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마(7.21)
#유럽여행 19일차 (2)
콜로세움에서 나와 포로로마노로 향했다. 처음엔 이름이 왜 이렇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포로(Foro)는 공공 광장, 로마노(Romano)는 로마사람이란 뜻으로, 포로로마노는 로마사람들의 광장이란 뜻이었다.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로마라는 도시지층의 가장 아랫단에 위치하는 중심지. 지금은 콜로세움과 더불어 로마를 찾는 전 세계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유적지 중 한 곳이 되었다.
콜로세움 바로 옆이라 이어서 오다 보니 하필 제일 더운 시간대에 오게 됐다. 정오부터 오후 두 시까지 포로로마노 위에 뜬 태양은 생명체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사방이 뚫린 지면 위로 빛을 맹렬하게 퍼부었고, 우린 양산을 목숨줄처럼 붙잡았다. 안 쓴다던 오빠도 어느새 양산이 만들어내는 그늘 안으로 슬그머니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래도 유적지를 둘러보는 건 즐거웠는데,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상상하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걷는 경험은 내 마음속에 또 하나의 지층을 만들어냈다.
콜로세움에서 포로로마노로 이어지는 성스러운 길이란 뜻의 '비아 사크라'를 따라 올라가니 티투스 개선문이 나왔다. 조각이 바로 어제 깎은 듯 선명하고 또렷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개선 퍼레이드를 벌였던 거리라는데 그 당시 군중들의 환호소리가 육중한 개선문을 통과해 귀에 들리는 듯했다.
고대 건축물의 잔해가 흉물스럽게 보인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내 눈엔 만들어지고 있는 레고처럼 보였다. 기둥을 세우고 벽을 쌓고 이제 중간정도 진행된 레고 도시. 언뜻 보면 삭막해 보일 수 있지만 이 고대 도시가 고요히 품고 있을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하니 오히려 생기가 느껴졌다. 그 안에 숨겨진 보석을 찾는 사람의 마음으로 구석구석 눈길을 두었다.
팔레르모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포로로마노는 상상하기에 좀 더 좋았다. 신전, 집무실, 재판소, 상점 등 고대 로마 도시의 근간을 이루었을 주요 거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콜로세움에서부터 따라온 아치모양이 다수 눈에 띄었다. 그새 친해졌다고 고대 로마 건축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아치가 포로로마노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는 게 반가웠다.
유적지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포로로마노에서 처음으로 아, 나 유적지 좋아하는구나, 를 느꼈다. 어느 골목, 뛰어가는 아이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고 푸른빛의 눈과 고아한 입매를 가진 소녀의 하늘거리는 옷자락이 벽 뒤로 숨었다. 어릴 때 혼자 흥얼거렸던 멜로디, 내 멋대로 작곡해 본 악보, 쓰단 만 소설이 퍼즐이 맞춰지듯 포로 로마노와 연결됐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 상상하는 버릇이 어디서 왔나 싶었는데 꼬꼬마 시절부터 숨 쉬듯 이어져온 습관이었다는 걸 여기서 알게 됐다.
여러모로 강렬했던 포로로마노를 떠나 버스를 타고 진실의 입으로 이동했다. 아침부터 뙤약볕 아래에서 장시간 서있었더니 살짝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정수리에 손을 얹어보니 여전히 뜨거웠다. 두 정거장 정도 지나자 버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고 내부 공기는 에어컨이 무색할 만큼 후끈해졌다. 목적지는 사람들의 폰만 슬쩍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들 진실의 입을 화면 가득히 띄워놓고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을지 재잘대고 있었으니까.
버스는 코너를 돌아 쭉 뻗은 도로에 진입했고, 옆에는 음각으로 움푹하게 들어간 낮은 지형이 펼쳐졌다. 처음엔 강변도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카르쿠스 막시무스>, 전차 시합을 했던 경기장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강물이 마른 게 아니었다. 로마는 눈만 돌리면 유적지가 우수수 쏟아지는 재밌는 도시구나, 감탄과 놀라움 그리고 나의 빈약한 상상력에 웃음이 났다.
진실의 입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유명해진 장소인데 7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니, 잘 만든 콘텐츠의 힘은 대단하다.
곱슬머리에 수염이 달린 사람이 그려진 이 거대한 돌은 고대 맨홀 뚜껑으로 사용되었을 거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맨홀 뚜껑이 아닐까. 이름에 얽힌 전설은 더 흥미로운데, 입에 손을 넣으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의 손은 물어버린다고 한다. 지금은 입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는 게 대표 포즈로 자리 잡았는데 다들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당당한 걸까, 전설을 믿지 않아서 의연한 걸까.
30분을 기다려 우리 차례가 왔다. 진실의 입 안에 손을 넣는데 은근히 무서웠다. 뭔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안에서 내 손을 콱 물어버릴 것만 같았다. 인간의 상상력은 달에도 갈 수 있게 해 주지만 때론 불필요한 두려움도 함께 준다. 나중에 알았는데 중세 때는 진실을 말하더라도 심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리 진실의 입 뒤에 대기한 사람이 손을 자르도록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불필요한 두려움은 아니었나 싶고.. 하하.
차갑지만 부드러운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입구 부분 돌이 반질반질했다. 순간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봤던 신라의 미소가 떠올랐다. 은은하게 온화함을 뿜어내는 신라의 미소와는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진실의 입은 벽사(辟邪)의 느낌이 강했다. 로마에서 경주를 불러내는 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아직 해가 떠있었지만 오늘 계획했던 일정이 모두 끝난 우린 숙소로 일찍 돌아가 쉬기로 했다. 지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데 뜬금없이 한인마켓 간판이 튀어나왔다. 앞서 거쳐온 도시들에서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뭐라고 오랜만에 보는 한국어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로마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표지판이 있다니! 하마터면 배운 적 없는 이탈리아어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믿을 뻔했다.
숙소에 와서 보니 셋다 목까지 벌겋게 익었다. 급한 대로 시원한 음료 페트병을 피부에 대고 진정시켰다. 열감이 서서히 피부에서 빠져나갔다.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샐러드, 요거트, 머핀, 납작복숭아를 먹고 그대로 쓰러져 2시간을 잤다. 로마의 햇살을 정수리에 머금고 푹 익은 과일들의 달콤한 낮잠이었다.
밤 8시 반, 오빠가 로마 3대 젤라또 중 한 곳인 지올리띠를 가보고 싶다고 보채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비몽사몽으로 따라나섰다. 낮에 먹은 더위가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걸으려니 체력 소모가 3배 이상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젤라또였지만 이게 무슨 맛인지, 맛있는 건지 맛없는 건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보통 음식 사진을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때의 맛과 향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젤라또는 코가 막혔던 사람처럼 식감도, 향도, 맛도 그 어느 것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나른하고 속이 울렁거렸던 더위의 맛이 알싸하게 입안 가득 퍼진다. 이 또한 추억이라면 추억이겠지.
로마의 밤거리를 잠깐 걷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 밤색눈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고개를 돌려 피하지 않고 나를 향해 빙그레 웃어줬다. 그냥 의례적인 웃음이 아니라 눈과 입이 함께 휘어지는 진심이 담긴 웃음이었다. 처음엔 눈이 마주쳤을 때 외국인들이 웃어주는 게 이상하고 당황스러워서 황급하게 눈을 피했다. 근데 유럽에선 한두 사람만 우연히 그러는 게 아니라 눈이 마주치면 웃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인 것 같았다.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베니스에서도, 피렌체와 밀라노에서도. 그래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때부턴 나도 그냥 웃었다.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서도 서로 기쁜 하루가 되기를 빌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처음 보는 밤색눈의 아주머니와 나눈 3초간의 짧은 눈맞춤은 멍해져 있던 내 머릿속에 시원한 샛바람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악몽으로 끝날 뻔한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이 덕분에 산뜻하게 마무리됐다. 더위로 인한 컨디션 난조도 서서히 회복됐다. 체력이 좋다고 생각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유럽산 더위는 지독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숙소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