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6살이고, 지난달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둘째는 3살이고, 평범한 동네 어린이집을 다닌다.
정말 어린 나이 때부터 부자가 되고 싶었다. 사실, 남들이 생각하는 사업을 하는 부자. 건물주에 외제차를 보유하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그런 반질반질한 부자가 아니라, 그저 돈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사는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의 인상 좋은 아재 스런 부자가 되고 싶었다.
아마 9살 즈음되었을 때의 기억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겨울이 되어 집에서 한 두 달 정도 일을 못하시고 쉬셨다. 그 당시에 너무 추운 겨울에는 건설현장에서는 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우리는 어떻게 먹고살지? 아빠가 돈을 안 버는데...?' 문뜩 이런 생각을 했었다. 차마 부모님께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할머니까지 함께 사는 우리 다섯 가족의 형편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고, 외벌이로 아버지만 일을 하셨기에 더 그런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리고, 그 당시 패밀리, 겜보이 등 게임기가 출시되기 시작했는데, 왜 나는 게임기를 못 사지?? 옆집보다 우리가 왜 더 못 사는 것 같지...?라는 의문을 갖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다가 못을 밟아서 작업화 바닥이 뚫리면서 발바닥에 못자국의 구멍이 났다. 병원도 가지 않은 채, 집에서 젓가락을 불로 달구어서 그 구멍을 봉합(?)하고 붕대로 감고 다음날 다시 출근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인가 병원은 비싼 곳, 웬만하면 가지 않는 게 좋은 곳으로 느끼고 살아왔다. 여전히 지금도 그 장면이 진짜 기억인지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잔상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 고학년,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정말 심각한 사춘기를 겪었다. 또래 학우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저런 가방과 신발을 못 사지? 나도 사고 싶은데? 난 공부도 쟤네들보다 잘하는데, 못살고 있는 거 같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정말 자주 많이 했던 것 같다. 불량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속은 완전히 배배 꼬이고 크고 작은 불만이 계속 쌓여갔다. 세상에 대한 불만,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
등등.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는 '부자'에 대한 환상과 집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키워나갔다. 부자가 되면, 내가 가진 결핍과 불안감, 걱정이 해결되고 아주 예쁜 배우자와 행복한 생활만 가득할 것 같았다.
그리고,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 중에는 유복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란 친구들의 그 여유 있는 자세와 마인드가 너무나 샘나기도 했다. 그들은 군대도 편하고 좋은 데로 발령이 났다. 왜였을까...?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은연중에 분명 드러났을 것이다. 나의 낮은 자존감과 여유 없는 마인드.
밤새 술을 마시고 피시방에서 한바탕 즐기고 나면, 어느덧 해가 뜰락 말락 한 그 시각.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녀석이 가끔 부러웠다. 아니 사실 놀라웠다. 나는 한 시간을 더 기다려 1호선 첫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이 걸려 집에 돌아갔다. 나는 택시비 2만 원을 벌은 셈 치면서, 정신승리를 했었다. 20대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괜찮았다.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근검절약하고 검소하다고 생각하면서.
대학교 졸업 후, 다들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하고 직장인으로서 연애도 하기 시작할 무렵. 나는 문뜩 깨달았다. 그 친구들과의 경제적인 수준 차이는 더 현격하게 벌어져 있었다. 집안이 괜찮은 친구들의 부모님은 이미 벌써 친구들 명의로 집을 장만해 놓은 것을 알아챘을 때,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력감, 절망감이 정말 많이 들었다. 부는 세습되는 것이구나. 정말 크게 느껴졌다.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해맑게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인 10대, 20대를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살았던 그 당시의 내가 부끄럽고, 안쓰럽고, 창피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다시 돌아가면, 정말 마음껏 알바도 하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연애도 할 것 같다. 어차피 부자는 노력으로 안된다는 것을 지금은 알기에.
원하던 대기업 직장에 입사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런데, 그 첫 직장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마친 후, 팀 발령이 났는데,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에 나를 발령을 내주셨다. 서류, 면접, 인턴면접, 최종 면접까지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기피 부서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인사팀에서는 생각하셨나 보다. 6개월 다니다가 퇴사를 질러버렸다. 두 번째 직장, 세 번째 직장에서도 이런저런 말 못 할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30살 가진 것 하나 없는 무직자가 되어 있었다.
다들 잘 참고 다니는 것 같은 직장생활이 나에겐 정말 죽을 것 같이 숨이 막혔고, '매일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한번 드니, 회사에 온전히 마음을 다해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든다.
- 1부 끝 -
지금은 나름 잘 살고 있다. 현재의 내 삶을 부러워하는 동생들도 있고, 새삼 지난 10년 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