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런던(7.5)
#유럽여행 3일차 (1)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동선상 지하철을 탔기 때문에 런던에서 버스를 타는 건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교과서 앞표지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그 빨간색 2층버스를 직접 타본다니, 이상하게 마음이 간질거렸다. 세인트폴 대성당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잠깐이라도 버스를 탄다는 사실이 내겐 중요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들고 서있으려니 이내 저 멀리서 동심을 자극하는 빨간색 런던 2층버스가 나타났고,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출근시간이 지난 시간대라 버스는 한가했고 기사님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2층버스를 탔으니 당연히 2층으로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몇 번 타보면서 알게 됐는데, 2층은 주로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런던 시민들은 대부분 1층을 이용했는데, 자리가 없거나 장거리를 가야 할 때 2층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덕분에 바라던 대로 제일 앞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런던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2층은 생각보다 더 높았고 시야가 높아지니까 거리를 걸어 다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멈출 때마다 울렁임이 좀 더 강하게 느껴져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같고 주변 가게와 사람들이 레고블록처럼 오밀조밀하게 보여 마치 레고 속 마을에 들어와 있는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갔을까, 별 거 아닌 거에도 오, 오, 하며 신나게 구경을 하다 보니 우리의 목적지에 다다랐다. St Paul's Cathedral (Stop SJ) 버스정류장에 내리자 길 건너 웅장한 모습의 세인트폴 대성당이 우리 시야를 가득 매웠다.
건물이 너무 커서 아무리 뒤로 물러나도 피사체가 프레임 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사진은 적당히 찍고 눈에 실컷 담았다. 성당 입구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인원수를 조절해서 들여보내고 있었는데 사고예방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우리는 타이밍이 잘 맞아서 3분 정도 대기하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기도하는 사람, 조용히 서서 관찰을 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오히려 바깥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자연스럽게 발소리에 신경 쓰며 조심조심 걷게 되었는데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에 발을 들인 사람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압도적인 규모에 고개를 젖혀야 비로소 보이는 천장, 세밀한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는 벽면은 정말이지 경외감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진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공간감,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아도 전혀 굴욕 없이 매끈한 세공기술에 입이 딱 벌어졌다. 가끔 이런 위대한 건축물을 볼 때면 사람의 능력으로 이게 진정 가능한 것인가, 사람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라는 호기심 어린 의문이 생긴다. 금장식이 화려하긴 하지만 고동색에 가까운 어두운 나무장식이 함께 배치되어 있어 과하지 않은 적당한 균형감이 느껴졌다. 오래 머물러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대체로 오랫동안 기도를 올렸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하다 보니 끝나고 나서는 뒷목이 한참 동안 뻐근했다.
한편으론,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경복궁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유산을 보며 감탄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고개를 젖히고 단청을 바라보던 모습, 순수한 눈망울로 가이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던 모습,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그 순간을 오래도록 추억하려는 모습 등. 그들이 그랬던 이유가 지금의 나와 비슷하겠지. 그런데 나는 경복궁을 언제 가봤더라? 때론 너무 익숙해서 그 가치를 잊고 지나가게 되는 것들이 많은데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경복궁을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런던 한복판에서 경복궁을 떠올리게 되다니 조금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이런 전개도 나쁘지 않았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성당을 한 바퀴 돌고 런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돔 갤러리로 이동하려는데, 그때 복도에 한 아이가 엎드려서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바닥에 거대한 금색 맨홀 뚜껑(?)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사이를 보고 있는 거였다. 처음엔 지하가 보이는 줄 알고 아이 옆에 가서 같이 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공기나 물이 지나다닐 수 있을만한 시멘트로 둘러싸인 얕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뭔가 있나 싶어 기웃거리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가던 길을 갔다.
그런데도 아이는 엎드려서 한참 동안 구멍 안을 쳐다봤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아이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순간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올랐다. 7살 여자아이 앨리스가 토끼굴을 타고 떨어져서 도착한 이상한 나라에서 겪는 그 모험 이야기 말이다. 어쩌면 이 아이는 구멍 안에서 자신의 토끼굴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 지인의 딸 앨리스를 위해 즉석에서 지어내어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수정해서 책으로 출판한 것인데, 루이스 캐럴은 저 아이처럼 어느 날 앨리스가 뭔가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고, 예를 들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영감은 스쳐 지나가는 아주 작은 단서에서 건져 올려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이 영국 꼬마 아가씨도 오늘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에 누군가에게 꽤 훌륭한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앨리스를 뒤로 하고, 약 500개의 계단을 올라 돔 갤러리로 이동했다. 17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었다. 직접 두 발로 올라가야 하기도 하고 올라가는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해서 그런지 계단 입구에서 직원이 건강상태나 컨디션이 괜찮은지 한 명 한 명 물어봤다. 호기롭게 웃어 보이며 여유로운 미소로 건강상태를 증명했는데 생각보다 계단은 더 좁고 가팔랐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만한 비좁은 복도가 나올 때는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드는 생각인데, 여행은 갈 수 있을 때, 하루라도 젊을 때 많이 다녀야겠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장소들은 대부분 세월이 빚어낸 곳들이 많은데 이런 곳들은 열에 아홉,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거나 고강도의 체력을 요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도 체력을 키우거나 담력을 기르는 건 나의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낫다. 기술과 사회의 발달로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성당 계단을 올라가며 바라보았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세인트폴 대성당을 나와 다음 목적지인 테이트 모던으로 가려고 했는데, 지도를 켜서 길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성당에서 나온 사람 중 열이면 열 다 같은 방향으로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했다.
테이트 모던은 런던에 있는 현대미술관으로, 산업혁명 때 들어선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추고 폐쇄하면서 방치된 곳을 테이트 재단에서 미술관으로 만든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건물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기둥인 '굴뚝'이었는데, 외관을 최대한 보존하기로 해서 화력발전소 때 쓰이던 굴뚝도 그대로 남아있는 거였다. 미술관에 굴뚝이라, 신선한 조합이었다. 미술관 건물을 새로 지었다면 쉽게 생각해내지 못했을 공식일 텐데, 있는 것에서 변형을 가하니까 재밌는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 창의성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유(有)에서 뉴(new)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평소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아 더 반가웠다. 현재의 시각에서 지나간 과거를 평가하고 지우는 게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존중해, 런던이란 도시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건물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게 영리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트 모던과 세인트폴 대성당은 템스강을 사이로 서로 마주 보고 있어 다리만 건너면 양쪽을 왕복할 수 있다. 그 둘을 이어주는 다리가 밀레니엄교인데, 끝에서 끝까지 5분 정도면 건너갈 수 있었다. 템스강은 흙탕물에 가까운 구릿빛 피부를 자랑했지만 그것마저도 쾌청한 하늘과 어우러져 아무렴 상관없었고, 걸을 때마다 높낮이가 달라져 시야가 바뀌니까 주위 풍광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미리 마트에서 구입한 생블루베리를 씹으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런던의 두 랜드마크를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다보니, 문득 서울에서 한강 다리를 건널 때가 생각이 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름 버킷리스트랍시고 적어본 게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서울에 있는 모든 다리를 걸어서 건너보는 거였다. 그러나 3년 동안 걸어서 건너 본 다리는 4개 남짓. 일단 차와 사람이 같은 높이에서 함께 다니니까 너무 시끄럽고, 매연도 많아서 숨쉬기 힘들고,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위협감이 들어 몸은 항상 움츠려진 채였다. 무엇보다 같은 풍광으로 1km나 되는 한강폭을 걸어서 건너기엔 너무, 지루했다. 낭만 한 번 챙겨보려다가 한강 자체가 싫어질 것 같아서 그만뒀다.
아쉽지만 한국에 돌아가서도 한강 다리를 건너는 프로젝트를 다시 할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지금의 밀레니엄교를, 쾌청한 하늘을, 구릿빛 피부의 템스강을 즐기기로 했다.
테이트 모던 내부는 다음 전시를 기획 중인지 작품이 빠진 자리도 꽤 보이고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작품들은 꽤 골라볼 수 있었다. 재밌었던 건, 원래 테이트 모던에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 몇 점 전시되어 있었는데 외부 대여 중이라 없었다.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19년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데이비드 호크니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곳에 전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미술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 작품'이란 수식어로 전시회를 엄청나게 홍보했었는데, 이 수식어에 혹해서 나도 가봤었다. 여기 이 자리에 있었던 작품을 서울에서 봤었을 거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런던으로 왔는데 작품은 서울로 가고, 참 아이러니했다. 만약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삶은 내가 원하는 데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그럼에도 그 또한 '나'라는, <우연히, 웨스 앤더슨>에서 봤던 웨스 앤더슨의 글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이제 나는 우연히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이해한다. 의도적으로 내가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과연 그것이 나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