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몽골, 명나라, 청나라, 고려, 조선, 비주류의 반란
사상이 경직되어 교조가 되고, 이로 인한 사상적 공백 상태에 이르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상적 공백 상태를 깨트리는 것은 새로운 창조밖에 없습니다. 아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것.
그러나 창조와 혁신은 중심부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중심부는 기존의 시스템을 지키기에 여력이 없습니다.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변부는 다릅니다. 지킬 것이 없습니다. 그만큼 여유가 있고, 낭만이 있습니다. 이런 여유와 낭만이 창조와 혁신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짜인 틀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언제 혁신하고, 언제 창조할 수 있겠습니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든, 산책을 하든, 여유를 가지고 사색할 때 새로운 생각이 날 수 있고, 내가 가졌던 생각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창조와 혁신, 그로 인한 새로움은 주변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제국을 세운 춘추시대 진나라부터 보겠습니다. 진나라는 처음에 제후국이 아니었습니다.(제후국은 천자의 형제들이 땅을 봉분 받아서 왕을 칭하고, 천자를 모시면서 지내는 봉건 제도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혈연관계가 옅어지고, 그만큼 충성심도 낮아집니다.) 진나라는 천자와 혈연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에 기회가 찾아옵니다. 당시 천자가 권위가 몰락하여 이민족의 침략으로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때 모든 제후국은 천자를 외면했습니다. 그때 진나라가 홀로 나서서 천자를 호위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진나라는 제후국에 봉해졌고, 땅도 하사받게 됩니다. 이렇게 진나라는 변방에서 시작해서 춘추전국시대 마지막 출연자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땅은 이민족이 점령한 땅이라서 실효적 지배권은 없었습니다. 땅도 척박한 서쪽 변방이었습니다. 개간할 땅도 많지 않고, 당연히 백성들도 적었습니다. 당연히 진나라는 가진 것이 거의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진나라는 척박한 땅에서 이민족(서융)을 몰아내면서 영토를 차근차근 넓혀갔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진나라 군대는 강해졌습니다.
또한 땅이 척박하니 개간사업을 우선시했습니다. 땅을 개간하고, 사람을 불러들이려고 힘썼습니다. 그렇게 백성들이 차츰차츰 늘어나자, 진나라는 강한 군대와 많은 군량을 확보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백성을 불러들이면서 수많은 인재들도 불러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상앙, 여불위, 범저, 장의 등입니다. 당시에는 선진적인 법가와 술사로 무장한 인재들이 진나라에서 관리로 등용된 것입니다. 진나라는 강력한 군대와, 풍부한 군량, 그리고 선진적인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제후국들을 하나씩 장악해나갔고, 결국 중국을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진나라가 가진 것이 없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진나라가 최후의 승자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지구상의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몽골(원나라), 그들의 시작은 중원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변방, 몽골 초원이었습니다. 몽골 초원의 민족들은 기동성이 강한 유목민족으로써, 그들끼리 약탈하고, 전쟁하며, 떠돌아 살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핍박을 받던 칭기즈칸이 복수를 위해 부족 간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몽골민족들의 통일이 시작됩니다. 칭기즈칸은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는 금나라를 무너뜨리면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변방 끝에서 시작한 몽골민족은 유라시아 대륙 거의 전체를 점령하여, 실크로드를 잇게 만들었고 동서양의 문화와 상업의 교류가 시작되는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또한 출신이 비천했습니다. 소작농의 막내아들이었고, 가난과 기근으로 고아가 되었습니다. 당시 도적의 무리인 홍건적에 들어가서, 두목이 됩니다. 그렇게 홍건적의 3대 세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러나 주원장은 3대 무리 중 최약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2명의 강한 홍건적 두목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자신의 힘을 비축했고, 결국 최후에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통일한 만주족의 나라 청나라를 봅시다. 청나라는 지금의 중국의 국경선의 대부분을 확정 지은 나라입니다. 강력한 군사력과 막대한 부를 과시했던 중국의 마지막 제국이었습니다. 그런 청나라의 시작 또한 미비했습니다. 만주족이라 불리는 그들의 원래 이름은 여진족이었습니다. 북방민족들 가운데, 몽골족이 있고, 거란족이 있습니다. 몽골고원의 칸들에게 거란족이나 여진족은 야만인이었습니다. 또 여진족은 몽골고원의 주인이 아닌, 주변인 거란족에게도 '하등민' 취급을 받던 민족입니다.
그런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운 중원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여진족, 즉 만주족은 몽골의 유목민 같은 기동성이 없고, 중원의 한족과 같은 인구와 농업생산력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상당히 껄끄러운 조선을 접하고 있어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만주의 척박한 환경에서 몽골의 유목민족과 중원의 농경민족을 결합한 사회체제를 유지시켰습니다. 만주족의 척박함. 항상 분쟁과 긴장 속에서 살았던 역사, 그러나 주변 문화를 수용하며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개척했던 만주족은 드디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민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나라를 세웠던 세력들은 모두 중심부 엘리트가 아니라, 변방의 촌놈들이었습니다. 진나라의 시작 자체가 중원의 끝, 아무것도 없는 벽촌이었고, 원나라를 세운 몽골은 약탈과 전쟁을 일삼던 문명을 이루지 못하던 민족이었습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사회적으로도 최하층이었고, 그가 모은 홍건적 세력 중에서도 최약체여서 다른 홍건적 두목들이 경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마지막 제국인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 또한 척박한 땅과 환경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던 민족입니다. 그들은 중심부 엘리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이 없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탐욕도, 미련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변방의 촌놈들이었기 때문에 변방에서 중심부로 가는 그 과정 자체가 그들에게 성장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변방에 있는 모든 민족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현실에 타협하기도 하고, 다른 가안 민족에 동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인의식'을 버리지 않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쳤던 위인들, 그 위인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든 시련과 억압을 헤쳐나가니, 당연히 실력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시련과 억압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힘, 그 힘의 바탕에는 그들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킬 것이 없고, 몸이 가벼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도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없어진 많은 주변부 민족들과 다른 한가지 차이는 '주인의식'입니다.
중국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려를 세운 것은 왕건이지만, 신라가 망할 때 후삼국의 판을 짜고, 그 판을 키운 것은 쫓겨난 왕자 출신의 궁예였습니다. 물론 왕건도 신라 귀족과는 거리가 먼, 변두리(개성)의 상인의 아들이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아주 먼 변방, 여진족과 어울려사는 함경도 끝자락이었습니다. 당시 고려의 중심부인 개성 세력들에서 차별받던 서경(평양) 출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경 세력들에게도 촌놈인, 벽촌이 함경도입니다. 그곳에서 터를 잡아 한평생 전쟁터만 돌아다니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합니다.
모든 창조는 변방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혁신은 주변부에서 일어납니다. 창조와 혁신 없이 발전은 없습니다. 창조와 혁신이 없다면 퇴보와 몰락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중심부에 있습니까? 주변부에 있습니까? 만약 주변부에 있다면 여러분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동화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새로운 창조와 혁신, 그로 인한 인생의 성공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차별받는 변두리에서, 꽃길이 아닌 진흙길로 막힌 주변부에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이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낙담할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인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창조와 혁신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고칠 수 있다. 마음으로 번민을 느끼고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고서야 분발하며, 낯빛으로 분명하게 나타나고 음성으로 터져 나온 후에야 깨닫게 된다." 《맹자》 <고자>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