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감성 교육, 국어 문학수업에 적용하기

by 이수빈
<프랑스 감성 교육>

프랑스인이 와인과 음식을 대하는 독특한 태도는 어릴 때부터 술과 음식을 ‘배워서’ 먹고 마시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지금도 미각을 교육한다. 이는 우리나라 EBS에서 소개한 적도 있다. 프랑스의 미각 교육은 선생님이 어린 학생들에게 사과, 오렌지 등 과일을 손으로 천천히 만져보고 입으로도 천천히 깨물어 보게 한 다음 그 느낌을 말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세상의 거의 모든 언어에는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지만 맛을 직접 표현하는 단어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어떤 드레스를 보여주면서 “무슨 색이야?”라고 물어보면, “빨간색”같이 색에 대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살구가 무슨 맛이야?”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살구 맛”이라고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맛을 묘사하려면 비유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때 대부분 시적 묘사가 동원된다. 프랑스 아이들은 이 수업을 통해서 오이의 맛을 ‘마치 시골의 숲 공기를 이빨로 굴리는 것 같다’라든지, 토마토의 맛을 ‘태양과 대지의 맛을 믹서기에 갈아 넣은 것 같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한마디로 설명되지 않는 냄새, 맛 등에 대한 감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 역시 요리를 통해서 배우는 프랑스 감성 교육의 장점일 것이다.
-조승연, <시크:하다>(2018) p.75-76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국어 문학수업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식자재를 직접 만져보고 먹어보면서 그 맛을 표현하는 프랑스 아이들처럼 문학, 특히 시 분야에서 이러한 형태를 하나의 수업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시 수업은 유명한 시인의 시를 학자들이 해석해 놓은 풀이를 외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의 내용을 해부하고 시험에 나오는 온갖 문학적 기법들을 외우기에 여념이 없다. 시의 의미를 음미하고 경험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라고 하면 어떤 게 떠오르는가? 시가 누운 뫼 산(山)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 3음보를 통한 운율 형성, 수미상관 구조, 시적 허용?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중·고등학교 때 한가닥 했던 모범생이었네요.


그런데 정말 산에 꽃이 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꽃보단 폰과 더 친한 게 요즘 학생들의 삶이고, 그래서 추상적 관념의 뭉뚱그려진 꽃이 연상될 수도 있겠지만, 산에 피는 꽃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핀다. 생김새도, 피는 시기도, 색깔도, 향기도. 이러한 꽃들은 한 번에 폈다가 한 번에 지지 않는다. 누군가 필 때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 질 때 누군가는 핀다. 그렇다고 꽃은 누가 먼저 피고 누가 나중에 핀다고 불평하거나 시샘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피어나는 시기에 맞춰서 피어날 뿐이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니까. 사람도 똑같다. 누군가는 원하는 바를 일찍 성취하고 누군가는 조금 천천히 성취한다. 이유는 없다. 각자의 시기가 있을 뿐.


이런 내용을 대학교에 가서 처음 배웠을 때,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산유화>는 그저 3음보와 수미상관과 시적 허용으로 이루어진 시가 아니었다. 자연의 섭리, 그와 더불어 인간사회에 적용되는 법칙에 대해 아주 심오하게 노래한 작품이었다. 단순히 '존재의 근원적 고독'이라는 한 줄의 주제로 말해질 수 있는 시가 아니었다. 한 구절 한 구절에 가슴이 뛰었고, 마치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고등학생 때까지 받아온 문학 교육이란 외우는 게 다였으니까, 이렇게 찬찬히 작품을 읽고 사유를 하는 게 마치 새로운 호흡법을 익히는 것처럼 낯설고도 새로웠다. 비록 교수님이 꽃을 관찰한 대리 경험으로 이루어진 강의였지만, 감성 교육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느낄 만큼 생생하고 강렬했다.


솔직히 나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문학을 '외우는' 시대가 아니라 '즐기는' 시대로 바뀌어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심지어 남몰래 살짝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받았던 교육에서는 문학이 '외우는' 과목이었는데 '즐기는' 시대에서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할까 봐. 그래서 누군가에게 시를 가르칠 때 은연중에 내가 받았던 교육의 잔해를 강요하게 될까 봐. 그러나 대학교 4학년 때 교육실습생 신분으로 나간 학교에서는 여전히 내가 받았던 그대로 시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참고서의 언어를 옮기는 형태의 수업이 여전히 실시되고 있었다. 내가 학교를 떠나 있던 4년 동안 학교는 바뀐 게 없었고, 시는 여전히 해부당하길 기다리고 있는 표본실의 청구개리였다.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프랑스에서 감성 교육이 여전히 이어져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학생들이 삶을 좀 더 풍요롭고 기쁘게 살아가기를 바라서일 것이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배우면서 각자 한 달 동안 관찰한 꽃 이야기를 하고, 백석의 <국수>를 배우면서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국수를 맛보며 표현하는 수업, 생각만 해도 간질간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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