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의한 시각적 상기
길을 걸으며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를 우연히 듣거나 어떤 냄새를 맡으면 특정한 과거의 순간이 상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 기억나지 않는 어떤 것을 떠올리려 애를 쓰다가도 우연히 어떤 소리나 촉각에 의해 회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기억은 정리된 텍스트로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되기보다는 '감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무의식 저 어딘가에 툭툭 던져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과 마찬가지로 시각도 그러한 회상의 기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터널을 지나갈 때 스쳐가는 익숙한 불빛, 어딘가에서 본 듯한 드라마 속 장면, 데자뷔 같은 것들은 시각과 기억이 얽혀있는 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패션도 '시각적 회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헤어진 과거의 연인이 즐겨 입던 스타일의 옷, 액세서리, 가방 같은 것들을 보면 그 혹은 그녀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의 괴리를 체감하고 기억을 다시 재단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패션은 단순히 현재의 나를 꾸미는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과거와 기억을 재편하는, 하나의 '액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옷차림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패션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된다면, 그녀에게 나는 어떠한 패션으로 남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담백하고 흔한 패션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제, 어디를 가도 나를 떠올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