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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Feb 09. 2019

자유는 책임의 총량에 비례한다

우리 시대의 자유, 선택과 책임

자유가 없다는 말은 억압을 당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억압은 선택을 강요한다. 정해진 선택지들에 대해 따를 것을 강요한다. 사람들은 몇 가지 안 되는 선택이 싫을 때 억압에 저항한다. 즉, 자유를 추구하게 된다.


우리는 삶에서 수시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사회 시스템이 정해놓은 몇 가지 매뉴얼이 우리에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매뉴얼을 거부하고 더 많은 선택지를 찾는 것, 또는 상상하는 것을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선택

선택하지 않는 삶은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즉, 관리받는 것이다. 사실 그게 더 쉽다. 내가 선택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생각해야 할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아진다.  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는 어렵다. 자유는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에 가깝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사회에 살아가면서 그런 방종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 거의 모든 조건이 갖춰진 소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는 만큼 책임이 뒤따른다. 자유와 책임은 동전의 양면, 자유를 원한다면 그만큼 책임도 높아진다.


책임을 져라. 책임을 진다. 이 말은 참 부담스럽다. 책임을 지는 순간부터, 나의 삶의 일부는 그 책임지는 대상에게 맡겨야 한다. 그만큼 신경 쓰고, 더 생각해야 한다. 내 삶의 일부를 양도해야 한다. 책임이 없으면, 나는 내 삶의 일부를 할애할 필요 없다. 온전히 내 삶을 다 쓰면 된다.


얻으면 잃고, 주면 받는 것, 그런 건가. 자유의 총량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총량에 비례하는 것인가. 그러면 나의 자유를 위해서는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각오하면 될까. 책임질 수 있는 만큼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만큼 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인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것에 익숙한 삶

내가 책임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거나, 지켜볼 뿐이다. 일을 시킨 사람, 벌인 사람에게 책임을 떠 넘길 수 있다. 이게 속 편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방식에 익숙한지 모른다. 주입식 교육으로 매뉴얼과 정답을 외우면서 이제까지 살아왔으니. 한평생 그렇게 훈련되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그러나 지금 시대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4차 산업혁명, AI 등등..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


이런 때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나의 시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 우선순위를 정하고, 길을 찾을 것 아닌가. 그래야 휩쓸리지 않을 텐데, 우리한테는 그런 훈련이 덜 되어있다. 시키는 대로 살아온 것에 익숙해서.


자유는 책임지는 것이다.

자유는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고,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책임이 따라온다. 나의 결정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나는 지켜봐야 한다. 나의 삶의 일부로 들여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이성의 목소리를 따르는 사명감으로서의 자유'라는 말이 이해된다. 나의 이성은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단, 삶의 습관들이 나의 발목을 잡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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