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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Nov 28. 2021

두 번의 결혼식

Elizabeth

프롤로그


같은 사람과 두 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결혼식이 아니라 같은 시기, 다른 장소에서 같은 사람과 두 번의 결혼식을. 한 번은 뭍에서, 다른 한 번은 물에서. 다른 나라, 다른 언어로.


뭍에서


아내와 나는 국적이 달랐다. 같은 한국인의 피를 타고 태어났지만 자란 곳이 달랐다. 나는 한국에서, 아내는 영국에서. 나는 영국으로 유학을 갔고, 아내는 한국으로 파견을 왔다. 유학 시절 만난 목사님이 두 사람을 맺어 주셨다. 그때 나는 한국으로 들어왔고, 아내는 한국을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 사랑이 둘의 운명을 한데 묶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하객은 한국인과 영국인. 한국어 사회자와 영어 사회자, 둘 다 필요했다. 나의 영국대사관 친구가 한국어 사회를, 아내의 영국문화원 친구가 영어 사회를 보았다. 식장은 나의 모교 교우회관, 주례는 나의 지도교수님. 두 언어로 진행되는 예식이 복잡하여 식전 연습이 필요했지만 지도교수님은 웃으시며 가볍게 거절, 결국 중간에 실수를 하셨다. 외교관 친구의 기지로 위기 모면. 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길목에서 이제 우리만의 세상이 열리는 줄. 그러나 또 한 번의 결혼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에서


아내의 터전은 영국. 비록 친척은 한국에 있었지만 부모님의 지인들과 아내의 어릴  친구들은 모두 영국에. 다시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양복과 드레스를 입었는데 오히려 영국에 둘이 한복을 입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육지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영국에서는 물에 배를 띄우고 식을 진행했다.  배의 이름이 엘리자베스. 영국 유학 시절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은 연락을 받으시고 술친구들을 여럿 데려오셨다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축하 노래를 들으시고는 축의금만 내려놓으시고 친구들과 조용히 자취를 감추셨다. 보이 조지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크기만  배가 우리를 담고 템스 강을 유유히 흘렀다. 나는 아내의 어릴  친구들과  남편들,  아이들,  추억들을 만나며 앞으로   번째 고향이  그곳을, 영국을 다시금 천천히 느끼고 있었다.


에필로그


영국인과, 한국인과 결혼할 줄은 몰랐다. 두 번의 결혼식을 할 줄 몰랐다. 두 사람 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에서 번거로움은 필수가 되었다. 그게 두 사람의 인생을 더 설레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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