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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작가 Apr 27. 2017

패션질

취미와 현실 사이

HELLO GENTLE 의 모델 전만수님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놀이가 있다. 지하철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룩을 관찰하는 것이다. 스트리트 룩으로 입은 저 학생은 몇 점, 클래식 룩으로 입은 저 회사원은 몇 점 이런 식으로 혼자 평가를 내려보기도 한다. 하루 종일 옷과 부대끼며 일하는 게 직업이라 질릴 만도 한데 사람들 어떻게 입고 다니나 일일이 관찰하는 걸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옷쟁이인 것 같다. 

  그런데 취미와 놀이로만 끝나야 할 평가를 나도 모르게 현실로 가져올 때가 종종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그의 옷차림으로 평가하곤 하는 것이다. '철 지난 부츠컷 청바지를 입고 다니다니, 저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사람의 능력이나 인격은 그의 차림새와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를 꾸밀 줄 아는 사람일수록 세심하고 창의적인 경향이 있다. <왜 옷을 잘 입는 사람이 일도 잘 할까?>라는 책도 있다. 그러나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처사다.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인류의 삶을 바꿨다. 히틀러는 늘 완벽한 제복 차림새를 선보였지만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패션은 패션일 뿐,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과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 

  도둑질, 놀음질, 계집질 등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질'은 특정한 행위를 낮춰서 부르는 말이다. 만약 자신이 가진 알량한 패션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남들을 마음대로 재단한다면 그건 더 이상 패션이 아닌 '패션질'이다. 멋은 패션이 아닌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며, 겸손한 사람일수록 멋있는 법이다. 

  패션계에 발목 정도 담갔다 뺀 수준인 내가 스스로 얼마나 건방진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를 깨닫고 몹시 후회스러웠다. 더구나 애초에 패션에 잘하고 못함이 있었던가? 저마다 자신이 가진 패션의 취향과 지향점은 다르고 이를 인정해야 개성과 패션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인데. 다만 이를 클래식이라는 방법론으로 도와주겠다는 회사에 다니는 나는 더더욱 그러면 안 됐다. 패션질이 아닌 진짜 패션을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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