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파리(7.9)
#유럽여행 7일차 (3)
베르사유 궁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반나절 정도 파리 외곽에 갔다 왔다고 도심 안으로 돌아오니 괜히 반가웠다. 돌아오는 RER 안에서 한숨 푹 잤더니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산뜻한 기분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1900년 세계 만국 박람회를 위해 건축되었던 오르세 기차역을 개축해서 만든 공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부에 들어서니, 과거 기차역이었을 때 플랫폼 공간에 붐볐을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중앙의 길쭉한 홀을 중심으로 양 옆에 전시실이 있고 계단식으로 된 중간통로엔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 모양새였다. 특히 천장의 유리 돔이 인상적이었는데, 유리온실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아늑한 느낌을 줬다. 전시 공간은 지상층, 중층, 상층 3개 층으로 나눠져 있으며, 과거 기차역으로 사용되었을 때 있었던 대형 도금 벽시계가 그 위치 그대로 걸려있어서, 이 공간이 기차역이었다는 걸 계속해서 상기시켰다.
여기서 제일 돋보였던 건, '조명'이었다. 자연채광과 인공조명을 조화롭게 배치해서 작품을 감상할 때 눈의 피로감을 줄여줬고, 색감이 중요한 작품의 경우엔 자연채광을 최소로 하고 주위를 암실처럼 만든 후 인공조명만 설치해 작품에의 몰입을 도와줬다. 같은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빛깔과 인상을 주듯이, 같은 작품이라도 주위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상과 느낌을 받게 된다는 걸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미술관이 아닌가 싶었다. 관람객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큐레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고, 작품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면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처음 유럽여행을 시작했던 영국에서는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볼 때 각자 둘러보기도 하고 같이 관람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봤었는데, 우리 가족에게 가장 편안한 관람 방법은 '따로 또 함께'였다. 한 구역 내에서 한 작품을 보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각자 돌아다니면서 보기도 하는 식으로 관람했다. 다음 구역으로 넘어갈 때는 같이 움직였는데, 국내에 있을 때는 전시회가 있으면 혼자 조용히 가서 작품을 집중해서 감상하는 게 편해서 혼자 다니는 버릇을 들였더니, 처음엔 누군가와 함께 작품을 보고 서로의 속도에 맞추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작품에 대해 함께 느낌이나 감상을 나누고 상대방의 속도에 맞추며 관람을 해보는 것도 꽤 재밌는 경험이었다. 나는 보지 못했던 걸 엄마나 오빠가 찾아내기도 하고, 내 생각과 정반대로 작품을 해석하기도 하는 걸 보면서 훨씬 생동감 있게 작품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 방식으로 쭉 전시회를 다녔다.
신기하게도, 이번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각자 제일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작품을 꼽을 수 있었다. 엄마는 에두아르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오빠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나는 에드가 드가의 <발레 수업>이었다.
지상층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엄마가 "어? 이 그림이 여기 있었구나."라며 한 작품 앞에 멈춰 섰다. 붉은색 벽을 배경으로 모자를 쓰고 붉은색 바지를 입은 작은 키의 소년 병사가 피리를 불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술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작품이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엄마는 앞뒤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여러 각도에서 작품을 세심하게 살폈다. 이윽고 "이 그림, 너무 좋다!"를 연발하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그림 속 소년보다 더 앳된 소녀처럼 보였다. 엄마는 그렇게 한참을 서서 봤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려 하자 엄마가 너무 아쉬워하길래, 그림 옆에 서서 그림 속 소년처럼 피리를 부는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줬다.
중층으로 올라가니 빈센트 반 고흐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시기와 주제 순으로 반 고흐의 작품들이 큐레이션 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동선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그중 반 고흐의 여러 자화상을 모아놓은 구역이 있었는데, 단연 푸른색의 배경이 눈에 띄는 잘 알려진 자화상 그림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언뜻 보고 지나가려 했는데 오빠가 그림을 보더니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차례를 기다려 제일 앞쪽까지 가더니 한참을 그림을 바라봤다.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봤다가, 측면에서 봤다가, 찡그리고 봤다가, 뚫어질 듯이 봤다가. 자연스럽게 옆에 서서 같이 봤는데 계속 보고 있으니 배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묘했다.
오빠가 그림 앞에 서서 완전히 빠져있는 모습은 처음 봤다. 다른 작품을 보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도 오빠는 반 고흐의 자화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결국 오빠도 <자화상>과 같이 찍어주고 나서야 다음 전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상층에 올라갔는데 이번엔 내 차례였다. 에드가 드가의 <발레수업>이 벽에 걸려있는데 첫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네, 였다. 아담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작은 도화지 안에 인물들이 오밀조밀 그려져 있었다. 중간에 서 있는 나이 많은 지도 교사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어린 발레리나들의 모습의 보면서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가 떠올랐는데, 자세 하나하나를 교정하는 게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고된 작업일지 묘하게 공감이 가면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또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이 한 명 한 명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세상 지루한 표정으로 등을 긁고 있는 아이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지도 교사는 화가 난 걸까, 그저 냉철하게 학생의 자세를 보고 있는 걸까? 저 뒤에 서있는 학부모들은 아이의 수업 참관에 매일 오는 걸까? 등 이런저런 호기심을 툭툭 던지며 생각하다 보니 이야기 세 개 정도는 뚝딱 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나도 <발레 수업> 앞에서 어색한 발레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낮에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피리 부는 소년>이 왜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고.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평생 살면서 책에서 봐도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직접 보니까 빛이 나더라. 그 그림이 나를 끌어당기면서 막 말을 거는데 뭐랄까, 그게 참 묘하더라고. 느낌이 희한했어. 그 많은 그림들 중에서 유일하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은 그림이었어.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어. 나도 묻고 싶어. 왜 그랬는지. 정말 왜 그랬을까?"
반 고흐의 <자화상>을 회상하던 오빠도,
"글쎄, 그냥 압도됐어. 바탕에 있는 파란색 문양도 파도의 물결처럼 오묘했고."
나도 생각해 보았다. 왜 많고 많은 작품들 중에서 <발레수업>에 끌렸는지. 음... 그냥, '좋았다.'
결국 우리가 각자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그냥, 끌렸다는 게 이유였다.
적지 않은 국내외 여러 미술관을 다니면서 내가 터득한 관람 방법이 있다면, 많은 작품들 중에 내 마음에 드는 작품 딱 하나만 찍어보는 거다. 두 개도 말고 딱 하나만. 그러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해당 미술관 이름만 들어도 그 작품이 함께 떠오르면서 그때 받았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샘물처럼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밝고 따뜻하기도, 어둡고 지저분하기도 한 감정들이 뒤섞여 들어오는데 분명한 건, 어떤 방향으로든 나를 한 발짝 나아가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긍정적인 무언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해당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작가에 대해 추가로 검색까지 해본다면 금상첨화. 딱 한 작품이기 때문에 부담도 없다. 까먹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다시 찾아보면 되니까.
무엇보다 내가 좋았던 그 느낌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 작품에 대한 타인의 평가나 감상,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 참고사항일 뿐이니까. 그냥 내가 좋으면 좋은 거다.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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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럼에도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나는 다양한 상상이 가능한 그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러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그림. 그래서 표정, 몸짓, 손짓, 눈이 향하는 방향과 같은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쓴 작품에 매료되는 경향이 있다. 뒷모습이라던지, 옆모습, 숨겨진 사람 등을 찾아내는 게 보물 찾기를 하듯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땐 사람이 없는 풍경화를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뒷모습이라도 좋으니 어떤 모습으로라도 사람이 한 명 이상 들어간 인물화를 좋아한다. 취향도 바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작품을 통해 '나'에 대해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이 또한 예술이 가진 능력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