개들 등 아무튼 모두가 뒤섞여 떠밀리듯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왔다.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는데 넓은 광장과 그 순간만큼은 더럽게(?) 예쁜 파리 건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때 내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이지 울고 싶다." 지하철에서 이렇게 쫓겨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우리에게 없었는데... 그때 시각은 6:10am. 집결 시간까지 아직 30분 정도 시간적 여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서둘러야했다. 지하철을 탔을 경우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비슷한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다른 교통수단이 우리에겐 절실하게 필요했다.

 


Ep2. 

영국신사와 우버 쟁탈전


다행히 이런 비슷한 상황을 유럽여행을 갔다가 겪었던 친구로부터 '우버' 앱을 깔아놓으라는 팁을 전해들었던 오빠의 기지로, 우리는 바로 우버를 불렀고 3분만에 우리를 구원해줄 기사님이 매끄러운 코너링과 함께 세단을 몰고 등장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차에 탑승하려는데 이번엔 갑자기 양복차림의 캐리어를 든 남자가옆에서 뛰어오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타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항의하자 기사님도 뭔가 이상했던지 우버 콜 여부를 확인했고 우리가 약속된 승객임을 확인하고는 남자에게 탑승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자 남자가 우리에게 영국식 악센트가 물씬 느껴지는 영어를 쏟아내며 본인 사정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런던에서 파리로 출장을 온 비즈니스맨인데 지금 샤를 드 골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지하철이 파업을 해서 공항까지 못 가게 됐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 차를 꼭 타고 가야 한다, 돈은 자기가 다 낼테니 합승하게 해달라. 정신없는 와중에 내가 이해한 그 남자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그래, 멀쩡하던 지하철이 파업으로 멈춰서서 당황한 건 잘 알겠는데, 우리도 급해죽겠다고 지금!! 그리고 우버는 사전에 우리가 정해놓은 목적지까지만 정해진 금액으로 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택시가 아니라고 설명했는데도 이 영국남자는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우버 시스템을 모르는 건지, 비행기를 놓칠까봐 마음이 급해서 우리 말이 안 들리는 건지 흥분한 상태로 계속 합승하자고 밀어붙이기만 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우버 기사님과 협상을 하든 상의를 하든 해보겠는데 불어도 못할 뿐더러 우리도 지금 약속된 시간이 있고 잘못하면 투어를 놓칠 판인데 이 사람과 더 이상 실랑이 할 시간은 없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도와줄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우버를 타고 개선문을 향해 달렸다. 


모퉁이를 돌기 전, 창문을 통해 내다본 바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겠다고 차도까지 내려와서 손을 뻗는 사람,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하는 사람, 버스정류장에 서서 노선을 확인하는 사람, 시간표를 확인하는 사람 등등. 광장을 가득 매운 30~40명 정도의 사람들은 마치 영화 촬영을 위해 각 자리에 치밀하게 배치된 엑스트라들 같아 보였다. 우리도 방금 전까지 저 장면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우리가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우버 기사님은 유창하진 않지만 불어 악센트가 묻어나오는 영어로, 파리에서는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곤 우리가 몇 시까지 도착해야하는지 확인하고 그 시간까지는 충분히 도착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베테랑인 듯 부드럽고도 빠르게 파리 시내를 질주하는 친절한 기사님 덕분에, 40만 원 가까이 되는 투어비를 날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노르망디를 갈 수 있게 됐다는 기쁨에 그제야 한숨을 돌리면서 파리의 아침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올록볼록한 양각과 음각이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4~5층짜리 파리 시내의 건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즈넉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고, 건물에 비친 오렌지빛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곧이어 센 강이 나왔는데 강을 따라 쭉 뻗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서서히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불과 몇 분 전 숙소에서 출발할 때 가졌던 그 산뜻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환기된 마음으로 영화필름처럼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아까 그 영국남자가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은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다른 방법을 찾아서 공항으로 가고 있을까? 아니면 다음 비행기로 표를 바꾸고 회사에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불상사에 대해 전화로 해명하고 있을까? 이제와 돌이켜보는 거지만, 이 남자와 합승했어도 괜찮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우버 기사님께 상황을 설명하면 최종 목적지를 샤를 드 골 공항으로 충분히 변경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럼 일석삼조였을 테니까. 영국남자는 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해서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을 것이고, 우버기사님은 장거리 손님을 영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우리는 우버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됐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 우리가 이 사람을 거절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아까 전의 짧은 상황에서 분명히 미안함보다 불쾌함을 더 크게 느꼈고 그 결과, 남자의 제안을 거절했다. 영국남자의 행동을 떠올려보면, 그는 너무 급했고 상대의 말을 듣지 않다보니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강요가 되어버렸고, 우리가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얻게 될 이득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합승의 여부는 우리가 키를 쥐고 있었는데 영국남자는 본인 할 말 하기에 너무 바빴던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시간도 촉박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 믿음도 별로 가지 않는데, 제안까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 보이니 이 제안을 굳이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영국남자는 우리에게 '공감의 여지'를 주지 못했다. 우리로 하여금 본인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느낄 미안함보다 강요하는 듯한 태도에서 오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게 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합승이라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씩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공항에 늦게 도착했는데 비행기가 나를 기다려주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요리를 먹고 돈을 냈는데 내가 낸 것보다 더 많은 거스름돈을 주기도 하고, 절대 못 찾을 거라 생각했던 잃어버렸던 물건이 돌아돌아 나에게 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도 여행자에겐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놀랍고도 신기한 '여행자의 행운'은 어쩌면 차분함과 진실성, 이 두 가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본인이 원래 타려던 런던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을 때 따라오는 일적 수고로움, 늦어진 일정만큼 불필요하게 파리에 체류해야하는 시간,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느낄 심리적 불쾌함, 이 우버를 놓쳤을 경우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들여야 하는 추가적인 노력 등을 고려했을 때 영국남자에게는 이 우버에 합승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엔 여행자의 행운이 이 사람에게는 닿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사람의 행운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부디 다른 행운이 이 남자에게 닿아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기를, 라고 잠깐이지만 마음 속으로 빌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을 때, 저 멀리 개선문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Ep3. 

아무도 없는 개선문을 달리다.


아니, 근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목적지를 3분 앞두고 이번엔... 군인들이 나타났다...! 실제 총을 든 무장한 군인들이 개선문으로 통하는 길목을 막고 있었다. 꿀벌색깔의 육중한 바리게이트를 지그재그로 설치하고 삼엄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우리는 지나갈 수 없음이 분명해보였다. 저 멀리 개선문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갈 수 없다니...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와 가이드가 있을텐데... 아, 신이시여... 

 

베테랑 우버 기사님이 발빠르게 골목골목을 달리며 개선문으로 향하는 다른 길목을 찾아보려 했지만 번번히 군인들과 마주칠 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기사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시간에 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목적지까지는 못 갈 것 같다고 미안해했다. 그때 시각이 6:32am. 시간이 촉박했던 우리는 여기에 내려서 뛰어가겠다고 했다. 기사님은 어느 방향으로 가면 제일 최단거리로 갈 수 있을 거라면서 행운을 빈다고 했다. 


그렇게 기사님과 급박한 작별인사를 나누고 차에서 내렸다. 그때부터 무슨 정신으로 뛰었는지도 모르게 앞만 보고 달렸다. 버스 안에서 먹으려고 챙겨온 납작 복숭아가 가방 안에서 앞뒤로 흔들렸고, 내 멘탈도 앞뒤로 흔들렸다. 심장박동이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졌고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노르망디도, 옹플뢰르도, 몽생미셸도, 무엇보다 40만 원도!!


작게만 보였던 개선문이 점점 두 눈에 가득차 들어왔고 마침내 아무도 없는 개선문 앞에 우뚝 섰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탓에 개선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수많은 자동차도, 샹젤리제 거리부터 개선문까지 가득 매우고 있는 관광객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마치 우리가 개선문을 통째로 대관한 것처럼. 살면서 다시 볼 수 있는 광경일까,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소음과 인파로 가득찬 공간이 고요해짐을 대면한 그 순간이, 그저 놀랍고 신비로웠다. 처음엔 옆면만 보이던 개선문을 회전교차로를 뛰어가며 180도로 정면과 다시 옆면으로 보았는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정말이지 경이로웠다. 그때 내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는,


와, 정말 비현실적이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개선문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 저 앞에 무장한 군인 서넛이 서 있는게 보였다. 그 옆에 육중한 탱크도 함께. 군인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를 보고는 표정이 굳더니 날카로운 눈매로 주시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뛰는 걸 멈출 순 없었다. 여기서 갑자기 뒤돌아 가면 그게 더 수상하게 보일 거 같았고 집결 장소가 바로 코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각이 6:39am. 짧은 순간이었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가 지금 접근금지 구역에 들어온 건가? 우리한테 다가오진 않겠지? 설마 경고도 없이 바로 사격하진 않겠지? 불어로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하나? 왜 여기 있냐고 물으면 투어약속 때문에 왔는데요, 라고 하면 저 사람들이 믿어줄까? 아... 한국대사관이 어디있더라? 


그리고 속으로 미친듯이 외쳤다. '쳐다보지 마세요, 그냥 길가는 선량한 시민입니다. 총 쏘지 마세요, 죽더라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죽고 싶진 않아요. 엉엉.' 다행히 그들은 우리가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다시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것 같았다. 휴, 살았다 싶던 순간, 앞에서 멀쩡히 잘 뛰어가던 오빠가 갑자기 멈춰섰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열두 갈래의 길 중 어느 길인지 헷갈리는 것 같았다. 지도를 보고 다시 길을 찾다보니 아뿔싸, 벌써 6:42am 이었다. 그때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하필 이 시간에 하필 이 장소에 있을 사람들은 우리 투어 사람들밖에 없다는 생각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의 물음표는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다름아닌 한국말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가이드님에게 출석을 확인받고 그제서야 주위를 좀 둘러볼 수 있었다. 놀라운 건 다른 두 팀 빼고 모든 팀들이 제시간에 맞춰서 온 것이었다. 다들 어떻게 온 건지, 우리가 탔던 지하철만 멈춘 것인지, 군인들은 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국에 있을 땐 잘 못 느끼다가 외국에 나오면 유독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한국인의 의지는 외국인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DNS에 흐르는 K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사회적으로 '문화' 또는 '국민성' 따위로 불리는 것들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근면성실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 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란다.(물론 요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는 다시 잔다"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다보니 의지는 자연적으로 기본값으로 높게 세팅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의지가 혹사라는 탈을 쓰고 종종 나타나게 되는 게 그 예일 텐데, 투어에 모인 사람들을 보니 즐겁자고 하는 여행이 혹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씩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과 접촉을 하게 되는 건 처음이었는데, 느낌이 새로웠고 인상적인 통찰을 얻게 된 것 같았다.


나중에 가이드님이 말해줘서 알았는데, 며칠 후 개선문에서 중요한 국가 행사가 있는데 혹시나 모를 테러에 대비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 군인들까지 동원돼 개선문이 폐쇄되었던 것이었다. 예고 없이 하는 거라 가이드님도 많이 당황한 것 같아 보였는데, 그래서 버스도 이 안까지 들어오지 못해 폐쇄 구역 바깥에 정차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10분 정도 기다리자 투어를 신청한 모든 사람들이 모였고,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거 마냥 가이드님의 인솔에 따라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노르망디행 투어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몽마르트르 언덕을 수놓은 예술가의 '불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