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홀로 일어나 라면 먹고 글을 쓴다. 아이가 밤에 깼다. 이틀 전부터 코가 막히더니 오늘은 열이 나서 유치원에도 못 갔다. 저녁에 먹은 것을 모두 게워 내고 깨어 울었다. 튼튼한 아인데, 며칠 전 독감 주사도 잘 맞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다독여 재워도 안 잔다. 엄마를 찾아 엄마가 다행히 재웠다.
이 주일 전에 눈을 다쳤다. 왼쪽 눈을 뜬 채 수건으로 닦았다. 저쪽에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아이가 내 앞에서 갑자기 아빠 하고 부르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아이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대체 휴일이어서 병원도 못 가고 하루를 그냥 보냈다. 다음날 찾은 안과. 각막이 많이 찢어졌다고 했다. 먹는 약과 안약을 처방받았다.
아프고 뿌연 것은 많이 가셨지만 상이 겹쳐 보이는 증세는 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주가 가고 두 주가 가도 여전히 그렇다. 눈 회복은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한댔다. 노안까지 와서 더 그럴 수도. 눈이 제 구실을 못해 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눈이 소중하다는 걸 다시 깨닫는 시간들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사고로 왼쪽 눈을 잃으셨다. 그렇게 눈 하나로 살아오신 것을 어머니도 모르셨다. 그걸 알게 된 날 자식들과 어머니는 놀랐다. 불쌍한 사람 같으니라고. 어머니는 내 무릎을 잡고 우셨다. 아버지는 그날 밤 편안히 주무셨을 것이다. 마음의 짐을 눈과 함께 내려놓으셨을 것이다.
나도 사고로 왼쪽 눈을 잃을 뻔했다. 대학교 삼 학년 때 교통사고가 나서 코가 부러지고 안경이 깨졌다. 출혈이 너무 심해서 비가 많이 온 그날 머리와 얼굴, 옷가지가 모두 붉게 물들었다. 마침 지나가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용감하게 나를 안고 응급실로 갔다. 알고 보니 같은 학과 연극반 선배들이었다. 고마웠다.
아이 왼쪽 눈에 다래끼가 났다. 유치원 들어가기 한 달 전쯤 생겼었는데 낫는가 싶더니 계속 재발한다. 소아과선 별로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놔두었다가 결국엔 안과를 찾았다. 먹는 약과 연고를 받아왔다. 많이 나아져서 이젠 연고 바르는 걸 중단했다. 그러고 보니 왼쪽 눈과 얽힌 게 아버지, 나, 아들 이렇게 삼대이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력으로 퍽 불편했지만 글은 더 많이 나왔다. 뭔가 부족하고 아래로 꺼진 것이 있으니 생각의 물이 더 잘 고이는 것 같다. 그래도 잠은 좀 잤어야 했는데 너무 못 잤다. 그래서 회복이 더딘 것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가 아파 잠에서 깬 나는 지금 이렇게 홀로 라면 먹은 배를 꺼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