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죽과 엄마

소설

by 실마리

손이 기억하는 대로 현관문을 열었다.

묵직하고 미동 없는 공기가 먼저 밀려왔다.


먹물 같은 거실의 어둠 속, 작고 희미한 전등 아래

시든 상추처럼 어머니가 누워 있었다.

"오늘도 아무것도 안 드셨어?"

속상함은 뽀족한 잔소리가 되어 먼저 나온다.


척추 골절을 기적처럼 버텨낸 여든의 몸은

모진 감기 앞에서 다시 맥없이 허물어졌다.


쌀을 안치고, 참기름 한 방울과 식초를 더한 간장 종지를 낸다.

흰죽이 끓으며 내뿜는 냄새가

어둑하고 정체된 거실의 공기를 조용히 물들인다.


탁자에 어머니를 부축해 앉히고 수저를 쥐여 드렸다.

화장실 다녀오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고요한 거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딸이 끓여 낸 흰죽을 삼키며,

팔십 노모는 오래전 떠난 당신의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입술을 축이는 것은 흰죽의 온기였으나,

그녀가 퍼 올리는 것은 까마득한 기억이었다.


자식은 어른이 되고, 부모는 아이가 된다.

나는 어설픈 어른이 되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나의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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