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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Jan 13. 2019

14. 시기와 때를 기다린다

지연과 회피, 그리고 적극적 개입

춘추오패라고 불리는 왕들이 있습니다. 춘추시대 때  제후국임에도 천자를 제치고, 천하를  호령했던 왕이기에 그렇게 불립니다. 그러나 춘추오패의 왕들은 처음부터 위세를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시기와 때를 기다리고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제나라 정사가 문란해져서 태자였던 환공은 목숨이 위태해졌습니다. 그래서 타국으로 망명하였고 이후에 귀국하여 형을 제치고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진나라 문공도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타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망명생활은 19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후에 문공이 왕으로 즉위했을 때는 62세였습니다. 초장왕은 즉위 후 3년간을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에 간언하는 신하들을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거와 소종의 간언으로 깨우치고, 함께 놀며 아첨하던 신하들을 모두 내쫓았습니다. 이후에 정사를 바로잡아 패자가 되었습니다. 오왕 부차는 월나라에 복수하려고 와신(臥薪) 했고,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복수하려고 상담(嘗膽) 했습니다.(와신상담의 유래) 이처럼 춘추시대 패자들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으며, 때에 맞춰 행동할 때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진문공처럼  19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초한지 최후의 승리자, 유방도 시기와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 수도인 함양에 도착했습니다. 함양의 금은보화와 수천의 궁녀들에 유방은 완전히 혹했습니다. 그러나 장량의 조언으로 그것들을 모두 내버려 두고, 항우가 후에 나타나자 모두 그에게  줬습니다. 그리고는 함곡관 너머 척박한 땅으로 넘어갔으며, 함곡관에서 넘어오는 다리조차 끊어버렸습니다. 아직은 항우와 싸울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재물의 유혹도, 권력의 유혹에 앞에서도 자제력을 발휘하여 훗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황건적 군벌 출신으로 3대 군벌 들 가운데 제일 힘이 약했습니다. 강성한 2개 군벌이 무너지는 원나라에 진격하여  땅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원장은 때를 기다려 남방지역 안에서 인재를 모으고, 민심을 수습하였습니다. 그렇게 실력을  비축하여 나머지 2개 군벌을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건국하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적당한 시기와 때를 맞추는 것을 마키아벨리는《군주론》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그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경직되어 있어서, 가변적인 운명에 잘 처신하지 못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처신과 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뤄야 성공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한 채 경직된 채로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실패한다고 했습니다. 또 마키아벨리는 위기의 정치학에는 적극적인 개입, 그리고 지연과 회피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지연과 회피는 문제를 최소화시키는 방법이어서 개입과 지연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시기와 지점을 찾는 것이 정치적인 지혜입니다.


적당한 시기를 맞추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무턱대고 덤벼들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며, 주변 상황과 여건도 유리한 방향으로 맞춰져야 합니다. 오왕 부차에게 복수하려는 월왕 구천에게 범려가 조언했던 말입니다.


"하늘의 운행과 사람의 일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전환점이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처신하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국면을 유리하게 전환시켜야 합니다." 《사기》<월왕구천세가>


그러나 무조건 기다리만 해서는 안됩니다. 상황이 주어졌을 때는 과감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진효공이 법제 개혁에 머뭇거리자 상앙이 조언했던 말입니다.


 "행동을 주저하면 명성을 얻지 못하고, 일을 추진하면서 머뭇거리면 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백성들과 처음부터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으며, 오직 일이 이뤄진 연후에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정치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굳이 옛것을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사기》<상군열전>


상황과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을 때는 나를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시기가 적절해졌을 때는 과감하게 행동하는 용기와 기지가  있어야 합니다. 가변적인 운명이라 예측은 할 수 있어도 그 운명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상황과 여건을 탓해보았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즉, 시기와 지점을 찾는 정치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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