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_ 1부

장면 1

by 실마리

Self


너는 너 자신을 아는가

너와, 네 발 밑의 흙덩이가 무엇이 다른가

너 자신을 알라

그것이 모든 것의 시초요, 모든 것의 끝이니라



[ 1부 ]




# 국문과 사무실1



-공고-

연구 지원 과제 선정 결과

주민등록번호

XXXXXX-XXXXXXX

비밀번호

XXXXXX

... ... ...

아쉽게도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귀하의 연구는 훌륭한 것으... ... ... .


모니터를 바라보는 정수의 얼굴은 이내 일그러지고 말았다.


또로록 또로록 또로로록.

//여보세요? 어떻게 됐어?

//안 됐어...

//그럼 이번에도 또 자연언어처리 쪽만 다 된 거야.

//다는 아니고 거의 대부분이지 뭐.

//그게 그거지.

//...

//너무 낙담하지 마. 그런데 지금 어디야? 잠깐 볼까?

//아니, 됐어. 나중에 전화할께.

뚝.


//도대체 언제부터 순수 언어이론 쪽은 찬밥 신세야. 순수 이론적인 연구가 바탕이 된 다음에야 자연언어처리든 뭐든 가능한 거 아니야?

//누가 뭐래? 그게 대세인 걸 어떻게 해! 기분 풀어.


옆자리에 앉은 재석이가 웃는 얼굴로 정수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젠 기본 마인드를 바꿔야 되는 거 아니야? 언어는 그대로인데 접근 방식이 달라진 거지. 안 그래? 이젠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핫핫.


재석이의 말에 정수가 맞받아치려다 이내 몸을 깊숙이 의자에 파묻고 만다.


//접근 방식이라... 접근 방식...

//기분 전환 겸 이따 강의 끝나고 맥주 한 잔 어때? 오늘 저녁 6시쯤에 카이저 호프에서 녀석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이번 대선에 대해 얘기도 하구 말이야. 좋지?

//오늘은 강윤명 교수님이랑 스터디 있는 날이잖아!

//아 참, 그렇군. 그럼 다음 기회로 미루자구. 친구들한테는 내가 사정 이야기 해 줄께.


서기 20XX년 12월 4일 어느 오후. 퍽 쌀쌀해진 날씨다. 그런 날씨만큼이나 정수의 마음은 쓸쓸했다.


/기본 마인드를 바꾸라?!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언어에 대한 연구는 순수 이론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 모토가 바뀌게 되었다. 그동안 자연언어는 주로 순수 언어학적인 차원에서 연구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연구 풍토는 이미 언어학이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게 된 100여 년 전부터 있어 왔던 하나의 전통이다. 그간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컴퓨터가 인간 사고의 상당 부분을 대신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고, 언어 연구의 주제는 인간의 뇌에 어떻게 언어가 표상되어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급기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문법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으로 그 무게 중심이 옮아가게 된 것이다. 정수는 대학원 강의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